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넓은 집에서 쏘서를 타게 해주고 싶다.

몇 달째 미루고 있는 일이 있다. 집 주인에게 이사 간다고 말하기.

세입자로서 집주인에게 전화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해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 우리 부부는 5만 원을 내고 수리를 받았다. 집주인에게 말해 돈을 받아야 했지만, 전화하는 걸 미루다 결국 전화하지 못했다. 참 소심한 부부다. 오는 8월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살고 있는 집은 신혼집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할 때 최대한 빚을 내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돈 모아 넓은 집으로 가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언덕에 있는 5층 빌라 꼭대기 층을 얻었다. 깨소금 볶는 신혼생활이니, 5층을 오르내리는 건 힘들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난 후 상황이 바뀌었다. 아내는 몸무게 8kg를 웃도는 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때마다 힘들어했다. 유모차를 반지하 공용공간에 내려놨다. 먼지가 쌓여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부부는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내가 집주인에게 전화해야 한다는 거다. 계약이 만료되는 여름에는 전세물량이 많지 않다 하니, 미리 연락을 해야 했다. 지난달 아내가 걱정하자, 집주인에게 전화하기로 마음먹었다. 노트북에 원고를 썼다.

어찌 보면 별 것도 아니다. 계약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에게 재계약 여부를 알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주위에서나 뉴스에서나 전세금 문제로 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을 많이 봐와서 일까. 단어 사용 하나에도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전화하지 못했다.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포항에 내려가야 하는 상황과 겹쳤다. 빈 집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게 마뜩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내는 이번 주에 주인에게 전화하라고 말했다. 아니, 통보했다. ‘그래, 더 이상 내 귀차니즘을 용인할 수 없겠지.’ ‘지금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안하고 싶다가 내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내에게 전화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어떻게 전화할까 전전긍긍하던 차, 어제 공인중개업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계속 사는지 이사하는지, 주인이 물어보라고 하던데요.”

이렇게 반가운 전화가 있을 수 있을까. 체증이 한 번에 가신 듯했다. 우리의 사정을 설명하고 이사를 간다고 말했다. 다음 주부터 집을 보러 와도 된다고 말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우리 집, 잘 나갈까요?”

이 집을 구할 때, 우리 집은 그때까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집이었다. 아마 언덕 위 5층 집이라 그랬던 것 같다.

걱정 마세요. 전세가 귀하잖아요.”

마음이 놓였다. 전세금을 못 받을 일은 없겠구나. , 잠깐. 우리 세 식구의 새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데... 머리가 아파왔다. 중개업자에게 전세 매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지금 집보다 5000만 원을 올려 14000만 원가량 되는 전셋집이면 좋겠다고 했다. 대출 이자 부담이 컸지만 아이가 태어나니 집을 넓히지 않을 수 없다. 평지에 있는 저층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건넸다.

바로 그런 집이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불광천 옆 버스 종점 근처란다. ‘시끄럽고 매연 때문에 아이한테 별로 안 좋을 텐데’, ‘불광천 근처면 자전거 타기 좋겠다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뒤 이어 충격을 가한 한마디.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한두 (3.3~6.6)가량 클 거예요. 거실이 없어요.”

언덕 위 빌라 5층에서 평지로 내려간다는 걸 감안해도 이건 아니지 않나. 5000만 원을 더 내더라도 고작 한두 평 큰 집에나 갈 수 있다니... 앞이 깜깜했다. 그날 우리 부부는 한숨 섞인 저녁을 보냈다. 아내는 말했다.

이 동네에서 평지로 가는 게 가능할까요? 우리가 너무 오동통한 꿈을 꾸는 건가요? 동네를 옮겨야 하는 건 아닐까요?”

우리 세 식구는 어떤 집에서 살게 될까. 그래도 좋은 집을 구할 수 있겠지?

전셋집을 구할 때까지 종종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모든 전세 난민, 홧팅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