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신고서를 앞에 두고 가슴이 떨렸다. 봄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평생토록 불릴 이름을 정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미 이름을 정해놓았지만, 다시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 이름을 쉬 쓰지 못했다. 그동안 아내와 함께 고민했던 이름 후보들이 스쳤다. 우리 부부는 선씨에 어울리는 이름, 독특하지만 튀지 않은 이름, 예쁘고 발음하기 좋은 이름, 웬만하면 순우리말 이름을 짓기로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내에게 선샤인을 제안했다가 욕을 한 바가지로 먹었다. 많은 이들에게 이름 동냥을 했다. 그중에 선함, 선한, 선하다 등의 이름을 추천받았다. 맘에 들었다. 성과 어울리고 뜻도 좋다. 그런데, 함이라는 이름은 나중에 하마라고 놀림 받을 게 뻔했다. 이 이름들은 결국 아내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선이로라는 후보도 있었다. 듣기에 따라, 이상한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내 성과 아내의 성을 넣은 이름이다. 아내와 처형은 이 이름에 적극 지지를 보냈다. 내가 제안했지만, 얼마 뒤 난 변심했다. 결국 최종 후보는 선율과 선우리였다. 선율은 밴드를 같이 했던 친구가 제안한 것으로, 아름다운 선율에서 따왔다. 선우리는 아내가 밀었다. 

곧 가족 투표를 진행했다. 지난 11월 태교여행으로 처가에 갔다. 어머님, 아버님께 여쭸더니, 모두 선율이가 더 좋다고 하셨다. 아싸! 대세는 기울었다. 앞서 회사 사람들에게 선율로 이름을 짓는다고 했을 때 대부분 예쁘다고 했다. 부모님도 내 뜻에 반대하지는 않으실 게다. 그럼, 처형과 형님의 찬성을 얻는다면, 봄이의 이름은 선율로 확정이다.

바로 아내에게 졸라, 처형에게 전화했다. 선택한 이름은... 선우리였다. 이름 확정은 미뤄야겠다. 하지만 최후의 수단이 있다. 첫째 처조카 유라의 마음을 산다면, 처형도, 유라를 끔찍이 사랑하는 아내도 내 뜻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아내의 임신 초기, 유라는 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임신한 아내는 2표를 행사해야한다고 했다. 반박하지 못했다.

유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유라와 놀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어느 날 밥 먹으면서 유라에게 기습 질문을 던졌다. 선율과 선우리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선율이 좋단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몇 초 뒤 이모가 지은 선우리가 좋다고 바꾸긴 했지만, 어쨌든 내겐 큰 힘이 됐다. 아내는 처음에 외자를 싫어했지만, 봄이가 엄마의 성을 이름 앞에 붙여도 어색하지 않다고 설득했다. 봄이의 이름은 그렇게 정해졌다.

그런 생각을 흘려보낸 뒤, 출생신고서를 적어 내려갔다. 주민센터 직원에게 출생신고서를 전달하고 난 뒤 5분이나 흘렀을까. 그 직원은 따끈한 주민등록등본을 내게 건넸다. 거기엔 나와 아내, 그리고 봄이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봄이의 주민등록번호도 있었다. 태어난 지 보름도 안 된 아이한테 주민등록번호가 생기다니 참 신기한 노릇이다.

봄이가 대한민국 국민이 된다는 건, 국방의 의무를 가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 군대에서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다. 봄이가 갈 군대는 지금보다야 낫겠지만, 그때도 군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폐쇄적인 공간일 가능성이 크다. 유난 떠는 것일 수 있겠지만, 봄이가 군대에 갈 20년 후가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출생신고 후 옆 창구에서 출산축하금과 양육수당을 신청했다. 양육수당은 생후 11개월까지 20만 원이 지급되고, 그 뒤 1년마다 5만 원씩 줄어든단다. 어린이집에 보낼 경우에는 양육수당 대신 보육료가 나온다. ‘무상보육이니, 돈 안들이고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느냐고 주민센터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이 말했다. "많은 분들이 그런 질문 하시는데, 돈이 추가로 들죠. 그래서 다들 이게 무슨 무상 보육이냐고들 해요. , 차차 좋아지겠죠."

기쁨과 흥분을 한가득, 한편으로는 걱정을 한가득 안고 주민센터 밖을 빠져나왔다.

- 2014. 12. 25 크리스마스 밤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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