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오래도록 지켜줄게

원래는 보지 않으려고 했다. 가슴이 아플 것 같았다. 결국 영상을 봤다. 분노를 가라앉히기 쉽지 않았다. TV에서는 하루 종일 보육교사가 네 살짜리 아이를 때리는 영상을 내보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건만. 아내는 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만 보고 싶은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둘째 처조카 예린이도 네 살이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조그맣고 예민한 아이다. 또래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조카와 같은 나이의 아이가 폭력 앞에서 쓰러졌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없으니, 아이가 말을 들으니, 보육교사는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영혼은 큰 상처를 입었을 게다.

멀지 않은 미래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을 하는 우리 부부는 한숨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는 봄이 되면 산후 조리를 끝내고 일거리를 구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도우미를 부르자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우리 부모님은 새벽 내 노래방을 운영하시기에 아이를 돌보기 힘들다. 결국 우리 부부는 아이를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계시는 포항으로 보낼지 고민하고 있다. 아이를 떠나보내는 게 가슴이 아프지만,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다른 방법이 없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쉽게 결정을 못 내리겠다.

부모와 떨어질 아이한테도 미안하지만, 장인어른과 장모님께도 참 죄송한 일이다. 장모님은 지금 서울에 올라와 아내와 함께 아이를 돌보고 계신다. 출근하는 내게는 푹 자라고 하시고, 밤새 칭얼대는 아이를 돌보신다. 장모님의 입술이 터진 지 오래다. 며칠 전 연고와 피로회복제를 사다드렸을 뿐, “저희 부부가 돌볼 테니 쉬세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염치없게도 아이를 포항에 보낼까 생각하니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주변의 많은 사람은 엄마가 몇 년간 아이를 돌봐야, 아이 정서에 좋다고 했다. 알고는 있지만, 고개를 쉬 끄덕이기 어렵다. ‘여유가 있다면’, ‘맞벌이를 안 해도 된다면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지만, 역시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쯤엔 서울로 데려올 생각이다. 장모님께 오래 신세지기는 어려우니 아마 돌 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것 같다. 의사 표현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하루 종일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게 여간 불안한 일이 아니다. 가격이 싸고 그나마 믿을만한 국공립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싶지만, 대기자가 수백여 명이다.

우리 집 바로 앞에는 가정형 어린이집이 있다. 오다가다 이곳을 지날 때, 어린이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게 된다. 보육교사가 짜증을 내며 아이들을 다그칠 때가 있다. 보육교사도 힘들어서 그런 거겠지만, 아이들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을까. 아이를 웬만한 어린이집에는 보내지 못하겠다.

우리 아이를 위해 무엇이 최선일까.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선택이 될 것 같다.

2015. 1. 16 새벽 아빠가


처형네에서 햇볕 받는 아이.

몸무게 4.8kg, 60cm.

태어난 지 한 달,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우리 집을 방문한 간호사가 깜짝 놀랄 정도다. 누굴 닮았는지 허리와 다리가 길어 보인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 "성공했네"라는 말을 듣는다. 눈이 작긴 하지만 가끔 못생겨 보일 때도 있지만, 아이가 아내를 닮는다면 조금씩 잘 생겨질 터다.

아이의 몸무게도 많이 늘었다. 태어날 땐 3.18kg이었다. 아이는 참 많이 먹는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이맘때의 아이들은 2~3시간마다 80가량의 모유나 분유를 먹는단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120도 꿀꺽꿀꺽 잘 삼킨다. 사레들릴까 걱정이다. 우렁찬 트림과 방귀 소리에 우리 부부는 깜짝 놀란다. 어찌나 잘 싸는지 하루에 스무 번 넘게 아이의 기저귀를 간다.

요즘 내 머리 속을 채우고 있는 건 '좋은 아빠 되기'. 우선 책과 방송으로 공부했다. 아내와 아이가 조리원에 있을 때, 굳이 도서관에 가서 육아서를 빌려 읽었고, 아빠의 육아를 다룬 EBS <다큐프라임> '파더 쇼크' 편도 봤다. 일할 때 가끔 아빠들의 육아일기를 검색해 읽어보곤 한다.

당장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방법은 아이와 신체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일 터다. 아직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집에 있을 때면 아이를 내 품에 두려고 하고, 아이가 배고파하면 내가 먼저 젖병을 꺼내든다. 아마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힘들어질 것 같다. 육아 선배들이 한목소리로 "주말에 집에 있는 것보다 회사 나오는 게 더 편하다"라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가끔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영화를 보고 싶고, 자전거를 타고 싶고, 책도 읽고 싶다. 얼마 전 아이를 아내에게 맡겨두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마신 소맥~”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직 아내에게 얘긴 안했지만, 돌아오는 주말 오래된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기로 약속했다.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을 알겠는데, 마음먹는 건 쉽지 않다.

지난 주말 처형네에 갔다. 아내와 이이는 집이 넓고 따뜻한 처형네에서 일주일을 보내기로 했다. 이곳에는 내가 사랑하는 처조카 둘이 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첫째 유라는 나와 노는 걸을 참 좋아한다. 지난 3년간의 프로젝트로 얻은 결실이다. 3년 전, 나와 아내가 처음 손을 맞잡았을 때 아내는 처형네에 얹혀살고 있었다. 아내는 첫 조카 유라를, 유라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모인 아내를 사랑했다.

아내와 처가 식구들의 점수를 따기 위해, 난 유라와 친해지려 부단히 노력했다. 피곤해도 열심히 놀았다. 시나브로 처조카와 이모부의 사이는 가까워졌다. 우리와 처형네는 자주 본다. 유라가 빌라 5층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올라와 우리 집 문을 열고 이모와 반갑게 인사한 뒤, 하는 말은 어김없다.

"삼촌, 아니 이모부! 같이 병원 놀이 하자."

주말 처형네 현관문을 열자 유라는 내 옷을 끌어당기며 "놀자"고 했다. 전날 꼬박 밤을 새운 탓에 피곤했다. 선뜻 "그래 놀자"고 못했다. "조그만 쉬었다 놀자", "우리 밥 먹고 놀자“...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밤이 돼서야 같이 놀았다. 얼마 못 놀고 유라는 침실로 향했다.

늦은 밤 처형으로부터 유라의 기다림을 들었다. 우리 가족이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유라는 나를 기다린다면서 현관문 앞에서 계속 서성였단다. 나와 조금이라도 더 놀기 위해 하기 싫은 숙제도 후딱 해치웠단다. "나는 이모무랑 노는 게 정말 좋다"고 했단다. 가슴이 먹먹했다. 미안했다. 피곤하더라도 더 많이 놀아줄 걸 그랬다.

좋은 이모부가 돼야겠다. 피곤하더라도 조카의 마음을 헤아려야겠다. 그렇게 좋은 이모부가 된다면 어느새 좋은 아빠가 되는 길도 쉬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 2015. 1. 12. 저녁 아빠가

아이의 작은 발, 앞으로 건강하게 자라길.


1231일의 일이다. 늦은 밤까지 칭얼대던 선율이가 잠이 든 건 새벽 2시가 지나서였다. 그제야 잠깐의 평온이 찾아왔다. 아이는 어김없이 3시간 뒤 큰 소리로 울어대며 깰 것이다. 그때까지 잠을 자둬야 한다. 피곤에 찌든 우리 부부는 얼른 불을 끄고 누웠다. 모유 수유로 지친 아내에게 아이가 울면 유축해놓은 모유를 먹이겠으니, 푹 자라고 했다.

그로부터 1시간 뒤. 난 잠들지 못했다. 아이의 숨소리 때문이다.

그르렁, 그르렁...

코가 막혔는지 숨을 거칠게 쉰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르렁 소리가 사라진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나도 모르게 몸이 튕겨져 나가, 아이의 얼굴에 내 얼굴을 묻었다. 숨결이 느껴진다. 안도의 한 숨을 내쉰다. 다시 그르렁, 그르렁. 걱정이 커진다.

그렇게 몇 번이나 진땀을 뺐는지 모르겠다. 새벽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에 배고파 깨어난 아이는 아내가 유축해놓은 모유를 먹고도 계속 보챘다. 어르고 달래도 아이는 낑낑 대며 잠들지 못했다. 아이도 나도 불면의 밤을 보냈다. 새벽 6시쯤 난 장렬히 전사했다. 아내에게 칭얼대는 아이를 떠맡긴 채.

요새 우리 아이가 어디 아픈 건 아닐까 하고 걱정할 때가 있다. 아이들은 생후 100일까지 엄마의 면역력을 지니고 있어 크게 아프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아이도 다행히 건강하다. 그럼에도 그르렁거리며 숨 쉬는 아이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비염이 있는 아내는 아이의 거친 숨소리가 자기 탓인 것 같다며 마음 아파한다.

아이가 태어난 후 아내가 처음 눈물을 흘린 것도 아이의 그르렁 탓이다. 아이는 조리원 신생아실에 있을 때부터 숨을 힘들게 쉬었다. 아이 얼굴 옆에는 항상 젖은 손수건이 놓였다. 조리원에서는 아이가 열도 없고 분유도 잘 먹으니 아픈 게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를 다른 아이들로부터 떼어놓아 구석진 곳에 눕혔다.

특히, 한 조리원 선생님은 아내가 방을 건조하게 해놓은 탓이라고 말했다. 그날 아내는 울음을 터트렸다. 늦은 밤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처형과 오랜 통화를 한 후에야 잠이 들었다. 아내는 이후 조리원을 찾은 소아과 의사로부터 "아이는 아픈 게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서야 숨을 돌렸다.

아이가 집에 온 후, 우리 부부는 유명한 코 세정제 피지오머를 사용했다. 다소 효과가 있지만, 아이는 다시 그르렁거린다. 적정 온·습도를 맞추고 코막힘에 좋다는 올바스 오일을 가습기에 넣고 사용하지만, 그르렁은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종종 아이의 얼굴이 시뻘게지는 모습에 화들짝 놀랜다. 다른 아이도 이런 행동을 하지만, 우리 아이는 더 자주하는 것 같다. 어디가 아픈 건 아닐까. 아내는 병원에 가보자고 한다. 아이의 조그마한 행동 하나에도 신경이 쓰인다. 다들 아이를 키우면서, 아픈 아이를 업고 새벽 응급실을 여러 번 찾는다고 한다. 그때 얼마나 가슴이 떨릴까.

새해가 밝자 소원 하나를 빌었다. 우리 아이, 안 아프고 건강하게 크게 해달라고. 차라리 내가 아프도록 해달라고.

- 2015. 1. 3. 저녁 아빠가

모유수유를 위한 젖꼭지.


아들 바보. 선율이 바라기인 내 모습에 장모님이 지어준 별명이다. 아이를 품에 안으면, 절로 흐뭇해진다. 그런데 이제는 아들 바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미안한 감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자정을 훌쩍 넘긴 지금, 젖을 짜내고 있는 아내를 보면 말이다.

아이만 계속 보고 있네요. 그렇게 좋아요?” 아내로부터 몇 번이나 들은 말이다. “, 너무 귀여워요.” 오늘 아내의 질문은 조금 달랐다. “힘든 건 난데, 왜 아이만 안고 있어요?” 난 쉽게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 당신이 덜 힘들 테니까요.” 겨우 찾은 대답은 궁색했다.

조리원에서 나온 뒤, 아내가 섭섭했다. 아내는 아이와 관련된 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엄마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못마땅하다. 조심조심 아이의 기저귀를 갈 때, 아내는 왜 빨리 갈지 않아요.”, “애 다리를 너무 팍 치켜드는 것 아니에요?”라고 다그친다.

아이의 속싸개를 살 때, 아내는 애 추운데 빨리 싸줘요라며 날카로움이 가득 담긴 말을 내놓는다. ‘나도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내의 말에 소심한 나는 상처를 받는다. 그럴 땐 언짢은 기분을 숨길 수 없나 보다. 쌀쌀해진 내 태도에 아내는 왜 나한테 냉랭해요?”라고 묻고, 난 "아니에요"하며 자리를 피한다.

아내는 오늘 출산을 한 뒤, 내 멘탈이 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출산의 고통은, 임신의 끝이기도 하지만, 육아의 시작이기도 하다. 겨우 며칠 아내의 육아를 도운 남편 입장에서 육아는 참 힘든 일이다. 아내의 육아는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이기도 하다. 지금껏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오늘 아내의 말에 내 마음도 이를 깨달았다.

아내는 분유를 최대한 적게 먹이고 최대한 모유 수유를 하기로 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다. 많이 힘들기 때문이다. 아이는 생존을 위해 있는 힘껏 젖을 빤다. 그만큼 아내의 젖꼭지는 상처를 입는다. 살갗이 벗겨질 정도다. 아이는 2~3시간 마다 젖을 빤다. 상처는 계속 덧난다. 너무 아파서 수유나 유축을 하지 못하고, 가슴을 옷 밖으로 내놓고 있다. “분유를 더 많이 먹이자는 나의 제안에도 아내는 모유 수유를 고집한다.

모성애는 세다. 아이는 배고프면 울고, 기저귀가 젖으면 운다. 새벽에도 2~3시간 마다 아이는 힘껏 운다. 난 쉽게 깨어나지 못한다. 아내는 일어난다. 나도 새벽에 일어난 적이 있다. 2시간 동안 달랬지만 아이는 계속 칭얼댔다. 난 어느 순간 난 잠들어버렸다. 아내는 끝까지 아이를 책임졌다. 새벽 어스름 아이는 또 울었고 아내가 깨어났다.

아이를 낳은 뒤, 아내의 삶은 사라졌다. 아내는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다. 아내의 날카로움과 예민함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일은 아내가 겪고 있는 일들에 비하면 참 쉬운 일이다. 아내의 짜증을 언짢게 여겼던 내가 부끄럽다. 아들 바보가 아닌, 아내 바보가 돼야겠다. 아이가 언젠가는 아내의 고된 날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 2014. 12. 31 새벽 아빠가

봄이의 기저귀를 갈기 전에 찰칵!


크리스마스에 봄이가 집으로 왔다. 조리원에서 나온 후 처음 아기와 집에 왔을 때 부모들이 느끼는 멘붕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우리의 경우, 다행히 장모님이 며칠 봐주신다고 해서 안심이 됐다.

봄이의 사촌누나 유라도 봄이를 보고 싶다며 달려왔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가는 일곱 살 유라가 봄이를 안는 모습에 온 집안은 훈훈해졌다. 우리에겐 멘붕 따윈 없었다. 오랫동안 기억될 행복한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봄이는 조리원에서 먹고 자고, 자고 먹는다. 봄이가 울면, 난 수유패드를 무릎에 얹고 봄이를 안는다. 아내가 유축해놓은 모유를 먹인다. 꿀꺽꿀꺽 잘 먹는다. 먹고는 자야, 모두가 편하다. 그런데, 봄이는 집에서 잘 안잔다. “봄이를 재우라는 아내의 명령이 떨어졌다. 봄이가 아빠의 목소리에 익숙해지도록 계속 말을 걸라는 주문도 있었다. 봄이를 높이 들어 어깨로 안은 뒤 집 구석구석을 거닌다. 집이 작아 제자리를 맴돈다는 표현이 정확할 듯 싶다.

봄이의 목이 뒤로 꺾이지 않게 허리를 뒤로 약간 젖힌다. 몇 분 지나지 않았는데 허리가 아프다. 봄이의 몸무게가 4kg를 넘는 탓인지 봄이를 안은 채 10분을 넘기니 팔도 아프다. 이제 시작인데, 어쩌나 싶다. 아내 몰래 침대방으로 가, 봄이를 침대에 눕혔다. 불도 껐다. “봄이야, 잘자.“ 아빠 미소에도 봄이는 찡찡거릴 뿐, 안 잔다. 결국 난 임무에 실패했고, 아내와 어머님이 한동안 고생했다.

리스마스 하루 동안 기저귀를 몇 번이나 갈았을까. 잘 먹는 봄이는 오줌도 잘 싼다. 기저귀를 계속 갈다보니 손에 익었다. ‘육아 별거 아니네.’ 오만은 비극을 부른다.

방안에서 뿌직 소리가 났다. .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다시 뿌지직 소리가 났다. 어머님이 봄이의 기저귀를 열었다. 설사였다. 이 모습을 본 나와 아내는 몸이 굳었다. 처음 경험해보는 상황이다. 어머님이 봄이의 기저귀를 갈려는 순간, 다시 한 번 뿌지직. 봄이의 항문에서 터져 나온 설사는 기저귀를 넘어서 카펫에 떨어졌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어머님이 대부분 치웠다. 카펫에 노란색 흔적만 남았다. 물티슈로 열심히 닦았다. 노란색은 끝내 지워지지 않았다. 어머님께 카펫을 빨자고 했다. 어머님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앞으로 계속 똥 싸고 여기저기 묻을 텐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는 악몽으로 끝났다. 이튿날인 오늘 내 손에 봄이의 똥이 묻었다.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자, 어머님이 말씀하신다.

이제 시작인데 괜찮나.”

- 2014. 12. 26 밤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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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서를 앞에 두고 가슴이 떨렸다. 봄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평생토록 불릴 이름을 정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미 이름을 정해놓았지만, 다시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 이름을 쉬 쓰지 못했다. 그동안 아내와 함께 고민했던 이름 후보들이 스쳤다. 우리 부부는 선씨에 어울리는 이름, 독특하지만 튀지 않은 이름, 예쁘고 발음하기 좋은 이름, 웬만하면 순우리말 이름을 짓기로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내에게 선샤인을 제안했다가 욕을 한 바가지로 먹었다. 많은 이들에게 이름 동냥을 했다. 그중에 선함, 선한, 선하다 등의 이름을 추천받았다. 맘에 들었다. 성과 어울리고 뜻도 좋다. 그런데, 함이라는 이름은 나중에 하마라고 놀림 받을 게 뻔했다. 이 이름들은 결국 아내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선이로라는 후보도 있었다. 듣기에 따라, 이상한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내 성과 아내의 성을 넣은 이름이다. 아내와 처형은 이 이름에 적극 지지를 보냈다. 내가 제안했지만, 얼마 뒤 난 변심했다. 결국 최종 후보는 선율과 선우리였다. 선율은 밴드를 같이 했던 친구가 제안한 것으로, 아름다운 선율에서 따왔다. 선우리는 아내가 밀었다. 

곧 가족 투표를 진행했다. 지난 11월 태교여행으로 처가에 갔다. 어머님, 아버님께 여쭸더니, 모두 선율이가 더 좋다고 하셨다. 아싸! 대세는 기울었다. 앞서 회사 사람들에게 선율로 이름을 짓는다고 했을 때 대부분 예쁘다고 했다. 부모님도 내 뜻에 반대하지는 않으실 게다. 그럼, 처형과 형님의 찬성을 얻는다면, 봄이의 이름은 선율로 확정이다.

바로 아내에게 졸라, 처형에게 전화했다. 선택한 이름은... 선우리였다. 이름 확정은 미뤄야겠다. 하지만 최후의 수단이 있다. 첫째 처조카 유라의 마음을 산다면, 처형도, 유라를 끔찍이 사랑하는 아내도 내 뜻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아내의 임신 초기, 유라는 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임신한 아내는 2표를 행사해야한다고 했다. 반박하지 못했다.

유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유라와 놀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어느 날 밥 먹으면서 유라에게 기습 질문을 던졌다. 선율과 선우리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선율이 좋단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몇 초 뒤 이모가 지은 선우리가 좋다고 바꾸긴 했지만, 어쨌든 내겐 큰 힘이 됐다. 아내는 처음에 외자를 싫어했지만, 봄이가 엄마의 성을 이름 앞에 붙여도 어색하지 않다고 설득했다. 봄이의 이름은 그렇게 정해졌다.

그런 생각을 흘려보낸 뒤, 출생신고서를 적어 내려갔다. 주민센터 직원에게 출생신고서를 전달하고 난 뒤 5분이나 흘렀을까. 그 직원은 따끈한 주민등록등본을 내게 건넸다. 거기엔 나와 아내, 그리고 봄이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봄이의 주민등록번호도 있었다. 태어난 지 보름도 안 된 아이한테 주민등록번호가 생기다니 참 신기한 노릇이다.

봄이가 대한민국 국민이 된다는 건, 국방의 의무를 가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 군대에서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다. 봄이가 갈 군대는 지금보다야 낫겠지만, 그때도 군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폐쇄적인 공간일 가능성이 크다. 유난 떠는 것일 수 있겠지만, 봄이가 군대에 갈 20년 후가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출생신고 후 옆 창구에서 출산축하금과 양육수당을 신청했다. 양육수당은 생후 11개월까지 20만 원이 지급되고, 그 뒤 1년마다 5만 원씩 줄어든단다. 어린이집에 보낼 경우에는 양육수당 대신 보육료가 나온다. ‘무상보육이니, 돈 안들이고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느냐고 주민센터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이 말했다. "많은 분들이 그런 질문 하시는데, 돈이 추가로 들죠. 그래서 다들 이게 무슨 무상 보육이냐고들 해요. , 차차 좋아지겠죠."

기쁨과 흥분을 한가득, 한편으로는 걱정을 한가득 안고 주민센터 밖을 빠져나왔다.

- 2014. 12. 25 크리스마스 밤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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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후배들의 기저귀 선물

봄이야.

봄이가 태어난 지도 어느덧 열하루가 지났네. 네가 태어나던 그 순간이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한데, 넌 벌써 그때의 네가 아니구나. 3.18kg로 태어났는데, 지금은 3.72kg. 정말 많이 컸단다. 조리원에서 넌 식탐이 많다고 소문났어. 잘 먹고 건강한 네 모습에 엄마 아빠는 흐뭇해. 그런데 말야, 엄마는 좀 힘들단다.

네가 태어날 때, 엄마는 많이 아팠어. 평생의 식은땀을 그날 다 흘린 것 같았지. 너를 낳은 뒤에도 엄마의 식은땀은 마를 날이 없어. 네가 더욱 건강하게 클 수 있도록 엄마는 매일 젖을 짜고 있어. 출산의 고통보다 크다는 젖몸살을 겪었고, 매일 통곡의 마사지도 받았어. 그제야 조금씩 네가 엄마의 젖을 빨 수 있었단다. 어느 날 새벽 홀로 의자에 앉아 네게 먹일 젖을 짜던, 네 엄마, 아니 내 아내의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단다.

엄마는 네 걱정에 눈물짓기도 했어. 봄이가 킁킁거려서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많았거든. 엄마는 봄이가 건강하길 빌었고, 다행히 아픈 데는 없었단다. 네가 앞으로 건강하게 자란다면, 그건 너를 향한 엄마의 사랑 때문일거야. 지금은 엄마의 품에 안겨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지만, 먼 훗날엔 네가 엄마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기를 바랄게.

엄마가 너를 낳기 며칠 전, 네 외할머니가 집에 오셨어. 외할머니는 너를 위해 집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했어. 네가 뒹굴 이불과 네가 입을 옷들을 모두 깨끗하게 빨고, 가지런히 정리했어. 난 엄두도 못 냈는데 말야. 외할머니는 그렇게 네 첫 보금자리를 꾸렸어. 며칠 뒤면, 넌 조리원에서 나와 처음으로 엄마 아빠와 함께 집에서 지낼 거야. 넌 그곳에서 외할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겠지.

봄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듬직한 이모가 있어. 네가 세상의 쓴맛을 보게 된다면, 제일 먼저 엄마 아빠가 아닌 이모에게 연락하는 게 여러모로 좋을 거야. 어떤 문제건, 이모가 다 해결할거야. 넌 벌써 부자야. 네 첫 번째 탈것인 유모차를 비롯해 네 짐은 아빠 것보다 많아. 모두 이모의 선물이란다. 사실 네 사촌누나들이 사용한 건데, 아주 깨끗해. 이모가 외할아버지 댁에 차곡차곡 쌓아뒀거든. 그리고 봄이가 목욕할 작은 욕조도 이모의 선물이야. 너의 첫 디즈니 상품도 이모가 사준 옷이야.

봄이의 외할아버지는 네가 조리원에서 킁킁 거린다니까, 가습기를 바로 주문하셨어. 봄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마트만 가면 네 옷을 사느라 정신 없으셔. 네 작은 아빠와 작은 엄마는 너의 건강한 탄생과 성장을 기도했어. 예쁜 옷도 사줬단다.

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봄이를 사랑했어. 가족뿐만 아니라 봄이의 엄마 아빠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네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세상에 나오기를 기도했단다. 그래서일까, 봄이는 건강하게 탄생했고 건강하게 크고 있어.

아빠의 선배는 네게 필요한 것들을 한가득 보냈어. 아빠의 후배는 봄이가 건강하게 입을 수 있도록 유기농 옷을 선물했어. 아빠와 엄마의 친구들은 잠깐이나마 너를 보기 위해 멀리서 예쁜 옷을 사들고 왔어. 널 향한 엄마 친구와 후배들의 사랑도 만만치 않아. 집에 기저귀와 옷이 한가득이야.

봄이야.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든 날이 많을 거야. 어떤 날은 세상이 널 배신한 듯 참 외롭고 서러울 거야. 그럴 때마다 네 탄생을 축복했던, 그리고 너를 많이 사랑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렴. 큰 힘이 될 거야. 그리고 네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받았던 사랑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답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말이 너무 많았지. 이만 줄일게.

2014. 12. 22 새벽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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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결혼을 하며 서로의 생리현상을 최대한 숨겼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새어나온 무취 무향의 방귀는 숱하게 많았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암묵적 합의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긴장감은 사그라들었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뿡", "뿡" 새어나왔다.  나는 '생전 방귀 한 번 뀐 적 없는 듯' 남편을 놀려댔고, 그럴때마다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기 바빴다.

하지만 내게도 시련은 닥쳐오고 있었다. 임신 이후 막달에 가까워질수록 괄약근 조절이 안 되는 게 아닌가. 봄이를 낳기 직전엔 아주 대놓고 '뿡, '뿡' 거리며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처음이 어렵지 두번, 세번은 쉬운 법이다. 처음 방귀가 새어나온 날은 새색시의 연지곤지처럼 얼굴이 달아올라 여기저기로 도망다니기 바빴지만, 봄이가 나올 날이 다가올 수록 '뭐가 나왔나?', '나 임산부야'라며 아주 당당히 껴대기 시작했다.

헌데 문제는 출산과 함께 돌아올 거라 생각했던 이 방귀조절기능에 있었다. 회음부 절개로 소대변에만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 괄약근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거라...

그나마 병원에서는 나은 편이었다. 이제 막 회복에 들어가니 방귀에도 힘이 없었다. '피식~' 새어나오는 정도에 향도 그닥 없어 눈치껏 내보내면 괜찮았다. 그리고 곧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조리원에서는 2시간마다 한 번씩 수유을 해야 한다. 이른 아침이면 비몽사몽으로 '수유콜'에 이끌려 수유실로 끌려간다. 입실 초기엔 물 한잔 마실 여유도, 화장실 한 번 들릴 여유도 없이 수유실로 달려가게 된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니 마음이 급해지기 때문이다.

헌데 이게 문제였다. 하루는 수유실 일자 의자에 엄마들 5~6명이 앉아 수유를 하고 있었다. 나 역시 한쪽 귀퉁이에 앉아 봄이에게 수유를 하고 있었다. 헌데 사건은 그때 발생했다.

수유실로 갈때까지만 해도 평온했던 배에 신호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덧 '그분'은 입구까지 마중을 나오셨고 나는 의자에 앉아 최대한 버텼다.

방까지, 아니 복도까지, 아니 수유실 밖까지만이라도 버텨주길 바라며 입구에 최대한 힘을 모아 '그분'을 밀어넣고 또 밀어넣었다. 평소에는 잘도 참고 잘도 뱃속으로 역류하던 '그분'이 출산 이후 입구에서 쉬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분'과 나는 그렇게 대치하며 10여 분을 보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있다가는 큰 사단이 나고야 말 것 같았다. 지금 수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이제 조리원에 입실한 지 이제 막 만 하루가 되는 신입이었다.

사람은 자고로 첫인상이 중요하다. 엄마들 다 모인 수유실에서, 그것도 우리 아기님들 식사하시는 자리에서 실례를 범할 순 없었다.

난 다급하게 "선생님"을 불렀다. 힘겹게 일어섰지만 이미 내 몸은 베베 꼬이고 있었다. 손으로 입구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나름 어렵게 쌓아온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이렇게 쉽게 놓을 수는 없었다.

나는 신생아실 선생님께 봄이를 거의 던지다시피하며 몸을 재빨리 돌려 수유실 문쪽으로 향했다. 헌데 '이제 살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을까. 문고리를 채 잡기도 전에... 아주 시원하게 "붕~~" 소리가 어디선가 흘러나왔다.

'아냐아냐, 이건 아냐. 이건 현실이 아냐. 내가 아니라구' 하지만 모두의 시선은 내게로 향했다. 낯선 눈빛 10개가 나에게 향하고 있었다. '아.. 망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 거야', '

궁지에 몰릴 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나는 회피보다는 정면대결을 선택했다.

"죄송합니다."

얼굴엔 살짝 미소도 곁들였다. 내 얼굴엔 민망함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임신으로 60kg가 넘은 이 몸을 어떻게든 쥐구멍에 구겨넣고 싶었다. 하지만 이 몸을 구겨넣을 쥐구멍은 그곳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 세상은 살만했다. 아이를 출산하면 마음이 유해지고 성격이 둥글둥글해진다고 했던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 몰라도 나는 그 말을 직접 경험했다.

엄마들은 '괜찮다'며 '그 마음 우리가 다 안다'는 듯 내게 미소를 보냈다. 긴장됐던 나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고 나의 속은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조리원 입실 1주일째, 나는 이제 문제없이 괄약근 조절이 가능하다! ㅋ

- 2014. 12. 19 밤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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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이 걸렸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땀이 흘러 내렸다. 흘러내린 머리는 땀에 떡졌고, 얼굴은 홍당무가 됐다. 1시간 동안 양쪽 가슴을 번갈아 쥐어짜느라 손은 얼얼했다. 혹사당한 가슴은 불덩이가 됐다. 그렇게 1시간 사투 끝에 얻은 건 겨우 20cc의 초유.

오늘 목표는 20cc였다. 간밤엔 마사지해 주는 남편 덕에 30~40분 만에 20cc를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나 홀로는 쉽지 않은 목표치였다.

"딱 10번만 더 짜자", "딱 5번만 더 짜자", "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만 더 짜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1시간만에 겨우 20cc를 채웠다. 정확히 말하면 19cc는 될까. 마나 쥐어짰는지 가슴은 불덩이가 됐고, 더 이상 내 손으로 내 몸을 혹사시킬 수 없었다. 왜냐, 3시간 뒤면 또 유축을 해야하니깐. 그리고 곧 또 '수유콜'이 올테니깐.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나름 의기양양하게 젖병을 들고 수유실로 갔다. 나도 이제는 유축 젖병에 봄이의 이름을 적고 신생아실에 내놓을 수 있게 됐다. 이제 우리 봄이도 엄마 초유를 먹을 수 있다.

사실 조리원에 온 이후 나오지 않는 젖을 빨며 울음을 터트리는 봄이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엔 '모유가 안 나오면 분유를 먹이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의 모유를 쪽쪽~ 빨아먹는 다른 아이들을 보니, 봄이가 불쌍해졌다.

나오지 않는 젖을 한 번이라도 더 빨겠다며 안간힘을 쓰는 봄이와 달리, 나는 너무 쉽게 포기하는 건 아닌지 싶었다. 결심끝에 '통곡의 마사지'라 불리는 가슴 마사지를 받았다. 그것도 연달아 두번이나.

어제는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젖몸살에 마사지몸살까지... 오한이 들고 온몸이 아팠다. 그래도 빈젖을 빠는 봄이를 생각하면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1시간 만에 20cc의 초유를 얻었다.

하지만 의기양양했던 나의 모습은 '급' 작아졌다. 수유실로 들어서는 엄마들은 40cc, 60cc 채운 유축 젖병을 들고 왔고, 어떤 엄마는 젖병 한 통을 가득채워 의기양양하게 들어왔다. 앗!!!!

'그래도 뭐~ 처음인데'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제 갓 태어난 봄이에게 20cc도 결코 적은 양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봄이에게 영광의 결과물을 물렸다.

'엄마가 1시간 동안 고통을 참아가며 쥐어 짠 초유야. 한 방울도 흘리지말고 꿀떡꿀떡 다 먹어~'

인자한 엄마의 눈빛을 채 쏘기도 전에, 이 자식이 내 피같은 20cc를 다 먹어 치워버렸다. 내가 내가... 1시간 동안 피땀흘려 짜낸 초유를... 이 자식이 채 1분도 안돼 다 먹어치워버린 것이다. 젠장할. 썩을 놈!

가슴은 무너져내렸고 배신감에 사지가 떨렸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새어나왔다. 말이라도 통하면 이유라도 묻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노고를 그리 한 순간에 해치울 수 있냐'고, '그게 사람이냐'고, '사람은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향을 음미하고 맛을 느끼며 한 모금 한 모금 예의를 다해 넘겨야 하는 거라'고 말이다.

봄이는 부족한 양을 분유로 채우고 다시 잠이 들었다. 세상 편하게 잠을 잔다. 엄마의 불덩이 같은 가슴 따윈 안중에도 없다.

나.. 또 유축하러 간다.

- 2014. 12. 16 낮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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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후 6시는 환희와 긴장이 뒤섞이는 순간이다. 그때 신생아실은 청소와 소독을 한다. 봄이는 아내가 생활하는 조리원 217호에서 1시간 30분 동안 지낸다. 아내 혼자 봄이를 보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초보 엄마 아빠가 진땀을 빼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난 오후 6시가 기다려진다. 아빠인 내가 봄이를 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오늘 오후 6시 아내는 저녁을 먹고 홀로 방으로 들어왔다. 봄이를 기다렸던 내 표정에 실망감이 역력했나 보다. 아내는 내 표정을 읽고는 웃음을 바닥에 흘리며 바로 봄이를 데려왔다. 내 얼굴에 화색이 돈다. 봄이와의 눈맞춤을 1분도 늦출 수 없다! 봄이가 세상에 나올 때는 덤덤했다. 그때 장모님이 내게 소감을 물었는데 "잘 모르겠어요, 어떨떨해요"라고 답했다. 그랬던 내가 어느새 '아들바보' 아빠가 돼 있었다.

봄이가 내 품에 안긴다. 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가! 참 잘생겼다! 앞으로 더 잘생겨질 우리 봄이. 이런 저런 표정도 참 귀엽다. 하지만 부자간의 즐거운 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봄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방이 떠나갈듯 운다. 내 품이 불편한가 보다. 자세를 바꾸어본다. 하지만 봄이의 울음소리가 더 커진다. 좀 쉬려했던 아내가 소환된다. 봄이를 안고 좁은 방을 왔다 갔다하며 봄이를 달랜다.

봄이는 쉽게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아기들이 우는 이유는 보통 '배고프다'는 뜻이다. 하지만 봄이는 좀 전에 분유를 가득 먹었더랬다. 그럼, 왜 우는 걸까. 봄이가 아내의 젖을 물도록 준비한다. 아직 젖이 나오지 않아서 젖꼭지의 도움을 받는다. 처음엔 울음을 그치며 젖꼭지를 쪽쪽 빨지만, 또 운다. 아내의 얼굴에 식은땀이 맺힌다. 혹시 어디 아파서 우는 건 아닐까. 방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아내가 수유실에 갔다 오더니, 분유가 반쯤 담긴 젖병을 받아왔다. 봄이를 안고 젖병을 물렸다. 열심히 먹는다. 배고팠구나... 얼굴에 허탈한 웃음이 스친다. 조리원에서도 식탐이 많기로 소문난 봄이다. 앞으로 어쩌려고 그러니. 배고픔이 가시니 울음을 그친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내는 다시 봄이를 안고 좁은 방을 돌아다니며 토닥토닥 한다. 봄이가 눈을 감는다.

그렇게 한바탕하니, 봄이와 헤어져야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아빠 노릇을 하겠다며 봄이를 받아 안는다. 이내 울음이 터져나오는 봄이. 아, 서운하다. 부자지간의 정은 언제쯤 깊어질고.

- 2014. 12. 14 밤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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