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처조카 유라·예린이를 사진에 담았다.

우리 부부는 기념사진에 무덤덤하다. 결혼할 때 다들 찍는 스튜디오 웨딩 촬영도 하지 않았다. 잔뜩 차려 입고 스튜디오에서 사진 찍을 생각에 손발이 오글거렸다. 아내도 나도 를 외쳤다. 대신 아는 사진 기자 선배에게 우리의 한강 데이트를 카메라에 담아 달라고 부탁했고, 그때 찍은 사진이 우리 집 거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우편물 더미에 가려 제 모습이 보이진 않을 뿐이다.

지난해 12월 아이가 태어났다. 남들은 아이의 손·발 도장을 만든다고 하는데, 우리 부부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이의 탯줄은 조리원에서 주니깐 받았다. 서랍 어딘가에 있을 텐데,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이의 출생증명서, 출생신고를 한 직후 받은 주민등록등본은 조심스레 봉투에 넣어 서랍에 뒀다. 제 자리에 있겠지?

그런 나에게도 욕심을 부리고 싶은 게 생겼다. 바로 아이 사진이다. 처음엔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었다. 꽤 괜찮게 나왔다. 하지만 더 좋은 화질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 인쇄해서 액자에 넣으려면 좋은 카메라가 필요한 게 아닌가(물론 지금까지 내가 찍은 아이 사진을 인쇄한 적은 없다.)

아내가 조리원에 있을 때 나도 함께 지냈다. 그곳에서 아이 50일 사진을 공짜로 찍어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더 알아보니, 사진 촬영 업체의 사업 노하우였다. 100일이나 돌 사진을 찍기 위해 50일 사진을 공짜로 찍어준다는 것이다. 아내는 50일 사진을 찍지 말자고 했다. 나는 망설였다. ‘화질 좋은 아이 사진 몇 장을 남겼으면 좋겠는데...’

결국 아내는 내 뜻을 받아들였고, 50일 사진을 찍었다. 참 잘 나왔는데, 뭔가 맘에 들지 않았다.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건 역시 손발을 오글거리게 한다. 무엇보다 대량생산 느낌이 났다. 사진 속 아이만 우리 아이지, 나머지에서는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스튜디오가 아니라, 평소 일상 속 아이 사진을 찍자고 다짐했다. DSLR 카메라는 아니지만 요새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였다.

어느 날 엄마가 아내에게 아이 100일 사진을 언제 찍을 거냐고 물었다. 아내는 찍지 않을 거예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돌아온 엄마의 말. “그래도 예쁘게 몇 장 찍어야지.” 아직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쪽은 시어머니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예전 같았으면 내가 엄마한테 안 찍을 거예요라고 했을 텐데, 끔찍한 손주 사랑을 인생의 낙으로 느끼는 엄마에게 굳이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스튜디오 100일 사진은 싫었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스튜디오가 아닌 집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곳도 있다. 사진을 보니 참 감탄스러웠다. 그런데, 다들 집들이 어찌나 으리으리한지. 가격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이런 고민이 깊어갈 때, 처형네에서 며칠 지냈다. 처조카들이 이모를 애타게 찾았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 아내는 "여기서 사진을 찍어보자"고 했다. 아마 시어머니 말이 걸렸을 것이다. 업체에서 100일 사진을 찍는 게 탐탁지 않으니, 아이와 처조카들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난 카메라를 꺼냈다.

정면은 아니었지만 창밖에서 실내로 햇빛이 들어왔다. 역광인 셈이다. 몇 컷 찍었다. 베란다가 배경이라 사진이 예쁘지 않았다. '그래서 스튜디오에서 찍는구나. 망했다.' 많은 사진을 찍고 확인해보니, 어랏! 의도한 건 아니지만 뭔가 그럴듯한 사진이 나왔다. 배경은 환한 빛으로 처리됐고, 그 속에서 아이들이 빛났다.

그렇게 수십여 장의 사진을 찍었다. 대단히 잘 나온 사진은 아니지만, 내 손으로 아이의 100일 사진을 찍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앞으로 아이 사진을 많이 찍어야지!’ 사진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사진을 취미로 둔 모든 남편들이 그렇듯 아내에게 좋은 렌즈를 사달라고 조르고 있다.

사진 촬영을 준비할 때, 찰칵!

아마 저처럼 아이 사진을 찍을 카메라를 고민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네요. 우선 제 카메라는 소니 a6000입니다. 렌즈는 일명 카페렌즈’(SEL35F18)라 불리는, 아주 밝은 단렌즈입니다.

몇 년 전, 100만 원을 넘게 주고 산 DSLR 카메라와 렌즈를 잃어버린 후, 카메라에 대한 신경을 껐습니다. 그때 화질에 만족했지만, 너무 무거웠던 기억이 생생했죠. 그 뒤로는 카메라는 무조건 가벼워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 뒤 디카도 들였고, 아이폰6와 같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아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실내에서는 어둡거나 흔들립니다. 배경흐림도 잘 안되죠. 그래서 미러리스 카메라가 뜨는 모양입니다. DSLR은 무겁고, 스마트폰 카메라에는 만족하지 못하니까요.

캐논이나 니콘에서도 더욱 가벼운 DSLR을 만들고 있지만, 그래도 더 가벼운 미러리스를 골랐습니다. DSLR에 대한 향수가 있었지만, 성능이 비슷하다고 하니 고민이 길지 않았죠. 렌즈에 신경을 썼습니다. 밝은(조리개값이 낮은) 렌즈를 골랐습니다. 그래야 어두운 집안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까요. 배경흐름 효과도 기대했죠. 여러 미러리스 중에서 가격과 센서 크기 등을 고민해 지금의 카메라를 골랐습니다. 저는 이 카메라와 최고의 휴대성을 자랑하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아이 사진을 찍고 있답니다.


처형네에서 햇볕 받는 아이.

몸무게 4.8kg, 60cm.

태어난 지 한 달,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우리 집을 방문한 간호사가 깜짝 놀랄 정도다. 누굴 닮았는지 허리와 다리가 길어 보인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 "성공했네"라는 말을 듣는다. 눈이 작긴 하지만 가끔 못생겨 보일 때도 있지만, 아이가 아내를 닮는다면 조금씩 잘 생겨질 터다.

아이의 몸무게도 많이 늘었다. 태어날 땐 3.18kg이었다. 아이는 참 많이 먹는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이맘때의 아이들은 2~3시간마다 80가량의 모유나 분유를 먹는단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120도 꿀꺽꿀꺽 잘 삼킨다. 사레들릴까 걱정이다. 우렁찬 트림과 방귀 소리에 우리 부부는 깜짝 놀란다. 어찌나 잘 싸는지 하루에 스무 번 넘게 아이의 기저귀를 간다.

요즘 내 머리 속을 채우고 있는 건 '좋은 아빠 되기'. 우선 책과 방송으로 공부했다. 아내와 아이가 조리원에 있을 때, 굳이 도서관에 가서 육아서를 빌려 읽었고, 아빠의 육아를 다룬 EBS <다큐프라임> '파더 쇼크' 편도 봤다. 일할 때 가끔 아빠들의 육아일기를 검색해 읽어보곤 한다.

당장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방법은 아이와 신체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일 터다. 아직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집에 있을 때면 아이를 내 품에 두려고 하고, 아이가 배고파하면 내가 먼저 젖병을 꺼내든다. 아마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힘들어질 것 같다. 육아 선배들이 한목소리로 "주말에 집에 있는 것보다 회사 나오는 게 더 편하다"라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가끔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영화를 보고 싶고, 자전거를 타고 싶고, 책도 읽고 싶다. 얼마 전 아이를 아내에게 맡겨두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마신 소맥~”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직 아내에게 얘긴 안했지만, 돌아오는 주말 오래된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기로 약속했다.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을 알겠는데, 마음먹는 건 쉽지 않다.

지난 주말 처형네에 갔다. 아내와 이이는 집이 넓고 따뜻한 처형네에서 일주일을 보내기로 했다. 이곳에는 내가 사랑하는 처조카 둘이 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첫째 유라는 나와 노는 걸을 참 좋아한다. 지난 3년간의 프로젝트로 얻은 결실이다. 3년 전, 나와 아내가 처음 손을 맞잡았을 때 아내는 처형네에 얹혀살고 있었다. 아내는 첫 조카 유라를, 유라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모인 아내를 사랑했다.

아내와 처가 식구들의 점수를 따기 위해, 난 유라와 친해지려 부단히 노력했다. 피곤해도 열심히 놀았다. 시나브로 처조카와 이모부의 사이는 가까워졌다. 우리와 처형네는 자주 본다. 유라가 빌라 5층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올라와 우리 집 문을 열고 이모와 반갑게 인사한 뒤, 하는 말은 어김없다.

"삼촌, 아니 이모부! 같이 병원 놀이 하자."

주말 처형네 현관문을 열자 유라는 내 옷을 끌어당기며 "놀자"고 했다. 전날 꼬박 밤을 새운 탓에 피곤했다. 선뜻 "그래 놀자"고 못했다. "조그만 쉬었다 놀자", "우리 밥 먹고 놀자“...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밤이 돼서야 같이 놀았다. 얼마 못 놀고 유라는 침실로 향했다.

늦은 밤 처형으로부터 유라의 기다림을 들었다. 우리 가족이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유라는 나를 기다린다면서 현관문 앞에서 계속 서성였단다. 나와 조금이라도 더 놀기 위해 하기 싫은 숙제도 후딱 해치웠단다. "나는 이모무랑 노는 게 정말 좋다"고 했단다. 가슴이 먹먹했다. 미안했다. 피곤하더라도 더 많이 놀아줄 걸 그랬다.

좋은 이모부가 돼야겠다. 피곤하더라도 조카의 마음을 헤아려야겠다. 그렇게 좋은 이모부가 된다면 어느새 좋은 아빠가 되는 길도 쉬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 2015. 1. 12. 저녁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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