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와 여자 친구는 말을 잃었다. 당산역 앞 커피숍에서 1시간 동안 앉았지만 오고간 대화는 몇 마디 되지 않았다. 하염없이 창밖 거리풍경만 바라봤다. 나는 애써 "저 아파트는…"이라고 말을 꺼내놓고도, 이내 "아니다"라며 말을 삼켰다. 여자 친구는 내게 "우울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토닥거렸다. 울컥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시간 전, 우리는 멋진 신혼집을 상상하며 행복해했다. 거창한 것을 꿈꾼 건 아니었다. 상상 속 신혼집은 소박했다. 처음부터 강남에 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또 굳이 아파트에 들어갈 생각도 없었다. 작더라도 깔끔한 집. , 한강이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봄날 아내와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고 싶은 작은 꿈 때문이다. 그래서 고른 곳이 선유도역 인근이다. 직장이 가깝다는 것도 고려됐다.

신혼집 예산은 1억 원으로 잡았다. 대학 졸업 후 7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술 좀 사 달라'는 후배들의 핀잔을 외면하며 모은 돈에다 수천만 원의 대출을 얹을 예정이다. 선유도역 앞 허름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에 섰을 때, 기대감에 부풀었다. 문을 빠끔히 열었더니 앉아있는 사장님이 보였다. 태어나서 32년 만에 처음으로 내 집을 구하기 위해 중개업소에 들어갔다. 심장이 쿵쾅쿵쾅 소리를 냈다. 입을 뗐다.

"신혼부부가 살만한 1억 원짜리 전세 있을까요?"

원래 가격을 더 낮춰 부르려했다. 주위에서 전세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얘기를 듣고 1억을 부른 참이었다. 사장님은 "1억이라고요?"이라고 되물었다. 황당하다는 투였다. 순간 겁을 먹었다. '뭐가 잘못된 거지?' 사장님이 말했다. "무슨 1억으로, 1억2000만 원은 줘야 괜찮은 빌라를 구하지."

순간 거대한 벽과 마주선 것 같았다. 사장님은 1억이면 동네 구석에 있는 낡은 다세대 주택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부른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낡은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고 싶지 않다. 유년시절 반지하의 퀴퀴함과 낡은 다세대 주택의 끔찍한 겨울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한 선배는 10년 전 반지하에서 신혼을 시작했다고 했지만, 나로서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힘없이 중개업소를 빠져나왔다. 집을 알아보기 위해 처음 찾은 중개업소에서 느낀 절망은 거대했다. 좌절감이 나를 덮쳤다. 저 허름한 아파트도 우리가 넘볼 곳이 아니구나 싶었다. 저기 보이는 빌라도 우리를 외면하는 것 같았다. 내 우울한 표정에 여자친구가 "오늘은 집 보러 다니지 말자"고 했다. 터벅터벅 걸었다. 우린 어느새 당산역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허브차를 시켰지만, 향을 느낄 수 없었다. 4월의 어느 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세상으로부터 카운터펀치.. 그래도 다시 몸을 일으킨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난 대학 졸업 후 남들만큼 치열하게 살았다. 그렇다고 사치를 부리지도 않았다. 차 대신 자전거를, 택시 대신 버스를 탔다. 술 먹은 뒤 어떻게든 지하철 막차를 잡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20대를 흘려보냈다. 1억은 내 20대와 맞바꾼 돈에, 또 그만큼 대출을 받은 것이다. 이 돈으로 서울에 신혼집 구할 수 없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이 잘못된 게 아닐까? 30대 신혼부부가 안락한 보금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사회는, 분명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내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세대 중 많은 이가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 낳기를 포기하고 있다. 집을 투기의 수단으로 삼았던, 집값 폭등의 시대가 남긴 상흔일터다. 기성세대가 바랐던 집값 상승은 결국 그들의 자녀인 우리 세대에게 큰 고통이 됐다.

앞으로를 생각하면 한숨은 더 깊어진다. 우리사회가 내놓은 해결책은 내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집값 하락? 요원하다. 정부도, 건설사도, 집 가진 사람들도 원하지 않는다. 이런 때에 박근혜 정부가 말한다. "빚내서 집사라!" 속을 수 없다. 여기에 혹하면, 빚의 구렁텅이에 빠질 게 분명하다.

신혼집 구하기 첫날, 세상으로부터 카운터펀치를 맞았다. 세상은 '1억으로 신혼집을 구한다고? 미쳤어요?'라고 하는 것 같다. 어지럽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거야.' 쓰러진 몸을 다시 일으킨다.

[1억 신혼집 구하기 프로젝트]는 4~5일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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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홍홍 2013.05.20 09:31 신고

    앗, 드디어 시작! 기대됩니당~

    • BlogIcon 선기자 2013.05.20 13:59 신고

      첫댓글!! 감사!! 앞으로 꾸준한 업데이트 할게요.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도 화이팅!!!

  2. 김귀귀 2013.05.20 10:33 신고

    이제야 부동산의 쓴맛을 느끼기 시작하는군 ㅎㅎ
    간바레 ㅋㅋ

  3. 이기자 2013.05.20 11:30 신고

    그래서 집은 구하셨나요?ㅠㅠ

  4. 오로빌 2013.05.20 14:35 신고

    집 구하기 꼭~~성공하시길 바랄게요 ㅎㅎ

  5. 최게바라 2013.05.20 15:17 신고

    네가 경제부 기자, 그것도 부동산 전문 기자였다는 사실은 도대체 언제 밝힐 거냐? ㅡ,.ㅜ

  6. 귀염둥이 2013.05.21 01:46 신고

    경기도로 눈을 돌리세요

    • BlogIcon 선기자 2013.05.22 09:29 신고

      직장 때문에 서울에서도 싼 지역을 알아보고 있고요, 이제 경기도도 알아봐야겠지요^^

  7. 김정열 2013.05.22 17:18 신고

    선유도를 포기하고 조금 더 외곽 방화동으로 오면 1억짜리 아파트 있을걸요. ㅎㅎ 신축빌라도 있을테고...전 동네 조용하고, 공항철도 있어서 서울역도 가깝고 좋던데

    • 선기자 2013.05.23 10:48 신고

      방화동도 괜찮겠네요. 직장을 감안해 이곳저곳 알아보고 있습니다. 의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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