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서도 외할머니의 사랑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아이가 태어난 지 89. 그동안 아내·아이·나 이렇게 우리 세 가족만 모여 하루를 보낸 날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대부분 장모님이 함께 했다. 그 전에 어머님은 포항에서 아버님과 잘 지내시고 계셨다. 지난해 12월 아내가 아이를 낳기 며칠 전, 어머님은 짐을 싸들고 서울에 올라오셨다.

어머님은 아내 수발을 들었다. 출산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아내에게 먹였고, 아내와 새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 매일 집안 청소를 하셨다. 여기저기서 받은 아이 옷과 용품을 유아용 세제로 빨고 닦았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면, 어머님은 직접 갈아 만든 바나나 우유를 건네주셨고, 출근 직전에는 나를 붙들고 식탁에 앉혔다. 퇴근하면 어머님이 차리신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같은 시각, 아버님은 홀로 식탁에 앉으셔야 했다.

아내가 아이를 낳은 뒤, 어머님은 병실의 아내 침대 옆 간이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으리라. 3일 뒤 아내는 조리원에 들어갔고, 그제야 어머님은 포항으로 내려가셨다.

아내가 조리원에서 나올 때쯤, 어머님은 다시 올라오셨다. 한겨울 겉싸개 속 아이를 안고 집으로 내달린 건 어머님이었다. 이때부터 네 식구의 동거가 시작됐다. 침대방은 내 차지였다. 아침마다 출근을 해야 하니 편하게 자라는 어머님 말씀 때문이었다. 어머님과 아내가 새벽마다 아이를 어르고 달랬다. 아이의 똥을 처리하는 일도 아이를 목욕시키는 일도 어머님이 전담하셨다. 아이가 지금껏 건강하게 클 수 있었던 건 어머님 덕이다.

어머님은 꽤 힘드셨을 것이다. 며칠 전, 난 아이와 함께 밤을 보냈다. 아이는 2~3시간마다 깼다. 기적이 일어난다는 생후 100일에 가까워지는 탓인지 비교적 수월하게 분유를 먹이고 트림이 나오도록 한 뒤, 아이를 눕혀 재울 수 있었다.

20여분 만 고생하니, 나도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날 새벽에 깬 시간을 합치면 1시간도 안될 것이다. 하지만 그날 너무 졸려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낮잠을 자도 피곤은 풀리지 않았다. 나이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환갑을 바라보는 어머님은 오죽했으랴. 어머님은 아이를 돌본 지 며칠 만에 입술이 터졌다.

생각해보면, 어머님은 나 때문에 더 힘들었을 것 같다. 33(10)의 작은 집, 그곳에서도 아주 아담한 거실에서 사위와 지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다. 저녁마다, 그리고 주말엔 온종일 사위와 함께 좁은 공간에 있으면서 얼마나 불편했을까.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어머님은 나보고 쉬라고 말씀하셨다. 너무 죄송해, 몇 번 설거지를 했다. 나중에 어머님이 나를 칭찬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솔직히 고백할게요

외할머니와 아이는 '절친'이다.

사실 어머님 탓에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님이 아니었으면 불면의 밤을 보냈을 텐데도,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부끄럽다. 난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으려고 한다. 조용히 라디오를 들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어머님이 오신 뒤에 텔레비전을 끌 수 없었다. 서울의 작은 딸 집에서 어머님의 유일한 낙은 아마도 텔레비전 시청일 것이다. 난 무심코 텔레비전을 껐다가 아내에게 혼나기도 했다. 철없는 사위다.

어머님과 같이 지내면서 가장 불편한 것은 생리현상이다. 아내와는 오래 전에 방귀를 텄다’. 어머님과 지내면서 가끔 급하게 방귀를 분출할 때가 있었다. 처음 몇 번은 간신히 소리를 숨길 수 있었고 급박하게 화장실로 뛰어간 적도 있다. 하지만 한 번은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내가 웃으며 날 타박했고, 어머님은 엷은 미소를 지으셨다. 그 뒤로는 마음 편하게 방귀를 뀌었다.

1월 말 아내는 밥벌이를 위해 글을 썼다. 아이를 보느라 일에 전념할 수 없는 아내는 어머님께 구조신호를 보냈다.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포항으로 갔고 설 연휴 때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일이 끝나지 않은 아내를 위해 어머님이 함께 올라오셨다

어머님은 또 뒷바라지를 하셨고, 오늘 포항으로 내려가신다. 어머님이 없었다면, 아내와 나는 참 힘겨운 시간들을 보냈을 것이다. 특히, 아내는 계속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고, 가계부는 마이너스였을 것이다. 주변에 양쪽 어머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는 부부들이 있다. 얼마나 힘들까.

어머님께 약을 지어드리겠다고 다짐했는데,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오히려 어머님이 아내에게 약을 지어주셨고, 언젠가는 피곤한 기색을 내비치는 나에게 피로회복제를 건네주셨다. 이제는 어머님께 약을 지어드리겠다는 약속을 지켜야겠다. 홀로 지내셨을 아버님께도 말이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이 말을 꼭 해야겠다.

어머님 아버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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