1억이 '하찮은' 돈인지 몰랐다. 4월 신혼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절실히 느꼈다. 선유도역에서 카운터펀치를 맞은 후 신혼집 예정지를 마포구로 바꿨다. 나와 여자 친구의 직장 중간에 위치한 곳이다. 마포구 집값이 비싸다는 것, 잘 안다. 마포구에서 그나마 집값이 싸다는 연남동을 찾았다. 물론, 홍대입구 전철역에서도 아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집 구하기를 시작했다 

중개업소에서 큰 맘 먹고 1억을 불렀다. 돌아온 것은 '반지하'였다. 여자 친구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었다 

"11000만 원도 괜찮으니까, 좋은 집이 나오면 알려 주세요."
"그 정도 가지고는."

혀 차는 소리를 뒤로하고 중개업소를 빠져나왔다. 여자 친구가 저 멀리 연희동 야트막한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저 산 밑으로 가요." 

산 밑 동네는 집값이 더 쌀 것이라는 생각에 나온 말이다. 하지만 연희동에서 중개업소를 하는 지인의 아버지는 말했다. "연희동은 비싸다."

연남동에서도 더 외진 곳으로 갔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 이곳 중개업소에서도 1억은 신혼집을 얻기엔 '하찮은' 돈이었다. 그러던 찰라 중개업소 사장님이 말했다. "지금 매물이 없으니, 5월에 다시 오는 게 좋을 겁니다." 구원의 목소리였다. '매물이 없을 때 와서 집을 못 구한 거였구나.'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그때부터 집 구하는 것을 포기가 아니라 미뤘다. 그 뒤 맞이한 5. 바뀐 건 없었다. 1억은 여전히 하찮은 돈이었다. 어느 날 여자 친구가 말했다. 

"신혼집 예산을 7000만~8000만 원으로 낮춰요."
"우리 포기하지 말아요. 마포구에서 1억짜리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을 거예요."
"생각해보니까, 남들처럼 사정이 좋은 게 아닌데, 빚내서 좋을 건 없잖아요."
"그렇지만."
"마포구는 포기해요. 우리 신혼집 원룸으로 하려했던 것 기억해요?"

불편한 진실을 여자 친구가 꺼내들었다. 몇 달 전 처음 결혼 얘기를 나눴을 때, 원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자고 했었다. 경제적인 여건을 감안한 거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수천만 원의 대출을 기정사실화했다. 신혼부부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3.5%. 1000만 원을 빌리면 이자는 연 35만 원이다. 3만 원의 이자는 큰 돈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수천만 원을 빌리면, 신혼집은 더 이상 전세가 아니다. 이자를 감당한다 해도, 원금은?

우리는 지하철 노선도를 펼쳤다. 합정역에 검지를 내려놓았다. 손가락을 6호선을 따라 외곽 방향으로 옮겼다. 망원, 마포구청, 월드컵경기장, 디지털미디어시티, 증산, 새절. 손가락은 쉬 멈추지 않았다. 결국 6호선 끝 연신내, 독바위, 불광에 닿았다. 직장인 여의도까지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안양에서 출근하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여자 친구의 직장이 있는 도심도 3호선을 타면 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은평구 쪽에 살자"고 결단을 내렸다.

시세를 조사하니, 1억 이하 전셋집이 적지 않았다. 물론 맘에 드는 7000만~8000만 원짜리 전셋집은 눈에 띄지 않았다. 5월에 결혼한 친구가 은평구에서 8000만 원짜리 신혼집을 구했다. 몇 달에 걸쳐 괜찮은 집을 찾다가, 결혼하기 2주 전에 겨우 신혼집을 얻었다고 했다.

그 친구 역시 장벽과도 같은 집값 앞에 수십 번 좌절을 맛봤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자취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릴까'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건 '집'이 아닌 '방'이었다. 결국 그 친구는 3000만 원을 빌렸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3000만 원 대출이면 한 달에 이자 10만 원 정도면 돼. 너도 너무 가격을 낮추기보다는 대출을 좀 받아. 그렇게 하면 선택의 폭이 넓어질 거야. 다들 그렇게 시작해."

고민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대출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몇번의 카운터펀치 이후로 대출을 늘리는 것보다는 눈을 낮추는 것으로 암묵적 합의를 했다. 여자 친구는 대출금 이자를 갚기 위해 팍팍해지는 것보다는 단돈 5만원이라도 모아지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고 한다. 우리도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을까? 여자 친구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이쯤에서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겠다. 지난해 3월 정치부로 옮겨오기 전까지, 몇 년 간 부동산 전담 기자를 했다. 취재한 중개업소만 100군데를 훌쩍 넘겼다. 타워팰리스부터 쪽방까지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그런데, 내 신혼집을 구하는 데는 이렇게 우왕좌왕 할 줄이야.

[신혼집 구하기 프로젝트]4~5일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입니다.    

 

  1. 김귀귀 2013.05.24 09:49

    대출을 좀 받아서 정신 바짝 차리고 돈모으는 것도 나쁘지 않지 ㅎ 이자 까이는 재미도 쏠쏠해 ㅋ 술자리도 스스로 줄이게 되고.. 내가 그래서 3년만에 대출 다 갚았다 ㅎ

    • BlogIcon 선기자 2013.05.24 09:58 신고

      대단~! 대출을 잘 이용하면 좋을텐데요. 문제는 당분간 외벌이를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대출을 받는 데 쉽게 손이 안가네요. 계속 고민 중이에요.

  2. 홍홍홍 2013.05.24 10:04

    선배, 화이팅!!! 전...1억(혹은 그 이상)을 다 대출받아야 하는 입장이라 남일 같지 않네요 ㅠㅠ

    • BlogIcon 선기자 2013.05.24 10:26 신고

      그래도 화이팅!! 저도 꼭 해피엔딩으로 '집구하기 프로젝트'를 마무리할테니까, 홍홍홍님도 잘 준비해서 좋은 집 구해요!!

  3. 지나가는 2013.05.24 11:20

    저도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회사는 상암이고 상암에 구하려다가... 절망 했지만 공항철도 라인인 검암 에서 터를 잡았죠...

    • BlogIcon 선기자 2013.05.24 11:37 신고

      공항철도가 은근히 빨라서 검암도 대안이 될 수 있겠네요.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4. 2013.05.24 14:58

    비밀댓글입니다

    • 2013.05.25 13:41

      비밀댓글입니다

  5. BlogIcon 김혜선 2015.01.14 17:44

    토닥토닥 ㅜㅜ ...
    남일 이 아니에요. 1억으로 그저 소소한 집조차 얻을수 없다는게 참....

    • BlogIcon 선기자 2015.01.14 22:50 신고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런데 찾으면 있더라고요. 적정한 선에서 빚을 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고요.

"……." "……."

나와 여자 친구는 말을 잃었다. 당산역 앞 커피숍에서 1시간 동안 앉았지만 오고간 대화는 몇 마디 되지 않았다. 하염없이 창밖 거리풍경만 바라봤다. 나는 애써 "저 아파트는…"이라고 말을 꺼내놓고도, 이내 "아니다"라며 말을 삼켰다. 여자 친구는 내게 "우울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토닥거렸다. 울컥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시간 전, 우리는 멋진 신혼집을 상상하며 행복해했다. 거창한 것을 꿈꾼 건 아니었다. 상상 속 신혼집은 소박했다. 처음부터 강남에 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또 굳이 아파트에 들어갈 생각도 없었다. 작더라도 깔끔한 집. , 한강이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봄날 아내와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고 싶은 작은 꿈 때문이다. 그래서 고른 곳이 선유도역 인근이다. 직장이 가깝다는 것도 고려됐다.

신혼집 예산은 1억 원으로 잡았다. 대학 졸업 후 7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술 좀 사 달라'는 후배들의 핀잔을 외면하며 모은 돈에다 수천만 원의 대출을 얹을 예정이다. 선유도역 앞 허름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에 섰을 때, 기대감에 부풀었다. 문을 빠끔히 열었더니 앉아있는 사장님이 보였다. 태어나서 32년 만에 처음으로 내 집을 구하기 위해 중개업소에 들어갔다. 심장이 쿵쾅쿵쾅 소리를 냈다. 입을 뗐다.

"신혼부부가 살만한 1억 원짜리 전세 있을까요?"

원래 가격을 더 낮춰 부르려했다. 주위에서 전세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얘기를 듣고 1억을 부른 참이었다. 사장님은 "1억이라고요?"이라고 되물었다. 황당하다는 투였다. 순간 겁을 먹었다. '뭐가 잘못된 거지?' 사장님이 말했다. "무슨 1억으로, 1억2000만 원은 줘야 괜찮은 빌라를 구하지."

순간 거대한 벽과 마주선 것 같았다. 사장님은 1억이면 동네 구석에 있는 낡은 다세대 주택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부른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낡은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고 싶지 않다. 유년시절 반지하의 퀴퀴함과 낡은 다세대 주택의 끔찍한 겨울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한 선배는 10년 전 반지하에서 신혼을 시작했다고 했지만, 나로서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힘없이 중개업소를 빠져나왔다. 집을 알아보기 위해 처음 찾은 중개업소에서 느낀 절망은 거대했다. 좌절감이 나를 덮쳤다. 저 허름한 아파트도 우리가 넘볼 곳이 아니구나 싶었다. 저기 보이는 빌라도 우리를 외면하는 것 같았다. 내 우울한 표정에 여자친구가 "오늘은 집 보러 다니지 말자"고 했다. 터벅터벅 걸었다. 우린 어느새 당산역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허브차를 시켰지만, 향을 느낄 수 없었다. 4월의 어느 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세상으로부터 카운터펀치.. 그래도 다시 몸을 일으킨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난 대학 졸업 후 남들만큼 치열하게 살았다. 그렇다고 사치를 부리지도 않았다. 차 대신 자전거를, 택시 대신 버스를 탔다. 술 먹은 뒤 어떻게든 지하철 막차를 잡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20대를 흘려보냈다. 1억은 내 20대와 맞바꾼 돈에, 또 그만큼 대출을 받은 것이다. 이 돈으로 서울에 신혼집 구할 수 없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이 잘못된 게 아닐까? 30대 신혼부부가 안락한 보금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사회는, 분명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내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세대 중 많은 이가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 낳기를 포기하고 있다. 집을 투기의 수단으로 삼았던, 집값 폭등의 시대가 남긴 상흔일터다. 기성세대가 바랐던 집값 상승은 결국 그들의 자녀인 우리 세대에게 큰 고통이 됐다.

앞으로를 생각하면 한숨은 더 깊어진다. 우리사회가 내놓은 해결책은 내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집값 하락? 요원하다. 정부도, 건설사도, 집 가진 사람들도 원하지 않는다. 이런 때에 박근혜 정부가 말한다. "빚내서 집사라!" 속을 수 없다. 여기에 혹하면, 빚의 구렁텅이에 빠질 게 분명하다.

신혼집 구하기 첫날, 세상으로부터 카운터펀치를 맞았다. 세상은 '1억으로 신혼집을 구한다고? 미쳤어요?'라고 하는 것 같다. 어지럽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거야.' 쓰러진 몸을 다시 일으킨다.

[1억 신혼집 구하기 프로젝트]는 4~5일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입니다.

 

  1. 홍홍홍 2013.05.20 09:31

    앗, 드디어 시작! 기대됩니당~

    • BlogIcon 선기자 2013.05.20 13:59 신고

      첫댓글!! 감사!! 앞으로 꾸준한 업데이트 할게요.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도 화이팅!!!

  2. 김귀귀 2013.05.20 10:33

    이제야 부동산의 쓴맛을 느끼기 시작하는군 ㅎㅎ
    간바레 ㅋㅋ

  3. 이기자 2013.05.20 11:30

    그래서 집은 구하셨나요?ㅠㅠ

  4. 오로빌 2013.05.20 14:35

    집 구하기 꼭~~성공하시길 바랄게요 ㅎㅎ

  5. 최게바라 2013.05.20 15:17

    네가 경제부 기자, 그것도 부동산 전문 기자였다는 사실은 도대체 언제 밝힐 거냐? ㅡ,.ㅜ

  6. 귀염둥이 2013.05.21 01:46

    경기도로 눈을 돌리세요

    • BlogIcon 선기자 2013.05.22 09:29 신고

      직장 때문에 서울에서도 싼 지역을 알아보고 있고요, 이제 경기도도 알아봐야겠지요^^

  7. 김정열 2013.05.22 17:18

    선유도를 포기하고 조금 더 외곽 방화동으로 오면 1억짜리 아파트 있을걸요. ㅎㅎ 신축빌라도 있을테고...전 동네 조용하고, 공항철도 있어서 서울역도 가깝고 좋던데

    • 선기자 2013.05.23 10:48

      방화동도 괜찮겠네요. 직장을 감안해 이곳저곳 알아보고 있습니다. 의견 고맙습니다^^

  8. WOW 2018.07.12 01:08

    이런 때에 박근혜 정부가 말한다. "빚내서 집사라!" 속을 수 없다. 여기에 혹하면, 빚의 구렁텅이에 빠질 게 분명하다.

    아쉽네요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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