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는 날, 아침부터 마음이 달떴다

시나브로 이사하는 날이 왔다.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더 넓은 집으로 옮긴다. 아침부터 마음이 달떴다. 오전 8시 이사 업체 직원들이 박스를 집 안에 늘어놓고, 세간살이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장모님과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새로 이사할 집으로 건너갔고, 나는 남아서 이사를 지켜봤다. 신혼집과 이별한다는 생각에 잠시 감회에 젖었다.

이사 중간에 집주인 쪽 부동산공인중개사무소에 가서 전세금을 돌려받았다. 그곳에서 “25만 원짜리 도어락을 놓고 가니 잘 쓰세요라고 말했다. 집주인과 공인중개사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집주인은 고마워요라고 했고, 공인중개사는 처음 전세 계약 할 때는 젊은 사람들이라 깐깐한 줄 알았는데, 좋은 사람이었네요라고 말했다.

예전 도어락은 이 집을 계약하고 얼마 뒤 고장 났다. 우리 부부가 신혼여행 갔을 때,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신혼집에 왔었다. 도어락은 열리지 않았고 큰돈을 주고 교체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왔더니, 정말 좋은 도어락이 달려있었다. 교체한 지 열흘 가까이 지난 뒤라 집주인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이사하면서 도어락을 떼어가려고 했지만 비용과 설치의 어려움 때문에 포기했다.

세간살이를 스카이차로 옮길 때쯤 집주인 부부가 나타났다. 집주인은 다시 한 번 집을 깨끗하게 써서 고마워요라고 했다. 세간살이를 모두 옮긴 뒤, 마지막으로 집주인에게 아들 낳고 잘 살다 갑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집주인도 앞으로도 잘 사세요라고 했다. 그렇게 웃으면서 이 집과, 집주인과 작별했다.

이사는 순조로웠다. 새집은 어찌나 넓어 보이는지. 오늘은 완벽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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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할 집에서 점심으로 짜장면을 시키려는데, 갑자기 집주인으로 전화가 왔다. 방충망이 찢어졌으니 와달라고 했다. 이미 짐을 뺐고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집으로 와달라니. 갔더니, 집주인은 교체 비용 4만 원의 절반을 부담하란다.

불과 1시간 전, 25만 원 짜리 도어락을 놓고 간다니 좋아했던 집주인이다. 또한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해서, 전세계약 만료일로부터 한 달 뒤에 전세금을 돌려받았다. 그만큼 이사가 늦어졌다. 도배도 우리가 했다. 우리가 비용을 들여 집 여기저기를 수리했다.

집주인 입장에서 계약이 만료된 세입자에게 원상 복구를 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방충망이 있던 창문을 쓰지 않았던 터라, 방충망이 언제 찢어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 집에 살면서 이래저래 적잖은 돈을 부담한 세입자로서, 2만 원을 아까워하는 집주인의 모습은 곱게 보이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서운하네요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그간의 사정을 얘기하고 도어락을 떼어가겠다고 했다. 집주인 부부는 똥을 밟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집주인은 돈은 안 줘도 됩니다라면서 말을 바꿨다. 돈은 아꼈지만, 진상 세입자가 됐다.

새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실 우리 부부는 새로 이사 갈 집의 집주인한테 불편한 소리를 들은 터였다. 이사할 집은 방충망이 찢어져 있었다. 싱크대에선 물이 샜고, 작은 방 천장엔 전등을 잃은 전선만 매달려 있었다.

집도 오래됐고, 그 전 세입자가 8년을 살았던 터라 집 곳곳이 말썽이었다. 내가 출근한 어느 날 아내는 우선 집주인에게 방충망을 수리해달라고 했다. 돌아온 대답은 꼭 방충망을 교체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찢어진 방충망은 3곳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심한 한 곳만 교체를 요구했던 터였다. 아내는 졸지에 고치지 않아도 되는 걸 고쳐달라고 요구한 세입자가 됐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마무리했고, 집 곳곳도 수리했다. 이사는 순탄치 않았지만 새집에서 며칠을 지내니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 아이는 넓은 거실에서 이리저리 맘껏 기어 다닌다. 좋은가보다. 아이가 좋으면 나도 아내도 좋다. 그래, 우리 세 식구에게는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다. 이상국 시인의 시에 위로를 받는다.

넓은 거실을 좋아하는 아이.

사촌 누나와의 다정스러운(?) 한 컷.


쫄딱 - 이상국


이웃이 새로 왔다

능소화 뚝뚝 떨어지는 유월

 

이삿짐 차가 순식간에 그들을 부려놓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짐 부리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서울에서 왔단다

 

이웃 사람들보다는 비어 있던 집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예닐곱 살쯤 계집아이에게

아빠는 뭐하시냐니까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이사 왔단다

 

그러자 골목이 갑자기 넉넉해지며

그 집이 무슨 친척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는데

 

, 누군가 쫄딱 망한 게

이렇게 당당하고 근사할 줄이야

아이가 넓은 집에서 쏘서를 타게 해주고 싶다.

몇 달째 미루고 있는 일이 있다. 집 주인에게 이사 간다고 말하기.

세입자로서 집주인에게 전화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해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 우리 부부는 5만 원을 내고 수리를 받았다. 집주인에게 말해 돈을 받아야 했지만, 전화하는 걸 미루다 결국 전화하지 못했다. 참 소심한 부부다. 오는 8월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살고 있는 집은 신혼집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할 때 최대한 빚을 내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돈 모아 넓은 집으로 가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언덕에 있는 5층 빌라 꼭대기 층을 얻었다. 깨소금 볶는 신혼생활이니, 5층을 오르내리는 건 힘들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난 후 상황이 바뀌었다. 아내는 몸무게 8kg를 웃도는 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때마다 힘들어했다. 유모차를 반지하 공용공간에 내려놨다. 먼지가 쌓여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부부는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내가 집주인에게 전화해야 한다는 거다. 계약이 만료되는 여름에는 전세물량이 많지 않다 하니, 미리 연락을 해야 했다. 지난달 아내가 걱정하자, 집주인에게 전화하기로 마음먹었다. 노트북에 원고를 썼다.

어찌 보면 별 것도 아니다. 계약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에게 재계약 여부를 알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주위에서나 뉴스에서나 전세금 문제로 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을 많이 봐와서 일까. 단어 사용 하나에도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전화하지 못했다.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포항에 내려가야 하는 상황과 겹쳤다. 빈 집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게 마뜩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내는 이번 주에 주인에게 전화하라고 말했다. 아니, 통보했다. ‘그래, 더 이상 내 귀차니즘을 용인할 수 없겠지.’ ‘지금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안하고 싶다가 내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내에게 전화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어떻게 전화할까 전전긍긍하던 차, 어제 공인중개업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계속 사는지 이사하는지, 주인이 물어보라고 하던데요.”

이렇게 반가운 전화가 있을 수 있을까. 체증이 한 번에 가신 듯했다. 우리의 사정을 설명하고 이사를 간다고 말했다. 다음 주부터 집을 보러 와도 된다고 말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우리 집, 잘 나갈까요?”

이 집을 구할 때, 우리 집은 그때까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집이었다. 아마 언덕 위 5층 집이라 그랬던 것 같다.

걱정 마세요. 전세가 귀하잖아요.”

마음이 놓였다. 전세금을 못 받을 일은 없겠구나. , 잠깐. 우리 세 식구의 새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데... 머리가 아파왔다. 중개업자에게 전세 매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지금 집보다 5000만 원을 올려 14000만 원가량 되는 전셋집이면 좋겠다고 했다. 대출 이자 부담이 컸지만 아이가 태어나니 집을 넓히지 않을 수 없다. 평지에 있는 저층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건넸다.

바로 그런 집이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불광천 옆 버스 종점 근처란다. ‘시끄럽고 매연 때문에 아이한테 별로 안 좋을 텐데’, ‘불광천 근처면 자전거 타기 좋겠다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뒤 이어 충격을 가한 한마디.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한두 (3.3~6.6)가량 클 거예요. 거실이 없어요.”

언덕 위 빌라 5층에서 평지로 내려간다는 걸 감안해도 이건 아니지 않나. 5000만 원을 더 내더라도 고작 한두 평 큰 집에나 갈 수 있다니... 앞이 깜깜했다. 그날 우리 부부는 한숨 섞인 저녁을 보냈다. 아내는 말했다.

이 동네에서 평지로 가는 게 가능할까요? 우리가 너무 오동통한 꿈을 꾸는 건가요? 동네를 옮겨야 하는 건 아닐까요?”

우리 세 식구는 어떤 집에서 살게 될까. 그래도 좋은 집을 구할 수 있겠지?

전셋집을 구할 때까지 종종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모든 전세 난민, 홧팅입니다!

5개월 차 아이는 이제 손을 양쪽으로 쭉 펼칠 수 있다.

얼마 전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다녀왔다. 카셰어링을 통해 차를 빌렸다. 돈은 좀 들었지만, 편하게 다녀왔다. 문제는 차를 집 앞에 세운 뒤였다. 아내는 아이를 안았고, 나는 젖병, 보온병, 기저귀, 물티슈, 도시락통 등이 든 가방을 한 손에 들었다. 나머지 한 손에는 유모차와 카메라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5층을 걸어 올라갔다. 헉헉 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2년 전 우리 부부는 서울 북가좌동 5층 빌라 꼭대기 층에 신혼집을 차렸다. 빚을 최소화해 작은 집을 얻고, 나중에 돈을 모아 넓은 집으로 가자고 약속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건, 젊은 신혼부부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서울에 1억 원이 안 되는 전셋값으로 깨끗한 보금자리를 얻었다는 생각에 다리 아픈 줄 몰랐다. 운동도 된다고 생각하니,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집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참 죄송한 일이다. 보통 5층을 걸어 오르내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을 오르시던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무거운 택배를 5층까지 배달해주는 택배기사님도 안쓰럽다. 아내가 냉장고에 택배기사님들을 위한 음료수를 준비해놓았다.

아이가 태어난 뒤, 우리 부부에게도 5층을 오르내리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갓 5개월에 접어든 아이와 외출할 때면 짐은 한 보따리였다. 계단을 내려갈 땐 그나마 낫다. 8kg가 넘는 아이를 안은 아내는 5층을 오르며 적어도 두 번은 멈춰 서 숨을 돌려야 했다.

아이가 클수록 아내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나 역시 짐을 여러 차례 오르내려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우리 부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유모차를 1층에 놔뒀다. ‘누가 가져가진 않겠지...’

다리 힘은 어찌나 세졌는지. 발차기 맞으면 아프다^^

결국 우리 부부는 이사 가자고 외쳤다. 는 8월 전세계약을 끝으로 신혼집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되도록 엘리베이터가 있고, 지금보다는 조금 더 넓은 집으로 가려 한다. 빚은 꽤 내야할 것 같다. 선택지는 작은 아파트나 최신 빌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식구는 어디로 가야할까. 난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좋다. 동네에 정이 들었다. 불광천이 멀지 않아, 언젠가 아이를 트레일러에 태우고 한강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또 회사에서 가깝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육아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아내도 가을엔 학교로 돌아갈 예정이다. 간혹 우리 부부가 어려울 때 아이를 돌봐줄 곳이 필요하다. 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니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 본가는 안양이지만 부모님이 밤늦은 시간까지 노래방을 운영하시기 때문에 아이를 돌봐줄 수 없다. 처가는 포항이다. 아이를 포항에 내려 보낼까 고민도 하지만, 이 역시 쉬운 결정이 아니다.

아내에게는 서울 우이동에 제2의 처가가 있다. 바로 처형네다. 직장맘인 처형은 8살과 4살 딸들을 시댁의 도움을 받아 키우고 있다. 이곳에 가면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거기다 아이들끼리 자주 어울릴 수 있으니.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우리가 원하는 작은 아파트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빌라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우이동으로 가면 아내와 내가 길바닥에서 버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내가 사랑하는 한강에서도 멀어진다. 고민이 깊어진다.

결정의 시간이 멀지 않았다. 우리 세 식구의 집은 어디가 될까. 정들고 한강이 가까운 북가좌동일지, 처형이 있는 우이동일지, 아니면 우리 예산에 맞춘 제3의 곳일지. 우주는 아이를 중심으로 돈다. 아이를 중심에 두고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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