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신고서를 앞에 두고 가슴이 떨렸다. 봄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평생토록 불릴 이름을 정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미 이름을 정해놓았지만, 다시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 이름을 쉬 쓰지 못했다. 그동안 아내와 함께 고민했던 이름 후보들이 스쳤다. 우리 부부는 선씨에 어울리는 이름, 독특하지만 튀지 않은 이름, 예쁘고 발음하기 좋은 이름, 웬만하면 순우리말 이름을 짓기로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내에게 선샤인을 제안했다가 욕을 한 바가지로 먹었다. 많은 이들에게 이름 동냥을 했다. 그중에 선함, 선한, 선하다 등의 이름을 추천받았다. 맘에 들었다. 성과 어울리고 뜻도 좋다. 그런데, 함이라는 이름은 나중에 하마라고 놀림 받을 게 뻔했다. 이 이름들은 결국 아내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선이로라는 후보도 있었다. 듣기에 따라, 이상한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내 성과 아내의 성을 넣은 이름이다. 아내와 처형은 이 이름에 적극 지지를 보냈다. 내가 제안했지만, 얼마 뒤 난 변심했다. 결국 최종 후보는 선율과 선우리였다. 선율은 밴드를 같이 했던 친구가 제안한 것으로, 아름다운 선율에서 따왔다. 선우리는 아내가 밀었다. 

곧 가족 투표를 진행했다. 지난 11월 태교여행으로 처가에 갔다. 어머님, 아버님께 여쭸더니, 모두 선율이가 더 좋다고 하셨다. 아싸! 대세는 기울었다. 앞서 회사 사람들에게 선율로 이름을 짓는다고 했을 때 대부분 예쁘다고 했다. 부모님도 내 뜻에 반대하지는 않으실 게다. 그럼, 처형과 형님의 찬성을 얻는다면, 봄이의 이름은 선율로 확정이다.

바로 아내에게 졸라, 처형에게 전화했다. 선택한 이름은... 선우리였다. 이름 확정은 미뤄야겠다. 하지만 최후의 수단이 있다. 첫째 처조카 유라의 마음을 산다면, 처형도, 유라를 끔찍이 사랑하는 아내도 내 뜻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아내의 임신 초기, 유라는 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임신한 아내는 2표를 행사해야한다고 했다. 반박하지 못했다.

유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유라와 놀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어느 날 밥 먹으면서 유라에게 기습 질문을 던졌다. 선율과 선우리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선율이 좋단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몇 초 뒤 이모가 지은 선우리가 좋다고 바꾸긴 했지만, 어쨌든 내겐 큰 힘이 됐다. 아내는 처음에 외자를 싫어했지만, 봄이가 엄마의 성을 이름 앞에 붙여도 어색하지 않다고 설득했다. 봄이의 이름은 그렇게 정해졌다.

그런 생각을 흘려보낸 뒤, 출생신고서를 적어 내려갔다. 주민센터 직원에게 출생신고서를 전달하고 난 뒤 5분이나 흘렀을까. 그 직원은 따끈한 주민등록등본을 내게 건넸다. 거기엔 나와 아내, 그리고 봄이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봄이의 주민등록번호도 있었다. 태어난 지 보름도 안 된 아이한테 주민등록번호가 생기다니 참 신기한 노릇이다.

봄이가 대한민국 국민이 된다는 건, 국방의 의무를 가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 군대에서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다. 봄이가 갈 군대는 지금보다야 낫겠지만, 그때도 군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폐쇄적인 공간일 가능성이 크다. 유난 떠는 것일 수 있겠지만, 봄이가 군대에 갈 20년 후가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출생신고 후 옆 창구에서 출산축하금과 양육수당을 신청했다. 양육수당은 생후 11개월까지 20만 원이 지급되고, 그 뒤 1년마다 5만 원씩 줄어든단다. 어린이집에 보낼 경우에는 양육수당 대신 보육료가 나온다. ‘무상보육이니, 돈 안들이고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느냐고 주민센터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이 말했다. "많은 분들이 그런 질문 하시는데, 돈이 추가로 들죠. 그래서 다들 이게 무슨 무상 보육이냐고들 해요. , 차차 좋아지겠죠."

기쁨과 흥분을 한가득, 한편으로는 걱정을 한가득 안고 주민센터 밖을 빠져나왔다.

- 2014. 12. 25 크리스마스 밤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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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후배들의 기저귀 선물

봄이야.

봄이가 태어난 지도 어느덧 열하루가 지났네. 네가 태어나던 그 순간이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한데, 넌 벌써 그때의 네가 아니구나. 3.18kg로 태어났는데, 지금은 3.72kg. 정말 많이 컸단다. 조리원에서 넌 식탐이 많다고 소문났어. 잘 먹고 건강한 네 모습에 엄마 아빠는 흐뭇해. 그런데 말야, 엄마는 좀 힘들단다.

네가 태어날 때, 엄마는 많이 아팠어. 평생의 식은땀을 그날 다 흘린 것 같았지. 너를 낳은 뒤에도 엄마의 식은땀은 마를 날이 없어. 네가 더욱 건강하게 클 수 있도록 엄마는 매일 젖을 짜고 있어. 출산의 고통보다 크다는 젖몸살을 겪었고, 매일 통곡의 마사지도 받았어. 그제야 조금씩 네가 엄마의 젖을 빨 수 있었단다. 어느 날 새벽 홀로 의자에 앉아 네게 먹일 젖을 짜던, 네 엄마, 아니 내 아내의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단다.

엄마는 네 걱정에 눈물짓기도 했어. 봄이가 킁킁거려서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많았거든. 엄마는 봄이가 건강하길 빌었고, 다행히 아픈 데는 없었단다. 네가 앞으로 건강하게 자란다면, 그건 너를 향한 엄마의 사랑 때문일거야. 지금은 엄마의 품에 안겨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지만, 먼 훗날엔 네가 엄마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기를 바랄게.

엄마가 너를 낳기 며칠 전, 네 외할머니가 집에 오셨어. 외할머니는 너를 위해 집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했어. 네가 뒹굴 이불과 네가 입을 옷들을 모두 깨끗하게 빨고, 가지런히 정리했어. 난 엄두도 못 냈는데 말야. 외할머니는 그렇게 네 첫 보금자리를 꾸렸어. 며칠 뒤면, 넌 조리원에서 나와 처음으로 엄마 아빠와 함께 집에서 지낼 거야. 넌 그곳에서 외할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겠지.

봄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듬직한 이모가 있어. 네가 세상의 쓴맛을 보게 된다면, 제일 먼저 엄마 아빠가 아닌 이모에게 연락하는 게 여러모로 좋을 거야. 어떤 문제건, 이모가 다 해결할거야. 넌 벌써 부자야. 네 첫 번째 탈것인 유모차를 비롯해 네 짐은 아빠 것보다 많아. 모두 이모의 선물이란다. 사실 네 사촌누나들이 사용한 건데, 아주 깨끗해. 이모가 외할아버지 댁에 차곡차곡 쌓아뒀거든. 그리고 봄이가 목욕할 작은 욕조도 이모의 선물이야. 너의 첫 디즈니 상품도 이모가 사준 옷이야.

봄이의 외할아버지는 네가 조리원에서 킁킁 거린다니까, 가습기를 바로 주문하셨어. 봄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마트만 가면 네 옷을 사느라 정신 없으셔. 네 작은 아빠와 작은 엄마는 너의 건강한 탄생과 성장을 기도했어. 예쁜 옷도 사줬단다.

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봄이를 사랑했어. 가족뿐만 아니라 봄이의 엄마 아빠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네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세상에 나오기를 기도했단다. 그래서일까, 봄이는 건강하게 탄생했고 건강하게 크고 있어.

아빠의 선배는 네게 필요한 것들을 한가득 보냈어. 아빠의 후배는 봄이가 건강하게 입을 수 있도록 유기농 옷을 선물했어. 아빠와 엄마의 친구들은 잠깐이나마 너를 보기 위해 멀리서 예쁜 옷을 사들고 왔어. 널 향한 엄마 친구와 후배들의 사랑도 만만치 않아. 집에 기저귀와 옷이 한가득이야.

봄이야.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든 날이 많을 거야. 어떤 날은 세상이 널 배신한 듯 참 외롭고 서러울 거야. 그럴 때마다 네 탄생을 축복했던, 그리고 너를 많이 사랑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렴. 큰 힘이 될 거야. 그리고 네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받았던 사랑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답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말이 너무 많았지. 이만 줄일게.

2014. 12. 22 새벽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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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결혼을 하며 서로의 생리현상을 최대한 숨겼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새어나온 무취 무향의 방귀는 숱하게 많았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암묵적 합의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긴장감은 사그라들었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뿡", "뿡" 새어나왔다.  나는 '생전 방귀 한 번 뀐 적 없는 듯' 남편을 놀려댔고, 그럴때마다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기 바빴다.

하지만 내게도 시련은 닥쳐오고 있었다. 임신 이후 막달에 가까워질수록 괄약근 조절이 안 되는 게 아닌가. 봄이를 낳기 직전엔 아주 대놓고 '뿡, '뿡' 거리며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처음이 어렵지 두번, 세번은 쉬운 법이다. 처음 방귀가 새어나온 날은 새색시의 연지곤지처럼 얼굴이 달아올라 여기저기로 도망다니기 바빴지만, 봄이가 나올 날이 다가올 수록 '뭐가 나왔나?', '나 임산부야'라며 아주 당당히 껴대기 시작했다.

헌데 문제는 출산과 함께 돌아올 거라 생각했던 이 방귀조절기능에 있었다. 회음부 절개로 소대변에만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 괄약근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거라...

그나마 병원에서는 나은 편이었다. 이제 막 회복에 들어가니 방귀에도 힘이 없었다. '피식~' 새어나오는 정도에 향도 그닥 없어 눈치껏 내보내면 괜찮았다. 그리고 곧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조리원에서는 2시간마다 한 번씩 수유을 해야 한다. 이른 아침이면 비몽사몽으로 '수유콜'에 이끌려 수유실로 끌려간다. 입실 초기엔 물 한잔 마실 여유도, 화장실 한 번 들릴 여유도 없이 수유실로 달려가게 된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니 마음이 급해지기 때문이다.

헌데 이게 문제였다. 하루는 수유실 일자 의자에 엄마들 5~6명이 앉아 수유를 하고 있었다. 나 역시 한쪽 귀퉁이에 앉아 봄이에게 수유를 하고 있었다. 헌데 사건은 그때 발생했다.

수유실로 갈때까지만 해도 평온했던 배에 신호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덧 '그분'은 입구까지 마중을 나오셨고 나는 의자에 앉아 최대한 버텼다.

방까지, 아니 복도까지, 아니 수유실 밖까지만이라도 버텨주길 바라며 입구에 최대한 힘을 모아 '그분'을 밀어넣고 또 밀어넣었다. 평소에는 잘도 참고 잘도 뱃속으로 역류하던 '그분'이 출산 이후 입구에서 쉬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분'과 나는 그렇게 대치하며 10여 분을 보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있다가는 큰 사단이 나고야 말 것 같았다. 지금 수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이제 조리원에 입실한 지 이제 막 만 하루가 되는 신입이었다.

사람은 자고로 첫인상이 중요하다. 엄마들 다 모인 수유실에서, 그것도 우리 아기님들 식사하시는 자리에서 실례를 범할 순 없었다.

난 다급하게 "선생님"을 불렀다. 힘겹게 일어섰지만 이미 내 몸은 베베 꼬이고 있었다. 손으로 입구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나름 어렵게 쌓아온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이렇게 쉽게 놓을 수는 없었다.

나는 신생아실 선생님께 봄이를 거의 던지다시피하며 몸을 재빨리 돌려 수유실 문쪽으로 향했다. 헌데 '이제 살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을까. 문고리를 채 잡기도 전에... 아주 시원하게 "붕~~" 소리가 어디선가 흘러나왔다.

'아냐아냐, 이건 아냐. 이건 현실이 아냐. 내가 아니라구' 하지만 모두의 시선은 내게로 향했다. 낯선 눈빛 10개가 나에게 향하고 있었다. '아.. 망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 거야', '

궁지에 몰릴 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나는 회피보다는 정면대결을 선택했다.

"죄송합니다."

얼굴엔 살짝 미소도 곁들였다. 내 얼굴엔 민망함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임신으로 60kg가 넘은 이 몸을 어떻게든 쥐구멍에 구겨넣고 싶었다. 하지만 이 몸을 구겨넣을 쥐구멍은 그곳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 세상은 살만했다. 아이를 출산하면 마음이 유해지고 성격이 둥글둥글해진다고 했던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 몰라도 나는 그 말을 직접 경험했다.

엄마들은 '괜찮다'며 '그 마음 우리가 다 안다'는 듯 내게 미소를 보냈다. 긴장됐던 나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고 나의 속은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조리원 입실 1주일째, 나는 이제 문제없이 괄약근 조절이 가능하다! ㅋ

- 2014. 12. 19 밤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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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이 걸렸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땀이 흘러 내렸다. 흘러내린 머리는 땀에 떡졌고, 얼굴은 홍당무가 됐다. 1시간 동안 양쪽 가슴을 번갈아 쥐어짜느라 손은 얼얼했다. 혹사당한 가슴은 불덩이가 됐다. 그렇게 1시간 사투 끝에 얻은 건 겨우 20cc의 초유.

오늘 목표는 20cc였다. 간밤엔 마사지해 주는 남편 덕에 30~40분 만에 20cc를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나 홀로는 쉽지 않은 목표치였다.

"딱 10번만 더 짜자", "딱 5번만 더 짜자", "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만 더 짜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1시간만에 겨우 20cc를 채웠다. 정확히 말하면 19cc는 될까. 마나 쥐어짰는지 가슴은 불덩이가 됐고, 더 이상 내 손으로 내 몸을 혹사시킬 수 없었다. 왜냐, 3시간 뒤면 또 유축을 해야하니깐. 그리고 곧 또 '수유콜'이 올테니깐.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나름 의기양양하게 젖병을 들고 수유실로 갔다. 나도 이제는 유축 젖병에 봄이의 이름을 적고 신생아실에 내놓을 수 있게 됐다. 이제 우리 봄이도 엄마 초유를 먹을 수 있다.

사실 조리원에 온 이후 나오지 않는 젖을 빨며 울음을 터트리는 봄이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엔 '모유가 안 나오면 분유를 먹이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의 모유를 쪽쪽~ 빨아먹는 다른 아이들을 보니, 봄이가 불쌍해졌다.

나오지 않는 젖을 한 번이라도 더 빨겠다며 안간힘을 쓰는 봄이와 달리, 나는 너무 쉽게 포기하는 건 아닌지 싶었다. 결심끝에 '통곡의 마사지'라 불리는 가슴 마사지를 받았다. 그것도 연달아 두번이나.

어제는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젖몸살에 마사지몸살까지... 오한이 들고 온몸이 아팠다. 그래도 빈젖을 빠는 봄이를 생각하면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1시간 만에 20cc의 초유를 얻었다.

하지만 의기양양했던 나의 모습은 '급' 작아졌다. 수유실로 들어서는 엄마들은 40cc, 60cc 채운 유축 젖병을 들고 왔고, 어떤 엄마는 젖병 한 통을 가득채워 의기양양하게 들어왔다. 앗!!!!

'그래도 뭐~ 처음인데'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제 갓 태어난 봄이에게 20cc도 결코 적은 양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봄이에게 영광의 결과물을 물렸다.

'엄마가 1시간 동안 고통을 참아가며 쥐어 짠 초유야. 한 방울도 흘리지말고 꿀떡꿀떡 다 먹어~'

인자한 엄마의 눈빛을 채 쏘기도 전에, 이 자식이 내 피같은 20cc를 다 먹어 치워버렸다. 내가 내가... 1시간 동안 피땀흘려 짜낸 초유를... 이 자식이 채 1분도 안돼 다 먹어치워버린 것이다. 젠장할. 썩을 놈!

가슴은 무너져내렸고 배신감에 사지가 떨렸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새어나왔다. 말이라도 통하면 이유라도 묻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노고를 그리 한 순간에 해치울 수 있냐'고, '그게 사람이냐'고, '사람은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향을 음미하고 맛을 느끼며 한 모금 한 모금 예의를 다해 넘겨야 하는 거라'고 말이다.

봄이는 부족한 양을 분유로 채우고 다시 잠이 들었다. 세상 편하게 잠을 잔다. 엄마의 불덩이 같은 가슴 따윈 안중에도 없다.

나.. 또 유축하러 간다.

- 2014. 12. 16 낮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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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후 6시는 환희와 긴장이 뒤섞이는 순간이다. 그때 신생아실은 청소와 소독을 한다. 봄이는 아내가 생활하는 조리원 217호에서 1시간 30분 동안 지낸다. 아내 혼자 봄이를 보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초보 엄마 아빠가 진땀을 빼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난 오후 6시가 기다려진다. 아빠인 내가 봄이를 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오늘 오후 6시 아내는 저녁을 먹고 홀로 방으로 들어왔다. 봄이를 기다렸던 내 표정에 실망감이 역력했나 보다. 아내는 내 표정을 읽고는 웃음을 바닥에 흘리며 바로 봄이를 데려왔다. 내 얼굴에 화색이 돈다. 봄이와의 눈맞춤을 1분도 늦출 수 없다! 봄이가 세상에 나올 때는 덤덤했다. 그때 장모님이 내게 소감을 물었는데 "잘 모르겠어요, 어떨떨해요"라고 답했다. 그랬던 내가 어느새 '아들바보' 아빠가 돼 있었다.

봄이가 내 품에 안긴다. 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가! 참 잘생겼다! 앞으로 더 잘생겨질 우리 봄이. 이런 저런 표정도 참 귀엽다. 하지만 부자간의 즐거운 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봄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방이 떠나갈듯 운다. 내 품이 불편한가 보다. 자세를 바꾸어본다. 하지만 봄이의 울음소리가 더 커진다. 좀 쉬려했던 아내가 소환된다. 봄이를 안고 좁은 방을 왔다 갔다하며 봄이를 달랜다.

봄이는 쉽게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아기들이 우는 이유는 보통 '배고프다'는 뜻이다. 하지만 봄이는 좀 전에 분유를 가득 먹었더랬다. 그럼, 왜 우는 걸까. 봄이가 아내의 젖을 물도록 준비한다. 아직 젖이 나오지 않아서 젖꼭지의 도움을 받는다. 처음엔 울음을 그치며 젖꼭지를 쪽쪽 빨지만, 또 운다. 아내의 얼굴에 식은땀이 맺힌다. 혹시 어디 아파서 우는 건 아닐까. 방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아내가 수유실에 갔다 오더니, 분유가 반쯤 담긴 젖병을 받아왔다. 봄이를 안고 젖병을 물렸다. 열심히 먹는다. 배고팠구나... 얼굴에 허탈한 웃음이 스친다. 조리원에서도 식탐이 많기로 소문난 봄이다. 앞으로 어쩌려고 그러니. 배고픔이 가시니 울음을 그친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내는 다시 봄이를 안고 좁은 방을 돌아다니며 토닥토닥 한다. 봄이가 눈을 감는다.

그렇게 한바탕하니, 봄이와 헤어져야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아빠 노릇을 하겠다며 봄이를 받아 안는다. 이내 울음이 터져나오는 봄이. 아, 서운하다. 부자지간의 정은 언제쯤 깊어질고.

- 2014. 12. 14 밤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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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태어났고, 아빠가 됐다. "우리 아들"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입에 잘 붙지 않고 쑥스럽다. 많이 연습할 걸 그랬나 보다. 아직은 아들보다 선율이라는 이름이, 또 선율이보다는 태명인 '봄이'가 편하다. 언제쯤 "우리 아들"이라고 부르는 게 편해질까. 우선 아내와의 약속에 따라, 우리 세 가족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봄이라 부르련다. 

아내에게 진통이 오기 전, 봄이와의 만남에 마음이 들떴다. 봄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잘 생겼을까. 혹시 아픈 데는 없을까. 12월 9일 새벽 아내에게 진통이 왔다. 새벽 어스름, 아내의 끙끙 앓는 소리에 잠이 깼다. 아내는 5분 간격으로 힘겨워했다. 해가 뜨자 아내의 진통은 점차 사그라졌다. 가진통이었나보다. 아내의 진통이 다시 시작될까, 하루종일 초조했다.

이튿날 새벽, 아내에게 다시 진통이 찾아왔다. 아침이 되자, 아내는 병원에 가자고 했다. 병원에 가니 의사는 "오늘 병원에서 낳자"고 했다. 자궁문이 열리기 시작한 거였다. 입원 수속을 밟았다. 장모님, 처형, 아버님에게 소식을 알렸다. 걱정과 흥분이 교차했다. 시간이 갈수록 아내가 견디기엔 큰 고통이 찾아왔다. 무통주사를 맞고 나서야, 아내는 이내 안정을 찾았다. 

해가 진 뒤 어슴푸레한 저녁, 아내는 분만실로 향했다. 무통주사를 더이상 맞을 수 없었다. 고통에 지친 아내에게 1분 간격으로 더 큰 고통이 찾아왔다. 시뻘게진 얼굴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닦아도 닦아도 고통과 함께 오는 식은땀을 없앨 수 없었다. 아내가 "너무 아프다", "살려달라"고 부르짖자, 내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내의 고통을 나누기보다, 봄이와 만날 생각이 앞섰던 내가 야속하고 미웠다.

영원과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내의 힘겨운 사투가 끝났다. 밤 9시 18분이었다. 핏덩이가 아내의 몸에서 나왔다. 간호사에 의해 거꾸로 매달린 봄이는 곧 울음을 내지르며, 탄생을 알렸다. 아내에게 안도감과 약간의 흥분이 내려앉았다. 허둥지둥 탯줄을 잘랐다. 봄이는 건강해보였다. 아내의 가슴에 안긴 봄이는 뭐가 불편한지 큰 소리로 울었다. 자식은 부모 뜻대로 안되는구나 싶었다.

이틀 뒤 조리원에 와서, 봄이를 처음 안았다. 조심스레 왼손으로 봄이의 머리를 받쳤고, 오른팔로 봄이의 몸을 안았다. 봄이의 온기와 무게가 느껴졌다. 새근새근 잠이 든 봄이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봤다. 나와 아내를 닮은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참 귀엽고 잘생겨 보였다. 자식이라서가 아니다! 아니, 자식이라서 그런건가...? 어쨌든! 그제야 봄이가 가진 존재의 무게가 내게 다가왔다. 봄이에게 속삭였다.

"봄이야! 우리 세 식구, 행복하게 살자." 

그리고 아내에게 아직 못 다한 말을 여기서 전한다.

"봄이 낳느라, 참 고생 많았어요. 미안하고 고마워요. 당신이 겪었던 고통, 결코 잊지 않을게요. 봄이가 당신에게 잘하도록 내가 잘 전할게요. 사랑해요."

- 2014. 12. 13 밤(봄이가 태어난 지 만 3일을 채우고)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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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텃밭의 첫 수확!옥상텃밭의 첫 수확! 상추!

오늘 직접 기른 상추를 따먹었다. 한 달가량 햇볕에 내놓고 아침마다 물만 줬을 뿐인데, 무럭무럭 자랐다. 뿌듯하다. 아마도 이런 게 수확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오늘 저녁 식탁에서 삼겹살을 꼭 감싸 안은 녀석들의 모습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옥상에 텃밭을 가꾼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언덕 위의 빌라 5층에서 살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즐거움 중에 하나가 텃밭을 꾸미는 일이다. 사실 다른 집처럼 베란다에 텃밭을 가꾸고 싶었다. 하지만 동향인 우리 집에는 햇볕이 오전에 잠깐 들다가 곧 사라진다.

베란다에 텃밭을 꾸밀 수 없다는 사실은 내게 좌절감을 안겼다. 지난해 여름 아내와 결혼할 때, 혼수로 텃밭용 화분 2, 상추씨, 흙더미를 받았던 터였다. 또한 그 흙더미를 들고 5층 문 앞에 섰던 땀범벅의 택배 기사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그때 발견한 희망의 공간이 바로 옥상이다. 처음 맞닥뜨린 옥상은 황량했다. 한 여름 옥상에는 에어컨 실외기 몇 대만 뜨거운 바람을 내뱉고 있었다. 몇 가닥의 빨래 줄은 축 늘어져있었다. 버려진 옥상이었다. 우리 부부에게는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방해받지 않고 텃밭을 꾸밀 수 있으니까.

옥상텃밭의 시작

싹을 틔운 상추, 그러나...싹을 틔운 상추, 그러나...

우리 부부는 옥상에 혼수로 받은 텃밭용 화분 2개를 놓았다. 그곳에 상추씨를 뿌리고 흙을 덮었다. 지난해 가을이었다. 상추는 금방 싹을 틔웠다. 조금씩 상추다워졌다. 어린 상추는 참 귀여웠다. 하지만 곧 찬 바람이 불었다. 비닐을 덮어 비닐하우스를 만들었지만, 상추는 더 자라지 못했다. 그렇게 겨울이 왔다. 눈물을 머금고 얼어붙은 상추를 흙으로 덮었다.

곧 따뜻한 봄이 왔다. 부푼 기대를 안고 상추씨를 뿌렸다. 매일 아침 물을 뿌렸다. 며칠이 지나도 화분 안은 조용했다. 지난 가을에는 상추 싹이 금방 나왔다. 뭐가 잘못 됐을까. 어떻게 해도 상추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 누구나 도시농부가 될 수 없겠지.’ 씁쓸했다.

그 뒤 아내와 함께 찾은 재래시장. 꽃가게에서 갖가지 채소의 모종을 싸게 팔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전해보자.' 방울토마토와 피망 모종 4개씩을 샀다. 방울토마토는 잘 자란다기에 샀고, 피망은 아내가 좋아하기에 구입했다. 그리고 길 가다가 남의 집 앞에 버려진 스티로폼 3개를 주어왔다. 유기농 흙을 주문했다. 화분과 스티로폼에 모종을 옮겨 심었다. 상추씨도 다시 뿌렸다.

아내 뱃속에 있는 봄이동생이라는 뜻으로, ‘여름이이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정성을 다해 아침에 물을 뿌렸다. 그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무럭무럭 자랐다. 상추는 따달라는 듯 스티로폼 화분을 가득 채웠다. 방울토마토에는 꽃이 달렸고, 곧 그 자리에 조그마한 방울토마토가 열렸다.

이렇게 무럭무럭 자랐어요.

저 탐스러운 방울토마토를 보시라!

하지만 최대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피망이었다. 방울토마토와 비교해 자라는 속도로 너무 느렸다. 무엇보다 피망 잎에는 진딧물이 가득했다. 이 벌레들이 잎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농약을 쓰고 싶었지만 참았다. 민간요법을 찾았다. 우유를 뿌렸다. 그 뒤 진딧물은 많이 없어졌지만, 피망 잎에는 아직도 우유의 흔적이 남아있다. 피망의 성장은 아직 더디다. 아픈 손가락에 마음이 많이 쓰인다.

앞으로 우리 부부의 텃밭은 어떻게 변해갈까. 찬찬히 그 이야기를 여기에 풀어놓을 생각이다. (안타깝게도 사정상 연재를 중단했습니다. 2015년에 다시 한번 도전해봐야겠습니다.)

 

 12월 11일까지 봄이일기를 쓸 산모수첩이다봄이가 탄생할 12월 11일까지, 산모수첩에는 봄이가 커가는 모습이 담긴다.

버스 창밖 풍경을 보다가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그러다가 갑자기 울컥한다. 햇볕 좋은 봄날 내 감정선은 그렇게 요동쳤다. ‘봄이는 그렇게 우리 부부에게 왔다.

41, 환한 햇볕이 집안으로 스며들던 아침이었다. 창밖에선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가 봄이 왔음을 알렸다. 출근 준비를 잠시 미루고 침대 위에서 기사를 쓰고 있었다. 갑작스레 어머라는 아내의 외침이 들렸다. 아내가 화장실 앞에서 놀라움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날 보며 웃고 있었다. 임신테스트기를 들고 있던 아내는 두 줄이야라고 외쳤다.

내가 아빠가 된다? 얼떨떨했다. 실감이 나진 않았다. 하지만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날 오후 아내와 손을 맞잡고 병원에 갔다. 아쉽게도 아이의 존재는 확인할 수 없었다. 임신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혈액검사를 했고, 며칠 뒤 아내의 임신은 확인됐다. 지난달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갖기로 했다. 노력한 지 한 달도 안 돼, 아이가 생긴 것이다.

우리 부부에겐 축복이었다. 첫 손주를 맞이할 부모님은 아주 좋아했다. 잠시 아이를 맡아주실 장모님에게 전화해 보약 지어드리겠다고 말했다. 장모님은 괜찮다“며 웃었다. 장인어른 역시 축하를 건넸다. 앞으로 고생할 장모님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속으로 외쳤다. ‘아버님 걱정마세요. 장모님의 고생을 최대한 덜어드리겠습니다!’

지난 11일 아내와 아이의 첫 주치의를 만났다. 초음파로 아이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새 생명이 앞으로 8개월 간 지낼 아기집을 확인했다. 주치의는 1211봄이가 태어날 것이라고 넌지시 일렀다. 8개월 후 우리 부부는 봄이 엄마‘, ’봄이 아빠가 된다. 낯간지럽지만, 벌써 서로를 그렇게 부른다.

그렇게 행복하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울컥한다. 봄이를 잘 낳고 잘 키울 수 있을까. 가장이라는 책임감, 그 무게가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지난 일요일, 회사 후배의 결혼식 후 집으로 가는 길. 어린 딸과 함께 온 회사 선배와 같이 전철을 탔다. 그 선배는 딸과 함께 캠핑한 얘기를 우리 부부에게 들려줬다. '오오~' 우리 부부는 연신 감탄사를 외쳤다. 곧 결심했다. ‘봄이와 캠핑가자!’ 당분간 울컥함을 접어두고 행복하련다.

- 2014. 4. 14 밤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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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친구의 글입니다. 

집을 구했다. 어른들 말씀에 집구하다 지쳐 결정한다고 하더니 딱 그 짝이다. “도대체 결혼 준비는 하고 있냐?”, “뭐가 그리 천하태평이냐?”는 갖은 채찍질과 잔소리 속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각오로 임한 결과, 드디어 승전보를 울린 것이다.

지난 주말,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매물이 워낙 없어 일단 확인부터 하고 나설 참이었다. 헌데 부동산 5군데 중 우리와 맞는 조건의 매물이 있는 곳은 단 한 곳뿐.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부동산 중개인은 집 두 곳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집은 나름 거실과 베란다가 있어 마음에 들었다. 지난 두 달간 본 매물 중 최상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최신식으로, 그만큼 방은 작았고 수납공간조차 놓을 수 없었다.

오늘은 기필코 계약을 하고 만다는 각오로 임했던 터라 나는 첫 번째 집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남자친구만 괜찮다면 그 집으로 당장 계약을 할 참이었다. 여름의 더위가 더해질수록 매물 역시 가물어갔고, 저 정도 집 역시 다시 만나기 어려울 터였다.

우리는 증산역 근처 카페에 앉았다. 뭔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 남자친구의 갈등과 고민에 휩싸인 분위기가 감지됐다. 일단 시간이 좀 필요할 거 같았다.

여친의 비법 공개 … “어르고 달래고 협박해”

어떤 거 같아요?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요?”
두 번째 집은 거실이랑 베란다도 없고. 그나마 첫 번째 집이 괜찮은데.”

남자친구는 섣불리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안다. 거실이 작아도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벽면 4곳 중 2곳이 베란다와 주방으로 뚫려 있고, 한쪽 벽엔 화장실과 다용도실 문이 달려 있어 거실로 꾸미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아니~ 거실이 너무 작아요. 문 때문에 공간 활용도 못하잖아요.”
그렇긴 한데, 이 가격에 저 정도 크기, 저 위치면 최상이에요. 그나마 저기가 5층격이라 우리 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 같은데.”
그건 아는데. 그래도 거실이 너무 작아서 결정을 못하겠어요.”

안다. 무슨 말인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 공간이기에 거실에 집착하는 거. 하지만 전세 9천 빌라에 거실다운 거실을 얻기란 쉽지가 않다. 경기도로 나가든, 마을버스를 타고 구석으로 들어가든 해야 한다.

그 집에 짐이 많아 더 작아 보이는 거예요. 깨끗하게 꾸미면 잘 활용할 수 있어요.”
그래도 거기 문 때문에.”

사실 내가 강력하게 밀어붙였다면 우리는 이미 두 달 전에 집을 구할 수 있었을 거다. 헌데 남자친구의 의견을 존중해 미뤄왔다. 하지만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다. 지금은 어르고 달래기 신공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종이와 볼펜을 꺼내 그림까지 그리며 설득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나 너무 고민돼요. 결정을 못하겠어요.”
다용도실 문 막아줄게요. 세탁기야 뭐, 안방 베란다로 빼던지 할게요.”
그래도.”
블라인드로 이렇게 막고, 여기에 텔레비전을 놓으면 거실처럼 꾸밀 수 있어요.”
. 모르겠어요. 오늘 결정하지 말고 다다음주에 다시 나와 보자고 하면 화낼 거예요?”

. 나는 속으로 당연한 소리!!!’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러다 결혼식 올리고 각자 집으로 가게 생겼어요. 아직까지 이러면 어떡해요. 더군다나 지금까지 봐 온 집 중에선 최상인데. 포기할 건 포기해야죠.”
그건 아는데포기가 안 돼요. 거실이.”

이 양반이 장난하나.

매물이 없잖아요. 그나마 있던 것도 다 나가고. 자기가 무슨 말하는지 알겠는데. 그래요. 오늘 결정 안 해도 돼요. 존중해요. 헌데 2주 뒤에 나왔는데 매물이 없거나 또 결정 못하면, 내 손에 죽는 수가 있어!!!”
!!!!!!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부동산 딱 한 곳만 더 보고 결정하면 안돼요?”
…… 그렇게 해요.”

우리는 결국 또 다른 부동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몇 걸음 뗐을 때 그는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비장하게 말했다. “부동산에 전화할게요. 계약하겠다고.” 그리곤 전화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아 달란다. 이 처절한 고뇌와 결단의 순간을 기록하겠단다. 참 별걸 다 한다 싶었지만 나는 길 한복판에서 핸드폰을 들었다.

우리는 결국 아담한 빌라 5(실제는 4층이라고 꼭 말하고 싶다. 너무 겁먹지 말고 놀러들 오시라.^^) 투룸을 계약했다. 신혼집 구하기 프로젝트 3개월만의 쾌거였다. 남자친구가 큰 결단을 내려줘 이쯤에서 집을 얻을 수 있었음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시원한 생맥주 한잔으로 조촐한 축하파티를 하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큰 숙제를 해결한 듯한 상쾌함에 두 다리 쭉~ 펴고 침대에 누웠다. 그때 띵똥카톡이 왔다.

OO은 큰 거실을 보장하라! OO은 작은 방에 침대를 구겨 넣고, 안방을 거실로 만들어 달라!”

! 일단 여기서 수습해야 단 몇 분이라도 빨리 잠을 청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해 침대를 작은방에 넣어보겠음.”
구겨 넣어라! 구겨 넣어라!”

결국 작은방을 침실로, 안방을 거실 겸 서재로 만들어 줄 것을 약조하고 나서야 나는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허나, 슬프게도 우리 작은방은 싱글 침대 하나 들어가기 버거운 크기다. 이 남자가 그걸 아는지 모르겠다.

여자 친구가 쓴 글입니다.

본격적으로 신혼집을 알아보기 전의 일이다. 조언도 얻고 시세도 알아 볼 겸 인터넷으로만 전세 매물을 알아보던 어느 날 남자친구가 말했다.

20대를 다 바친 대가인데, 이 돈으로 우리 방 한 칸도 얻지 못한다니 너무 허무해요.”

그는 환승 할인을 위해 30분 내에 볼일을 보고, 햄버거는 런치만 먹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고가의 브랜드 옷은 회사 단체 잠바가 거의 유일했고, 20만 원가량의 잠바 결제에 앞서선 심장이 떨린다며 백화점을 몇 바퀴나 도는, 그런 검소한 사람이다.

허무하다는 그의 말에 미안함이 앞섰다. 어려운 살림살이도 이유가 됐겠지만 낭비하고 소비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그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모은 걸 안다. 그리고 그 돈이 참으로 값지고 감사하다는 것 역시 안다.

그렇기에 더 미안했다. 2년 전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모두가 예상하듯 알뜰하게 모은 돈은 몇 천 만 원의 학비와 그에 상응하는 생활비로 다 나갔다. 이제 내 통장은 거의 빈털터리나 다름이 없다. 결혼 역시 부모님의 자비가 없었으면 추진될 수 없었다.

예전엔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관행이 약속이나 한 듯 철저하게 지켜졌다. 하지만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에 점점 남녀를 나누지 않고 함께 집을 마련하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내가 대학원을 가지 않았다면 지금 집값에 보탬이 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들처럼 대출을 시원하게 받기도 애매했다. 반백수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대출 이자를 꼬박꼬박 갚을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고, 그렇게 이자와 원금에 허덕이다 둘이 얼굴 붉혀야 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그의 노동의 대가로 얻을 수 있는 집은 한계가 있었다. 그와 나는 생각의 시작부터 달랐다. “어차피 2년 정도 밖에 안 살 건데 무리하지 말고 대충 작은 데 구하자는 나와 우리가 2년이나 살 곳인데 너무 작고 허름한 곳은 안 된다는 그.

나의 예산에 맞춰 본 집들은 하나 같이 아주 낡았거나, 지하철역에서 많이 멀거나, 거실이 없거나, 싱크대에 누수현상이 있거나, 냉장고에 기대 텔레비전을 봐야 하거나, 빨래를 안방에 널어야 하는 뭐 그런 조건의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대출을 받지 않는 선에서 그 정도 집은 금상첨화라 생각했다.

하지만 좀 더 깨끗한 집, 좀 더 안전한 집을 원하는 남자친구에겐 어깨가 쳐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겁이 많은 나를 위해 보안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그였기에 우리의 선택은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지난 주말, 우리는 불광, 연신내, 응암, 증산 쪽을 돌아보았다. 해는 뜨겁고 땀은 비 오듯 쏟아졌지만 발걸음만은 가벼웠다. 왠지 오늘은 집을 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헌데 불광은 재개발에 묶여 께름칙했고, 연신내는 너무 번화가라 우리 두 사람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응암은 환승역에 있을 거 다 있으면서도 조용한 분위기였지만 왠지 모르게 애정이 가지 않았다. 헌데 친구와의 약속시간이 남아 우연히 들르게 된 증산에서 나는 올레!!’를 외쳤다.

스트라이다

아니 뭐 이런 매력적인 동네가 다 있는지. 지하철역을 나오자마자 마주 선 불광천은 갑갑했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매일 이 길을 따라 오가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그토록 원하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각형인 스트라이다를 타고 불광천을 달릴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남자친구는 말했다.

우리 이 동네로 결정해요. 스트라이다 타고 불광천을 달리고 싶어요. 우리 대출 받아요. 대출!”

주말이면 둘이 자전거를 타고 영화를 보러 갈 수도 있고, 여름밤에는 맥주 캔 하나씩 들고 나와 하루를 푸념할 수도 있는. 적당히 조용하고, 적당히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더군다나 적당히 버스도 있고, 적당히(, 이거는 적당히가 아니다.) 언덕도 있고, 무엇보다 대형 마트가 바로 코앞에 있지 않아 좋았다. 그래, 나는 증산에 반해버린 것이다.

아직 우리는 집을 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광천에 반해 나는 어렵게 양가에 조금씩 도움을 받기로 했다. 대출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받기로 했다. 대출금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삶의 질을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정해졌다.

아마 큰 이변이 없는 한 우리는 증산역 어디쯤, 그 언덕 위에 아주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 손을 잡고 그 언덕을 내려와 출근과 등교를 하고 해가 넘어가는 저녁 다시 그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를 것이다.

그저 대출을 받지 않고 작은 집을 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그저 좋은 집을 얻기 위해 많은 대출을 떠안거나 끝으로 끝으로, 구석으로 구석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다. 그냥 각자의 가치관과 추구하는 삶의 질에 맞춰 일정한 타협선을 보면 될 것이다.

나는 결국 조용하지만 사람 냄새나는, 말 그대로 동네같은 동네에, 그리고 갑갑했던 나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켜버린 불광천에 반해 언덕도, 대출도 떠안고 가기로 했다. 이제 남은 건 집을 구하고, 알바를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신혼집 구하기 프로젝트]4~5일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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