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태어났고, 아빠가 됐다. "우리 아들"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입에 잘 붙지 않고 쑥스럽다. 많이 연습할 걸 그랬나 보다. 아직은 아들보다 선율이라는 이름이, 또 선율이보다는 태명인 '봄이'가 편하다. 언제쯤 "우리 아들"이라고 부르는 게 편해질까. 우선 아내와의 약속에 따라, 우리 세 가족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봄이라 부르련다. 

아내에게 진통이 오기 전, 봄이와의 만남에 마음이 들떴다. 봄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잘 생겼을까. 혹시 아픈 데는 없을까. 12월 9일 새벽 아내에게 진통이 왔다. 새벽 어스름, 아내의 끙끙 앓는 소리에 잠이 깼다. 아내는 5분 간격으로 힘겨워했다. 해가 뜨자 아내의 진통은 점차 사그라졌다. 가진통이었나보다. 아내의 진통이 다시 시작될까, 하루종일 초조했다.

이튿날 새벽, 아내에게 다시 진통이 찾아왔다. 아침이 되자, 아내는 병원에 가자고 했다. 병원에 가니 의사는 "오늘 병원에서 낳자"고 했다. 자궁문이 열리기 시작한 거였다. 입원 수속을 밟았다. 장모님, 처형, 아버님에게 소식을 알렸다. 걱정과 흥분이 교차했다. 시간이 갈수록 아내가 견디기엔 큰 고통이 찾아왔다. 무통주사를 맞고 나서야, 아내는 이내 안정을 찾았다. 

해가 진 뒤 어슴푸레한 저녁, 아내는 분만실로 향했다. 무통주사를 더이상 맞을 수 없었다. 고통에 지친 아내에게 1분 간격으로 더 큰 고통이 찾아왔다. 시뻘게진 얼굴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닦아도 닦아도 고통과 함께 오는 식은땀을 없앨 수 없었다. 아내가 "너무 아프다", "살려달라"고 부르짖자, 내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내의 고통을 나누기보다, 봄이와 만날 생각이 앞섰던 내가 야속하고 미웠다.

영원과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내의 힘겨운 사투가 끝났다. 밤 9시 18분이었다. 핏덩이가 아내의 몸에서 나왔다. 간호사에 의해 거꾸로 매달린 봄이는 곧 울음을 내지르며, 탄생을 알렸다. 아내에게 안도감과 약간의 흥분이 내려앉았다. 허둥지둥 탯줄을 잘랐다. 봄이는 건강해보였다. 아내의 가슴에 안긴 봄이는 뭐가 불편한지 큰 소리로 울었다. 자식은 부모 뜻대로 안되는구나 싶었다.

이틀 뒤 조리원에 와서, 봄이를 처음 안았다. 조심스레 왼손으로 봄이의 머리를 받쳤고, 오른팔로 봄이의 몸을 안았다. 봄이의 온기와 무게가 느껴졌다. 새근새근 잠이 든 봄이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봤다. 나와 아내를 닮은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참 귀엽고 잘생겨 보였다. 자식이라서가 아니다! 아니, 자식이라서 그런건가...? 어쨌든! 그제야 봄이가 가진 존재의 무게가 내게 다가왔다. 봄이에게 속삭였다.

"봄이야! 우리 세 식구, 행복하게 살자." 

그리고 아내에게 아직 못 다한 말을 여기서 전한다.

"봄이 낳느라, 참 고생 많았어요. 미안하고 고마워요. 당신이 겪었던 고통, 결코 잊지 않을게요. 봄이가 당신에게 잘하도록 내가 잘 전할게요. 사랑해요."

- 2014. 12. 13 밤(봄이가 태어난 지 만 3일을 채우고)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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