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역에 붙어 있는 빌라 분양 전단.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일요일 밖에 나왔는데, 집주인 쪽 부동산공인중개사가 전화했다. “손님이 왔는데 빈 집을 봐도 되겠느냐라고 물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집이 엉망이었다. 지금껏 깨끗하게 청소한 우리 집을 본 사람 중에서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없었으니, 오늘은 기대를 접어야 했다. 심드렁하게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그리고 두어 시간 뒤, 공인중개사가 다시 전화했다. “계약한대요.”

계약날짜는 두 달 뒤로 정해졌다. 그때까지 이사 갈 집을 구해야 한다. 최근 두 달 동안 많은 집들을 봤지만, 맘에 드는 집이 없었다. 아니, 전셋집 자체가 거의 없었다. 어제 하루 휴가를 냈다. 아내와 함께 은평구 쪽 전셋집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내가 아이를 안았다. 날씨는 후텁지근했고, 아이는 칭얼거렸다. 공인중개사무소 몇 군데에 연락처만 남겨놓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계획을 바꿨다.

응암역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들어갔다. 사정을 얘기하자, 어제 나온 전셋집이 있다고 했다. 교통이 썩 좋은 곳은 아니었다. “나중에 좋은 전셋집이 있으면 알려주세요라고 말하려다가, 이왕 온 거 한 번 보기로 했다. 그래야 은평구 쪽 전셋집 시세를 파악할 수 있을 테니.

한 빌라 앞에 내렸다. 문을 열었더니, 한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었다. 우리 아이와 생일이 비슷해 보였다. 거실에는 우리 집에도 있는 장난감이 눈에 보였다. 우리 부부가 탐내고 있는 위고도 있었다. 이곳으로 이사 오면 우리 집이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집은 깨끗하고 넓었다. 맘에 들었다.

이 집을 보고 난 후 내 통장에는 수백만 원이 찍혔다. 현재 집주인이 새 전셋집 계약할 때 계약금으로 쓰라고 전세금의 일부를 보낸 것이다. 집과 그곳에 사는 사람은 운때가 맞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마치 우리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두 달가량 집을 구했지만 맘에 드는 집이 없었다. 우리 집이 나간 후, 첫 번째로 찾아간 공인중개사무소에서 본 첫 번째 전셋집이 맘에 들었다. 동시에 집주인은 계약금을 보내왔다.

그날 다른 공인중개사무소를 찾아 전셋집 몇 군데를 봤지만, 첫 번째 집보다 맘에 드는 곳은 없었다. 아내와 논의 끝에 계약하기로 했다. 아내에게 외식을 하면서 축배를 들자고 했다. 아이를 안고 땡볕에서 집을 구하러 다니던 지난 두 달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내에게 미리 고생했어요”라고 말했다.

****

집 근처에 신축 빌라 공사하는 곳이 많다. 하지만 전세는 없다. (사진 속 건물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그날 저녁 집주인이 될 사람 쪽의 공인중개사무소로 향했다. 그곳에서 계약할 집의 등기부등본을 봤다. 대출 14000만여 원. 전화로 대출을 다 갚았거나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것과 달랐다. 공인중개사 쪽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항의하니, 내가 낼 전세금으로 대출금을 갚으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대출이 없다. 그런데도 집주인은 집이 팔리기 전에는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했다. 그 때문에 전세계약 만료일로부터 한 달 보름이 지난 뒤에야 이사를 하게 됐다. 대출이 많이 있는 집을 계약할 경우, 전세금을 받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고,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폭탄이 터졌다. 잠시 외출한 집주인 쪽 공인중개사를 제외한, 우리 쪽 공인중개사, 집주인, 세입자가 될 우리 식구가 마주 앉았다. 우리 쪽 공인중개사가 전세자금대출을 설명하며 전셋값의 5%를 계약금으로 내야 한다고 언급하자, 집주인은 계약금은 10%로 해야 한다면서 불같이 화를 내고는 중개사무소를 나가버렸다.

아내는 내 팔을 잡으면서 불안해했다. 우리 쪽 공인중개사는 불안하면 계약하지 말자고 했다. 계약을 포기했다. 집으로 가는 길, 발걸음이 무거웠다. 허망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서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고 힘을 냈다. 아이는 엄마 아빠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집에 갈 때까지 잘 안겨 있었다그날 밤 아내와 맥주 한 잔 했다. “오늘 고생했어요. 괜찮은 집, 나타나지 않겠어요?” 다소 우울할 때 힘이 되는 시를 소개한다.


말의 힘 / 황인숙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기분 좋은 말을 소리내보자.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

머릿속에 가득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

느낌표들을 밟아보자. 만져보자. 핥아보자.

깨물어보자. 맞아보자. 터뜨려보자!


- 황인숙 시집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문학과지성사, 1998)

  1. 이대로 2015.07.23 11:49

    휴~~ 공감합니다~~ 저도 중개업을 하다 보니 금리가 낮으니 정말 전세가 없네요~~집주인들이 대출 만땅 받아 월세로 돌려도 약 3%차액이 생기니깐요~~ 좌우지간 좋은집 구하길 바랍니다~

    • BlogIcon 선기자 2015.07.23 14:07 신고

      대출을 많이 받아 집을 산 뒤에, 월세로 돌리면 돈을 꽤 벌 수 있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곧 좋은 집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 소태 2015.07.23 12:12

    부동산 가지고 불로소득 뜯어먹으려는 기생충같은 시대에 우리가 사니
    기본적인 의식주에도 이렇게 힘이 드는 군요...
    미국 금리가 올라가면 우리나라 금리도 점차 올라갈테니
    전세놓으려는 집주인들이 늘어나겠지요...
    힘냅시다^&^

    • BlogIcon 선기자 2015.07.23 13:04 신고

      좋은 정보,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전세 난민들 모두 화이팅입니다!!

  3. 조용준 2015.07.23 19:20

    진짜..전세요즘 아에없어요...ㅠ 그리고 좋은주인만나는것도 진짜 운이좋아야하는듯...ㅠ 이번에 저도 운좋게 전세구하긴했는데 진짜 전세없더라고오ㅠ

    • BlogIcon 선기자 2015.07.23 22:30 신고

      좋은 주인 만나는 것도 복인 것 같아요. 열심히 알아보면 좋은 전셋집 구할 거라고 믿습니다!

  4. Ray강 2015.07.23 21:23

    첫번째사진보니까 불광전철역출구에있는 다이소네요...같은지역구민이라 너무반갑습니다.
    대출낀집,언덕에있는집,주변에중학교,고등학교랑붙은집(이유는 학생들교복입고 담배피는모습엄청볼겁니다.)
    집주변에 쓰레기막버리는집,그리고 이건운빨이지만 아래층,윗층,옆집에 이상한여자살면 골치아픕니다(밤마다 이상한괴성이...)
    이런집들은 가급적피하시길 바랍니다.
    아무쪼록 좋은집구하셔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선기자 2015.07.23 22:31 신고

      집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열심히 알아봐야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5. ㅇㅇㅇ 2015.07.23 22:51

    저금리는 서민들에게 재앙입니다. 적정금리만이 서민이 살아가는 힘이됩니다

    • BlogIcon 선기자 2015.07.23 23:18 신고

      저금리가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지요. 하지만 집값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폭등한 전셋값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자금대출에 의지하는 많은 세입자의 경우, 금리가 오르면 힘들어지죠. 이래저래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6. ^^ 2015.07.24 00:57

    꼭 서울을 고집하지 않으신다면 은평구서 십여분 들어오면 있는 고양시 행신쪽 어떠신가요? 저희동네인데 좋아요 전세도 많이 있는걸로 아는데..

    • BlogIcon 선기자 2015.07.24 12:49 신고

      네. 이곳에서 구하기 어려우면, 고양시 쪽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7. 나그네 2015.07.24 01:02

    전세라는 개념에 이제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하는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애초에 한국에 왜 전세라는 개념이 등장했는지 그 시대 부동산 및 금융 환경을 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요, 바로 그것이 현재 전세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근원적이고 자연스러운 이유도 되고 있습니다.

    외국 처럼 임대 또는 소유 둘 중 하나로 가고 있음이 확연하니 더이상 전세라는 개념에 미련을 두면 본인만 괴로워 질 겁니다.

    • BlogIcon 선기자 2015.07.24 13:14 신고

      네 곧 전세는 없어질 겁니다. 아마도 이번에 전세를 구한다면 마지막이 되겠지요. 그때는 월세자금대출과 같은 제도가 도입될 것이고 그때는 자연스럽게 월세를 구하게 되겠지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8. ..... 2015.07.24 13:59

    흠.. 전세난 이라고는 하지만..
    저희 처가집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듯..
    거의 일년 가까이 비어있다가 세입자 들인지 이제 한 두어달 되었는데요..
    불광동이어도.. 대로변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ㅎㅎ

    암튼.. 괜찮은 집이 곧 나타날 겁니다..
    힘내세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