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지난 토요일 늦은 밤 아이는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금요일부터 아이의 체온은 40도를 넘나들었다. 돌 이후 아이는 종종 아팠고, 그럴 때마다 아이 몸에서 열이 났다. 체온이 40도를 웃돈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주변에서 고열이 위험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우리 부부는 가슴을 졸였다. 해열제를 먹였지만, 열이 금방 떨어지지 않았다.

아내는 크게 걱정했다. 이틀 내내 아이의 체온은 39도가 기본이었다. 그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끙끙 앓는 아이 소리에 체온계를 아이 귀에 꽂으니, 40.3. 해열제를 먹인 지 한 시간이 흘렀지만 열은 그대로였다. 결국 우리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가기로 했다. 서울역 앞에 응급실을 운영하는 아동병원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차를 끌고 그곳으로 갔다. 가는 도중 아이의 열은 조금 내려갔지만, 그래도 안심할 상황이 아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 아동병원 앞에 다다랐다. 병원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지난해 3월부터 응급실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우리를 맞았다. 허탈했다. 그래도 아이의 열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던 터라, 운전대를 집으로 돌렸다.

두 번째

짧은 밤이 지난 아침, 아이의 이마는 다시 펄펄 끓었다. 체온계 숫자는 40도를 넘었다. 해열제를 썼지만, 소용이 없는 듯 했다. 다시 서울역 앞 아동병원에 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 도착해 진료를 받았다. 아이의 열은 다소 떨어졌지만, 이왕 온 거 정확한 처방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감이 유행한다고 해서 독감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독감은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은 콧물약과 해열제 등을 처방해주면서 며칠만 먹으면 금방 나을 거라고 했다. 아이는 아직 열이 있었지만, 조금 떨어졌다. 의사 선생님이 금방 나을 거라고 하니, 기분 좋게 집으로 왔다.

세 번째

집에 오자마자, 아이는 다시 고열에 시달렸다. 다시 40도를 넘겼다. 해열제를 썼지만 역시 소용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열이 조금 떨어지겠지만, '혹시 안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앞섰다. 그 마음이 우리 부부를 힘들게 했다.

돌이켜보니, 며칠 동안 각종 약과 해열제를 아이 몸에 들이붓다시피 먹여도 아이의 체온은 38.5도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아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수액을 맞든지 병원에 입원을 시키든지 하자고 했다. 다시 서울역 앞 아동병원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시간에는 진료하지 않는다고 했다. 진료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1시간 30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이 정도 가지고 입원시킬 수는 없다고 했다. 사정을 말하니, 수액을 맞고 가라고 했다.

주사실에서 간호사가 아이의 팔과 다리에 주사 놓을 곳을 찾았다. 고열에 시달렸던 아이인지라 혈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는 병원이 떠나가라 꺼이꺼이 울었다. 아내는 아이가 움직이지 못하게 아이의 몸을 꼭 잡았다. 아이는 발버둥 쳤고, 아내는 아이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었다.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내는 소리도 없이 울고 있었다. 아이 체온은 수액과 해열제의 힘으로 아픈 지 사흘 만에 처음으로 38도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데… 자기 왜 울었어요?"

아내는 내 질문에 민망한 듯 눈을 흘기며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1시간 넘게 수액을 맞은 아이는 제법 낮아진 체온 덕에 팔팔하게 움직였고, 그날 저녁 밥도 먹었다.

아이는 그 뒤로도 며칠 동안 고열에 시달렸다. 다행히 더는 40도는 찍지 않았다.

덧붙임1 : 다 나았다고 생각했을 때쯤, 아이는 기침을 시작했다. 병원에 가보니 후두염이란다. 약을 먹고 나을 때까지 5~6일가량 걸린다고 한다. 아이는 다시 보채기 시작했다. 짜증을 내고 밥을 먹지 않았다. 밤에 기침을 하다 잠을 깨기 일쑤였다. 아이는 엄마만 찾는다. 아내의 손목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에게 언제쯤 평화가 찾아올까

덧붙임2 :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날카로워진다. 아내와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얼마 전 친구 결혼식에서 축시로 함민복 시인의 시 <부부>를 읽었다. 이 시는 새신랑 친구뿐만 아니라 지금 나에게 필요한 시이기도 하다.


부부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하고 걸어야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아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 놓아서는 안된다

걸음의 속도를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 함민복 시인의 시집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2005)




최대한 아프지 말고 크렴.


얼마 전, 아이가 아팠다. 그날 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를 재웠다. 늦은 밤 아이가 잠자는 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들어갔다. 잠시 후 "체온계 좀 가져와요"라는 아내의 다급한 말이 들렸다. 아이의 체온을 쟀다.

39. 아이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고열은 아이에게 가장 위험한 신체의 변화다. 하지만 많은 육아 선배들은 웬만한 고열로는 병원에 가지 말라고 했다. 집에서 해열제로 열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도, 해열제 처방을 받는다고 했다. 오히려 피를 뽑다가 아이가 더 힘들어한다고도 했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아이가 아파도 침착하게 집에서 해결하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고열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그날 밤 아이는 그날 먹은 것을 모두 게워냈다. 그 조그마한 입에서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토사물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아이도 놀랐는지 울고 또 울었다. 토사물이 묻은 이불과 아이의 옷을 치웠다. 아이는 새벽에만 몇 번을 더 토했다. 아이의 이마에 쿨시트를 붙이고 억지로 해열제를 먹였다.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당장 택시를 타고 병원 응급실에 갈 생각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다행히 아이의 열은 조금 떨어졌다. 대신 콧물이 아이의 코를 가득 메웠다. 숨쉬기 어려워서인지, 새벽 내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끙끙댔다. 우리 부부 역시 잠을 설쳤다. 조그마한 소리에도 우리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나마 열이 조금 내린 것에 안도했다.

방심은 금물이다. 해열제 덕에 떨어지던 열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보채는 아이를 안으니 온몸이 다시 불덩이가 됐다. 아이는 다시 토하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히고 이불을 갈았다. 새 이불에다 아이는 또 토했다.

새벽 어스름, 우리 부부는 선택해야 했다. 응급실에 갈지 아니면 좀 더 지켜볼지. 나는 응급실에 가자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해열제를 다시 먹이고 아이를 안았다. 징징거리는 아이를 안고 집 구석구석으로 발길을 옮겼다.

곧 아침이 밝았다. 아이는 새벽보다는 나아 보였다. 퉁퉁 부은 붉은 얼굴로 웃기도 했다. ‘이 순둥아, 이 와중에 웃음이 나오니?’ 우리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소아청소년과 병원이 집 근처에 있었다. 회사에는 "아이가 아파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의 열은 더 오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아이의 증상이 수족구와 장염 초기 증상일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는 감기 증상만 보였다. 약을 먹였더니 열은 많이 떨어졌다. 미열이 있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콧물이었다. 코를 막은 콧물에 아이는 분유도 먹지 못했다. 이른바 뻥코로 코를 뚫어줘도 그 순간뿐이었다. 아이와 우리 부부 모두 뜬눈으로 밤을 보낸 것 같았다. 아이는 아픈 지 열흘 정도 됐을 때야 비로소 제법 괜찮아졌다.

누군가는 그랬다.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몇 번 가봐야 아이를 키우는 거"라고. 최근에 만난 한 육아 선배는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내면, 아이는 몇 달 동안 계속 아프다"고 했다. 또 다른 육아 선배는 아이가 수족구와 같은 전염병에 여러 차례 걸려 꽤나 고생했다고 털어놓았다.

지금까지 아이는 잘 자라줬다. 이번에 아픈 거 말고는 지금까지 크게 아픈 적이 없었다. 그렇게 건강했던 아이가 아프니, 안타까웠고 어떨 때는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더 많이 더 자주 아플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아이를 등에 업고 응급실에 뛰어갈 날도 꽤 많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어느새 훌쩍 커 있을 것이다. 장석주 시인의 저 유명한 시 <대추 한 알>처럼 아이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아이가 돼 있을 것이다.


대추 한 알 -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 장석주 시인의 시집 <붉디 붉은 호랑이>(애지, 200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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