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는 날, 아침부터 마음이 달떴다

시나브로 이사하는 날이 왔다.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더 넓은 집으로 옮긴다. 아침부터 마음이 달떴다. 오전 8시 이사 업체 직원들이 박스를 집 안에 늘어놓고, 세간살이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장모님과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새로 이사할 집으로 건너갔고, 나는 남아서 이사를 지켜봤다. 신혼집과 이별한다는 생각에 잠시 감회에 젖었다.

이사 중간에 집주인 쪽 부동산공인중개사무소에 가서 전세금을 돌려받았다. 그곳에서 “25만 원짜리 도어락을 놓고 가니 잘 쓰세요라고 말했다. 집주인과 공인중개사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집주인은 고마워요라고 했고, 공인중개사는 처음 전세 계약 할 때는 젊은 사람들이라 깐깐한 줄 알았는데, 좋은 사람이었네요라고 말했다.

예전 도어락은 이 집을 계약하고 얼마 뒤 고장 났다. 우리 부부가 신혼여행 갔을 때,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신혼집에 왔었다. 도어락은 열리지 않았고 큰돈을 주고 교체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왔더니, 정말 좋은 도어락이 달려있었다. 교체한 지 열흘 가까이 지난 뒤라 집주인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이사하면서 도어락을 떼어가려고 했지만 비용과 설치의 어려움 때문에 포기했다.

세간살이를 스카이차로 옮길 때쯤 집주인 부부가 나타났다. 집주인은 다시 한 번 집을 깨끗하게 써서 고마워요라고 했다. 세간살이를 모두 옮긴 뒤, 마지막으로 집주인에게 아들 낳고 잘 살다 갑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집주인도 앞으로도 잘 사세요라고 했다. 그렇게 웃으면서 이 집과, 집주인과 작별했다.

이사는 순조로웠다. 새집은 어찌나 넓어 보이는지. 오늘은 완벽한 하루였다.

****

새로 이사할 집에서 점심으로 짜장면을 시키려는데, 갑자기 집주인으로 전화가 왔다. 방충망이 찢어졌으니 와달라고 했다. 이미 짐을 뺐고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집으로 와달라니. 갔더니, 집주인은 교체 비용 4만 원의 절반을 부담하란다.

불과 1시간 전, 25만 원 짜리 도어락을 놓고 간다니 좋아했던 집주인이다. 또한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해서, 전세계약 만료일로부터 한 달 뒤에 전세금을 돌려받았다. 그만큼 이사가 늦어졌다. 도배도 우리가 했다. 우리가 비용을 들여 집 여기저기를 수리했다.

집주인 입장에서 계약이 만료된 세입자에게 원상 복구를 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방충망이 있던 창문을 쓰지 않았던 터라, 방충망이 언제 찢어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 집에 살면서 이래저래 적잖은 돈을 부담한 세입자로서, 2만 원을 아까워하는 집주인의 모습은 곱게 보이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서운하네요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그간의 사정을 얘기하고 도어락을 떼어가겠다고 했다. 집주인 부부는 똥을 밟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집주인은 돈은 안 줘도 됩니다라면서 말을 바꿨다. 돈은 아꼈지만, 진상 세입자가 됐다.

새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실 우리 부부는 새로 이사 갈 집의 집주인한테 불편한 소리를 들은 터였다. 이사할 집은 방충망이 찢어져 있었다. 싱크대에선 물이 샜고, 작은 방 천장엔 전등을 잃은 전선만 매달려 있었다.

집도 오래됐고, 그 전 세입자가 8년을 살았던 터라 집 곳곳이 말썽이었다. 내가 출근한 어느 날 아내는 우선 집주인에게 방충망을 수리해달라고 했다. 돌아온 대답은 꼭 방충망을 교체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찢어진 방충망은 3곳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심한 한 곳만 교체를 요구했던 터였다. 아내는 졸지에 고치지 않아도 되는 걸 고쳐달라고 요구한 세입자가 됐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마무리했고, 집 곳곳도 수리했다. 이사는 순탄치 않았지만 새집에서 며칠을 지내니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 아이는 넓은 거실에서 이리저리 맘껏 기어 다닌다. 좋은가보다. 아이가 좋으면 나도 아내도 좋다. 그래, 우리 세 식구에게는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다. 이상국 시인의 시에 위로를 받는다.

넓은 거실을 좋아하는 아이.

사촌 누나와의 다정스러운(?) 한 컷.


쫄딱 - 이상국


이웃이 새로 왔다

능소화 뚝뚝 떨어지는 유월

 

이삿짐 차가 순식간에 그들을 부려놓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짐 부리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서울에서 왔단다

 

이웃 사람들보다는 비어 있던 집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예닐곱 살쯤 계집아이에게

아빠는 뭐하시냐니까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이사 왔단다

 

그러자 골목이 갑자기 넉넉해지며

그 집이 무슨 친척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는데

 

, 누군가 쫄딱 망한 게

이렇게 당당하고 근사할 줄이야

  1. 은하수 2015.09.18 08:40

    방충망은 땜방하는게 있으니 전체적으로 찟어진게 아니면 마트나 철물점 가서 사서 해보세요.손바닥 크기도다 좀 큰걸 팔겁니다.
    요즘은 셀프로 고치는게 인터넷에 다 나와 있으니 전등도 구입해서 달면 되고 싱크도 노후 됬으면 물새는곳 부품만 구입해서 교채하면 됩니다.
    고치셨다 하니 혹 다음에 그런일 생기면 해보세요 의외로 간단하고 쉽습니다.
    아이와 행복하게 잘 사세요 ^^

    • BlogIcon 선기자 2015.09.18 10:07 신고

      다음 번에 문제가 생기면, 부품만 구입해서 고쳐야겠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2. BlogIcon 빠숑♡ 2015.09.18 12:03 신고

    저도 자취하느라, 이곳저것 이사를 몇번 다녀봤는데 정말 만만치 않아요 ㅜㅜ
    제가 계약날짜가 완료되기전에 이사 하기 위해서 집을 내놨었는데...
    집주인이 저에게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이사날짜를 새로운 입주민이랑 다 확정지어서 계약을 해버린거예요 ;;;
    저도 집을 구하고 있던 상태라서 이사 나가줘야 하는 날짜를 맞췄어야 했는데...
    저에게 전화로 언질이라도 한번 주셨다면 좋을 텐데, 그 부분 말씀드렸더니
    어린사람이 어른한테 말대꾸한다고 전화상으로 얼마나 소리 지르시던지....ㅜㅜㅜㅜㅜㅜ
    그리고 지금은 좋은 집에서 잘 살고 있답니다 ㅜㅜㅋㅋㅋㅋ 이사 잘 되셔서 다행이예요. 힘내세요!

    • BlogIcon 선기자 2015.09.18 12:40 신고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그래도 좋은 집에 잘 살고 있어 다행입니다. 힘 주셔서 감사합니다!!

  3. BlogIcon 줌 마 2015.09.18 16:59 신고

    에긍..심적으로 좀 그랬겠어요.... 그래도 새 집에 이사 왔으니 늘 웃음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파이팅!!!!

    • BlogIcon 선기자 2015.09.18 20:21 신고

      고맙습니다. 이제 웃으며 행복하게 살 날만 남았다고 믿습니다^^

  4. 박민 2015.09.19 00:16

    정말 남일 같지 않아 댓글 남깁니다.

    총각 때 혼자 1년 살다가,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고, 아내의 손길로 인해 완전 새집으로 거듭나기도 했죠. 저희 딸을 만난 곳이기도 합니다.
    지난달, 온가족이 외출하고 귀가하던 토요일 밤 10시 경.. 도어락 배터리가 나갔더군요. 9V건전지를 갖다대어 번호를 눌러보려했지만, 오래된 녀석이다 보니 그 부분이 고장이 난거였어요. 방법이 없어 사람을 불렀고 뜯어 새로운 걸로 교체했습니다. 그 비오던 토요일 밤이어서 그랬는지.. 출장비 할증이 붙었나봐요.
    인터넷 검색해보니 6만원 하는 열쇠 달린 비일체형 도어락인데 17만원을 지불했습니다.

    집주인에게 이야기했더니 난리가 난거죠. 자기는 자기 집거 15년을 써도 고장이 안나는 그게 왜 고장이 나느냐에서 부터 시작하시네요. 일단 넘겼습니다.
    저희도 엊그제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 이틀 전, 다시 전화를 해서 협상을 시도했죠. 어느정도의 비용을 부담해주시면 놓고가겠다고. 아니면 원래 있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것으로 재설치 해두고(교체해준 업체에 문의하니 비용 3만원 든다고 하더라구요) 가겠다고 말했더니 노발대발, 부동산법대로 하겠네 어쩌네.. 크게 흥분하시더니 전화를 끊어버리셨습니다.

    제가 들어올 때와 같이 해두는 것이 부동산 법인지라 작정하고 3만원 물 생각으로 떼려고 하니... 다시 들어올 세입자가 걸립니다. 이번에 결혼하는 후배거든요..ㅠ
    후배 결혼 선물 해준다셈 치고 두고 왔습니다. 후배에게는 설명해줬구요.

    세입자의 애환, 어쩔 수 없는건가봅니다..^^ 손해는 보고 살지 말자는 저의 젊은 혈기가,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나, 화내면 나만 손해지'로 바뀌어 가네요.
    공감 가는 글 보고, 그 마음 함께 풀고자 댓글 살짝 남기고 갑니다. 평안하세요~

    • BlogIcon 선기자 2015.09.19 00:51 신고

      저희도 이사하는 날 도어락에 문제가 있는 걸 알았습니다. 헌데 건전지 약이 다 돼서 그런가보다 했지요. 헌데 신혼여행을 떠난 지 이틀만에 완전 고장이 났지 뭐예요. 15년된 도어락을 교체했는데, 집주인은 "왜 그때 말하지 않았냐"며 큰소리 치더군요. 돈 2만원에... 참 씁쓸한 거 같습니다. 나중에.. 정말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혹시 집주인이 되는 날이 오면 신혼부부에게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과부 마음은 홀애비가 아는 법이니까요.^^

  5. k829990 2015.09.19 07:55

    사람이라는게 참글터라구요 도어락줄땐 언제고 방충망 ㅎㅎㅎㅎㅎ 참... 자기것아닌게 서러울뿐이죠.. 전 빚없이살다가 이번에 빚내서 내집으로 갑니다...

    • BlogIcon 선기자 2015.09.19 09:08 신고

      요새 빚을 많이 내서라도 내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크네요. 다음번엔 꼭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렵니다. 님도 '내 집'에서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6. 이래서 빚을 내서라도 내집마련에 힘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ㅠㅠ

  7. 장백파 2015.09.19 21:20

    나도 구리시에 34평 아파트를 전세로 준적이 있었는데
    매번 세입자가 바뀔때 마다 불편한것은얼마가됐던지
    간에 무조건 수리를 다해 주었었다 결국 집은 현 세입자
    한테 조금 덜 받고 복비도 집주인이 부담 하다시피 한푼
    안받고 넘겨주었다 전화를 하여 사는데 불편함이없느냐
    면서 가끔씩 안부전화도 했다 집 가진게 무슨 대단한
    벼슬인양 유세부리는집주인을 볼때면 한심해다는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헌재도 남양주 덕소에 33평 아파트를
    전세주고 있는데 만기가 다되 어서 전화를 했더니 편하게
    잘살고 있다면서 재계약을 하잔다 그래서 전세금을 올리
    는것도 좋겠지만 월세를 요구했더니 그렇게 하잔다
    돈2만원이 아까워서방충망을변상하라고하는집주인을
    어찌생각해야하는지 가슴이답답해진다 입장을바꾸어서
    생각해볼때 집주인이 세입자입장이라면어떻게나올지
    한번쯤 생각해볼일이다 한마디로 집주인은싸가지라고
    밖에 더 이상 봐줄 여지가 없다 나깉으면 도어락떼어오고
    대판 싸웠을것이다 그런집주인은 못된세입자 만나서
    된 꼴을 한번 당해봐야 한다 못되먹은집주인같으니라구

    • BlogIcon 선기자 2015.09.20 01:12 신고

      선생님 같은 분이 많으면, 세상은 조금 더 좋아질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8. 최명희 2015.09.20 10:52

    이사올때 이삿짐기사한테 말하면떼어주던데요
    새집에다 달아도주고요 집주인이 살때 살뜰하게 봐주셔서 계산다끝난후 따로이 십만원드렸더니 놀래시던데 이사후 욕실교체하면서 욕실하수구에 뭐가끼였다고 십만원 더달라하시던디요 이사나왔는데도요우리쓸데 물잘내려갔다말해도소용없었어요 워낙오래된집이라 하수구에 많이 쌓여있었던거같은데요 좀실갱이하다주었어요 안좋은기억도생겼지요

    • BlogIcon 선기자 2015.09.20 13:55 신고

      그러셨군요. 다들 이런 경험은 하나씩 있나보네요. 앞으로는 좋은 집주인 만나세요^^

  9. BlogIcon -_________-0 2015.09.20 15:08 신고

    아... 전세든 월세든... 이런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잘 마무리 하셨다니 다행이네요.^^

  10. kde 2015.09.20 16:59

    그러니까 집사는거지..
    별일도 아닌것 같은데..

  11. BlogIcon Voldy 2015.09.20 20:55 신고

    수리 안해주는 거야, 이제 그러려니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행할 수 있는 권리까지 무시하고 성내는 집주인들은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까지 유세를 떨어야 하는 걸까요? 저희 가족도 이제서야 집을 사서 마음이 정말 편합니다. 집주인이랑 예의를 지키더라도, 아예 트러블이 없을 수는 없더라구요...

    • BlogIcon 선기자 2015.09.21 00:24 신고

      여유만 되면 집을 사고 싶네요. 제게도 그런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요^^

  12. 2015.09.20 22:32

    비밀댓글입니다

  13. 꼬꼬마 2015.09.21 04:19

    저는 변기 호수 밸브가 노후되어 터진 일로 물난리날뻔한적이 있어요..
    휴가다녀온 날이였는데..
    집 빈 틈에 터졌으면 온 집이 홍수날뻔했어요ㅠㅠ
    휴가철인데다 일요일이고 수리할 공구도 없고..
    집주인에게 전화했더니 연락처도 주지않고 정확한 위치,상호명도 주지않은채 길건너 타이루 집이래서 더운날 나갔다가 헛탕만 치고.. 다른업체 알아보라길래 겨우겨우 연락닿은 곳으로 알아보고 견적 물어보고 집주인 전화했더니 안받더라구요. 남편은 휴간데 급하게 출근해야했고.. 너무 물이 새니까 전체 잠궈둔 상황이였구 애기도 있구.. 6만원주고 급하게 수리를 했어용. 일주일뒤..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답변없던 집주인왈
    누구맘대로 비싼돈주고 수리를했느냐 물 틀기 뭐해도 받아놓고쓰더라도 연락될때까지 수리를 하면 안되는거 아니지않냐 자기는 타지역에서 월세내고 살고있으면서 뭐 안되도 안된다고 주인한테 말꺼내본적도 없다 돈 못 준다 짜증이나서 못 참겠다 한시간의 무한반복으로 말다툼하다가 저도 폭발해서 그깟돈 안받아도 되니까 전화끊으라고 하고 제가 끊어버렸다는 ㅠㅠ 내년 4월 계약만긴데..
    노후되서 모하나 고장날까 걱정되고 보증금가지고 장난할거 뻔하고.. 이래저래 저도 짜증나고 속상하네요ㅠㅠ

    • BlogIcon 선기자 2015.09.21 08:23 신고

      안타깝네요. 많이 속상하시겠어요. 힘 내시길 바랍니다. 좋은 집주인, 좋은 집 만날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아이가 넓은 집에서 쏘서를 타게 해주고 싶다.

몇 달째 미루고 있는 일이 있다. 집 주인에게 이사 간다고 말하기.

세입자로서 집주인에게 전화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해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 우리 부부는 5만 원을 내고 수리를 받았다. 집주인에게 말해 돈을 받아야 했지만, 전화하는 걸 미루다 결국 전화하지 못했다. 참 소심한 부부다. 오는 8월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살고 있는 집은 신혼집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할 때 최대한 빚을 내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돈 모아 넓은 집으로 가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언덕에 있는 5층 빌라 꼭대기 층을 얻었다. 깨소금 볶는 신혼생활이니, 5층을 오르내리는 건 힘들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난 후 상황이 바뀌었다. 아내는 몸무게 8kg를 웃도는 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때마다 힘들어했다. 유모차를 반지하 공용공간에 내려놨다. 먼지가 쌓여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부부는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내가 집주인에게 전화해야 한다는 거다. 계약이 만료되는 여름에는 전세물량이 많지 않다 하니, 미리 연락을 해야 했다. 지난달 아내가 걱정하자, 집주인에게 전화하기로 마음먹었다. 노트북에 원고를 썼다.

어찌 보면 별 것도 아니다. 계약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에게 재계약 여부를 알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주위에서나 뉴스에서나 전세금 문제로 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을 많이 봐와서 일까. 단어 사용 하나에도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전화하지 못했다.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포항에 내려가야 하는 상황과 겹쳤다. 빈 집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게 마뜩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내는 이번 주에 주인에게 전화하라고 말했다. 아니, 통보했다. ‘그래, 더 이상 내 귀차니즘을 용인할 수 없겠지.’ ‘지금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안하고 싶다가 내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내에게 전화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어떻게 전화할까 전전긍긍하던 차, 어제 공인중개업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계속 사는지 이사하는지, 주인이 물어보라고 하던데요.”

이렇게 반가운 전화가 있을 수 있을까. 체증이 한 번에 가신 듯했다. 우리의 사정을 설명하고 이사를 간다고 말했다. 다음 주부터 집을 보러 와도 된다고 말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우리 집, 잘 나갈까요?”

이 집을 구할 때, 우리 집은 그때까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집이었다. 아마 언덕 위 5층 집이라 그랬던 것 같다.

걱정 마세요. 전세가 귀하잖아요.”

마음이 놓였다. 전세금을 못 받을 일은 없겠구나. , 잠깐. 우리 세 식구의 새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데... 머리가 아파왔다. 중개업자에게 전세 매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지금 집보다 5000만 원을 올려 14000만 원가량 되는 전셋집이면 좋겠다고 했다. 대출 이자 부담이 컸지만 아이가 태어나니 집을 넓히지 않을 수 없다. 평지에 있는 저층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건넸다.

바로 그런 집이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불광천 옆 버스 종점 근처란다. ‘시끄럽고 매연 때문에 아이한테 별로 안 좋을 텐데’, ‘불광천 근처면 자전거 타기 좋겠다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뒤 이어 충격을 가한 한마디.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한두 (3.3~6.6)가량 클 거예요. 거실이 없어요.”

언덕 위 빌라 5층에서 평지로 내려간다는 걸 감안해도 이건 아니지 않나. 5000만 원을 더 내더라도 고작 한두 평 큰 집에나 갈 수 있다니... 앞이 깜깜했다. 그날 우리 부부는 한숨 섞인 저녁을 보냈다. 아내는 말했다.

이 동네에서 평지로 가는 게 가능할까요? 우리가 너무 오동통한 꿈을 꾸는 건가요? 동네를 옮겨야 하는 건 아닐까요?”

우리 세 식구는 어떤 집에서 살게 될까. 그래도 좋은 집을 구할 수 있겠지?

전셋집을 구할 때까지 종종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모든 전세 난민, 홧팅입니다!

5개월 차 아이는 이제 손을 양쪽으로 쭉 펼칠 수 있다.

얼마 전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다녀왔다. 카셰어링을 통해 차를 빌렸다. 돈은 좀 들었지만, 편하게 다녀왔다. 문제는 차를 집 앞에 세운 뒤였다. 아내는 아이를 안았고, 나는 젖병, 보온병, 기저귀, 물티슈, 도시락통 등이 든 가방을 한 손에 들었다. 나머지 한 손에는 유모차와 카메라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5층을 걸어 올라갔다. 헉헉 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2년 전 우리 부부는 서울 북가좌동 5층 빌라 꼭대기 층에 신혼집을 차렸다. 빚을 최소화해 작은 집을 얻고, 나중에 돈을 모아 넓은 집으로 가자고 약속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건, 젊은 신혼부부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서울에 1억 원이 안 되는 전셋값으로 깨끗한 보금자리를 얻었다는 생각에 다리 아픈 줄 몰랐다. 운동도 된다고 생각하니,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집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참 죄송한 일이다. 보통 5층을 걸어 오르내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을 오르시던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무거운 택배를 5층까지 배달해주는 택배기사님도 안쓰럽다. 아내가 냉장고에 택배기사님들을 위한 음료수를 준비해놓았다.

아이가 태어난 뒤, 우리 부부에게도 5층을 오르내리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갓 5개월에 접어든 아이와 외출할 때면 짐은 한 보따리였다. 계단을 내려갈 땐 그나마 낫다. 8kg가 넘는 아이를 안은 아내는 5층을 오르며 적어도 두 번은 멈춰 서 숨을 돌려야 했다.

아이가 클수록 아내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나 역시 짐을 여러 차례 오르내려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우리 부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유모차를 1층에 놔뒀다. ‘누가 가져가진 않겠지...’

다리 힘은 어찌나 세졌는지. 발차기 맞으면 아프다^^

결국 우리 부부는 이사 가자고 외쳤다. 는 8월 전세계약을 끝으로 신혼집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되도록 엘리베이터가 있고, 지금보다는 조금 더 넓은 집으로 가려 한다. 빚은 꽤 내야할 것 같다. 선택지는 작은 아파트나 최신 빌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식구는 어디로 가야할까. 난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좋다. 동네에 정이 들었다. 불광천이 멀지 않아, 언젠가 아이를 트레일러에 태우고 한강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또 회사에서 가깝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육아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아내도 가을엔 학교로 돌아갈 예정이다. 간혹 우리 부부가 어려울 때 아이를 돌봐줄 곳이 필요하다. 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니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 본가는 안양이지만 부모님이 밤늦은 시간까지 노래방을 운영하시기 때문에 아이를 돌봐줄 수 없다. 처가는 포항이다. 아이를 포항에 내려 보낼까 고민도 하지만, 이 역시 쉬운 결정이 아니다.

아내에게는 서울 우이동에 제2의 처가가 있다. 바로 처형네다. 직장맘인 처형은 8살과 4살 딸들을 시댁의 도움을 받아 키우고 있다. 이곳에 가면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거기다 아이들끼리 자주 어울릴 수 있으니.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우리가 원하는 작은 아파트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빌라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우이동으로 가면 아내와 내가 길바닥에서 버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내가 사랑하는 한강에서도 멀어진다. 고민이 깊어진다.

결정의 시간이 멀지 않았다. 우리 세 식구의 집은 어디가 될까. 정들고 한강이 가까운 북가좌동일지, 처형이 있는 우이동일지, 아니면 우리 예산에 맞춘 제3의 곳일지. 우주는 아이를 중심으로 돈다. 아이를 중심에 두고 결정하게 될 것이다.

  1. BlogIcon aquaplanet 2015.04.21 13:27 신고

    밝고 씩씩한 부부의 앞날에 화이팅을 외칩니다~! ^^

  2. 커스다마토 2015.04.22 13:51

    이사갈 집도 돈도 있고 그곳이 지금보다 더 낫다면 가셔야지요.

    저희도 큰아이 초등학교 보낼즈음 이사를 결심했는데 결국 돈이 없어 못갔어요. 집사람에게 사나이 발닿는 곳이 고향이다 선언하고 우리가 동네를 바꾸자해서 빌라 이웃들과 먼저 인사하고 과자,과일 나누다보니 마음맞는 우리 빌라 5층과 2층 가족이 서로 집에 초대하고 친해졌어요.

    어린이집 아이 친구 부모들과 인사하며 아이들 집에 놀러오라 했어요. 그 부모들 타고 알음알음 친해져 동네에 아는 사람들이 꽤 생겼어요. 아이들은 인사할 사람이 많아지고 놀러갈 집도 많아졌어요. 애들 맡기고 일보러 가라고 우리가 먼저 말하고 다녔어요.

    그러다보니 이 동네서 떠나기 싫어졌어요. 4층 올라올때 즐거워졌어요. 가뜩이나 운동 부족한데 좋잖아요. 옥상에서 빨래널며 가끔 5층 어르신과 수다도 떨어요. 혹시 이사가지 못하시면 저처럼 그냥 눌러앉아 바꿔버리세요. 봄이 아빠께 근사한 미래가 있길 바래요.

    • 2015.04.22 13:59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선기자 2015.04.22 17:53 신고

      생생한 경험에 기초한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말씀 들으니 고민이 깊어집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선생님도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3. BlogIcon Adieu Kim 2015.04.22 15:55 신고

    이사 가셔야 할 듯...^^

  4. 2015.04.24 20:22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선기자 2015.04.26 01:31 신고

      좋은 말씀 감사하고 힘이 나네요^^ 님도 아이와 함께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랄게요. 그리고 창동도 알아봐야겠네요~

  5. 초록지붕 2015.07.24 10:59

    우주는 아이를 중심으로 돈다

    글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저희 언니가 아기들을 키우는걸
    옆에서 지켜보는 저도 공감이 많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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