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c)

대통령님.

안녕하신지요? 혼을 다해 국정 운영에 전념하고 있으신 것으로 압니다. 특히 최근 대통령님이 역점을 기울이고 있는 여러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해 "걱정으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한 말씀을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돌쟁이 아들을 둔 아빠입니다. 얼마 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는 계속 울었습니다. 다행히 오늘은 친구들과 잘 놀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아이가 얼마나 대견해 보이던지요. 정부가 어린이집 비용을 보조해주는 덕분에 저와 아내는 큰 부담 없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말씀처럼, 진실한 사람들이 국민을 위해 일을 한다면 좋은 정책이 많아지겠지요. 저 역시 진실한 사람들이 국민을 위해 일할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님은 지난달 22일 국무회의에서 어떤 사람이 진실한 사람인지 말씀하셨지요.

"옛말에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은 이가 진실된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취하고 얻기 위해서 마음을 바꾸지 말고, 일편단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반대로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지 않은 사람이 국민을 위해 일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국정은 삐거덕거릴 겁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상황이 그렇습니다.

누구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느냐고요? 바로 대통령님입니다.

대통령님, 누리과정을 잘 알고 있으시죠?

누리과정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23월 처음 시행됐습니다. 20115월 김황식 국무총리는 누리과정(당시 만 5세 공통과정)을 도입하면서 "어린이들의 교육과 보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보다 강화하려는 정부의 시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 당시 대통령님은 '누리과정 강화 공약'을 내놓으며 "국가가 보육을 책임지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누리과정은 2013년부터 만 3~4세로 확대하기로 한 상황이었습니다.

대통령님의 대선공약집 첫머리에 '국민행복 10대 공약'이 나옵니다. '확실한 국가책임 보육', '5세까지 국가 무상보육 및 무상유아교육'이 눈에 들어옵니다. 272쪽을 볼까요? 예산 미반영으로 인한 헛공약 우려 탓인지 '3~5세 누리과정 지원 비용 증액', '국가책임 보육 및 유아교육을 위한 예산의 안정적 확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해 대선을 사흘 앞둔 1216, 대통령님은 TV 토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0세에서 5세 보육은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님은 대선에서 승리했습니다

아이 키우기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20131, 대통령님은 전국광역시도지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보육사업과 같은 전국 단위로 이뤄지는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오히려 누리과정 확대에 따른 막대한 예산 부담을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은 이가 진실된 사람'이라는 말씀을 적용하면, 대통령님은 진실한 사람이 아닙니다.

2013년 교육부는 이듬해 예산안을 짜면서, 16000억 원의 누리과정 예산을 반영했습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이를 모두 삭감했습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예산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시도교육청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공약인 누리과정을 시행하느라 더 큰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지난해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선 공약 파기'라는 비판이 커지자, 그해 10월 최경환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와 황우여 사회부총리(교육부 장관)가 나서 '누리과정은 시도교육청의 책임이고, 국고 지원은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내년 총선에 나가기 위해 부총리 자리를 던진 두 분에 대해 대통령님은 진실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더군요.

적반하장입니다

정부가 누리과정을 도입·확대하고 생색을 낸 것을 감안하면, 누리과정이 시도교육청의 책임이라는 말은 시도교육청 입장에서는 황당할 노릇입니다. 이런 일은 조금은 복잡한 제도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다 보고 받고, 알고 계신 내용이겠지요.

2011년 누리과정 도입 발표 때, 이명박 정부는 예산 부담을 일반 정부 예산이 아닌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떠넘겼습니다. 교부금은 정부가 세금을 걷어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내는 돈으로, 시도교육청 예산의 70%를 차지합니다.

교부금은 법률에 따라 내국세 총액의 20.27%로 정해져 있습니다. 시도교육청 예산이 안 그래도 빠듯한데, 누리과정 예산까지 떠맡으라고 하니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정부는 경제가 활성화되면 세금도 더 걷히고 교부금도 많아질 것이라며 밀어붙였습니다.

하지만 정부 말과는 달리 교부금은 뒷걸음질 쳤습니다. 정부는 2015년 전국 시도교육청에 494000억 원을 교부금으로 내려보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394000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시도교육청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지금까지는 빚을 내거나 학교 시설 개선 예산을 줄이는 등 시도교육청의 임시방편으로, 보육 대란은 가까스로 피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내년 전국 어린이집 누리과정에 필요한 예산은 약 21000억 원. 국회는 지난달 본회의에서 누리과정을 우회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예비비 3000억 원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를 고려해도 18000억 원이 부족합니다.

보육 대란이 불가피합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수많은 부모는 가슴을 졸이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처형과 제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대통령님, 지난 대선 때 한 표를 호소하며 많은 아이 엄마 아빠를 만났을 겁니다. 진실한 사람은 약속을 잊지 않는 법입니다. 그때의 약속을 잊지 않고 보육 대란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주셨으면 합니다. 대통령님이 이를 외면한다면,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이 아빠의 한 사람으로서 호소 드렸습니다.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한 달 전, 제가 <오마이뉴스>에 쓴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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