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친구의 글입니다. 

집을 구했다. 어른들 말씀에 집구하다 지쳐 결정한다고 하더니 딱 그 짝이다. “도대체 결혼 준비는 하고 있냐?”, “뭐가 그리 천하태평이냐?”는 갖은 채찍질과 잔소리 속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각오로 임한 결과, 드디어 승전보를 울린 것이다.

지난 주말,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매물이 워낙 없어 일단 확인부터 하고 나설 참이었다. 헌데 부동산 5군데 중 우리와 맞는 조건의 매물이 있는 곳은 단 한 곳뿐.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부동산 중개인은 집 두 곳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집은 나름 거실과 베란다가 있어 마음에 들었다. 지난 두 달간 본 매물 중 최상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최신식으로, 그만큼 방은 작았고 수납공간조차 놓을 수 없었다.

오늘은 기필코 계약을 하고 만다는 각오로 임했던 터라 나는 첫 번째 집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남자친구만 괜찮다면 그 집으로 당장 계약을 할 참이었다. 여름의 더위가 더해질수록 매물 역시 가물어갔고, 저 정도 집 역시 다시 만나기 어려울 터였다.

우리는 증산역 근처 카페에 앉았다. 뭔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 남자친구의 갈등과 고민에 휩싸인 분위기가 감지됐다. 일단 시간이 좀 필요할 거 같았다.

여친의 비법 공개 … “어르고 달래고 협박해”

어떤 거 같아요?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요?”
두 번째 집은 거실이랑 베란다도 없고. 그나마 첫 번째 집이 괜찮은데.”

남자친구는 섣불리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안다. 거실이 작아도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벽면 4곳 중 2곳이 베란다와 주방으로 뚫려 있고, 한쪽 벽엔 화장실과 다용도실 문이 달려 있어 거실로 꾸미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아니~ 거실이 너무 작아요. 문 때문에 공간 활용도 못하잖아요.”
그렇긴 한데, 이 가격에 저 정도 크기, 저 위치면 최상이에요. 그나마 저기가 5층격이라 우리 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 같은데.”
그건 아는데. 그래도 거실이 너무 작아서 결정을 못하겠어요.”

안다. 무슨 말인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 공간이기에 거실에 집착하는 거. 하지만 전세 9천 빌라에 거실다운 거실을 얻기란 쉽지가 않다. 경기도로 나가든, 마을버스를 타고 구석으로 들어가든 해야 한다.

그 집에 짐이 많아 더 작아 보이는 거예요. 깨끗하게 꾸미면 잘 활용할 수 있어요.”
그래도 거기 문 때문에.”

사실 내가 강력하게 밀어붙였다면 우리는 이미 두 달 전에 집을 구할 수 있었을 거다. 헌데 남자친구의 의견을 존중해 미뤄왔다. 하지만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다. 지금은 어르고 달래기 신공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종이와 볼펜을 꺼내 그림까지 그리며 설득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나 너무 고민돼요. 결정을 못하겠어요.”
다용도실 문 막아줄게요. 세탁기야 뭐, 안방 베란다로 빼던지 할게요.”
그래도.”
블라인드로 이렇게 막고, 여기에 텔레비전을 놓으면 거실처럼 꾸밀 수 있어요.”
. 모르겠어요. 오늘 결정하지 말고 다다음주에 다시 나와 보자고 하면 화낼 거예요?”

. 나는 속으로 당연한 소리!!!’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러다 결혼식 올리고 각자 집으로 가게 생겼어요. 아직까지 이러면 어떡해요. 더군다나 지금까지 봐 온 집 중에선 최상인데. 포기할 건 포기해야죠.”
그건 아는데포기가 안 돼요. 거실이.”

이 양반이 장난하나.

매물이 없잖아요. 그나마 있던 것도 다 나가고. 자기가 무슨 말하는지 알겠는데. 그래요. 오늘 결정 안 해도 돼요. 존중해요. 헌데 2주 뒤에 나왔는데 매물이 없거나 또 결정 못하면, 내 손에 죽는 수가 있어!!!”
!!!!!!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부동산 딱 한 곳만 더 보고 결정하면 안돼요?”
…… 그렇게 해요.”

우리는 결국 또 다른 부동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몇 걸음 뗐을 때 그는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비장하게 말했다. “부동산에 전화할게요. 계약하겠다고.” 그리곤 전화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아 달란다. 이 처절한 고뇌와 결단의 순간을 기록하겠단다. 참 별걸 다 한다 싶었지만 나는 길 한복판에서 핸드폰을 들었다.

우리는 결국 아담한 빌라 5(실제는 4층이라고 꼭 말하고 싶다. 너무 겁먹지 말고 놀러들 오시라.^^) 투룸을 계약했다. 신혼집 구하기 프로젝트 3개월만의 쾌거였다. 남자친구가 큰 결단을 내려줘 이쯤에서 집을 얻을 수 있었음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시원한 생맥주 한잔으로 조촐한 축하파티를 하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큰 숙제를 해결한 듯한 상쾌함에 두 다리 쭉~ 펴고 침대에 누웠다. 그때 띵똥카톡이 왔다.

OO은 큰 거실을 보장하라! OO은 작은 방에 침대를 구겨 넣고, 안방을 거실로 만들어 달라!”

! 일단 여기서 수습해야 단 몇 분이라도 빨리 잠을 청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해 침대를 작은방에 넣어보겠음.”
구겨 넣어라! 구겨 넣어라!”

결국 작은방을 침실로, 안방을 거실 겸 서재로 만들어 줄 것을 약조하고 나서야 나는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허나, 슬프게도 우리 작은방은 싱글 침대 하나 들어가기 버거운 크기다. 이 남자가 그걸 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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