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아프지 말고 크렴.


얼마 전, 아이가 아팠다. 그날 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를 재웠다. 늦은 밤 아이가 잠자는 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들어갔다. 잠시 후 "체온계 좀 가져와요"라는 아내의 다급한 말이 들렸다. 아이의 체온을 쟀다.

39. 아이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고열은 아이에게 가장 위험한 신체의 변화다. 하지만 많은 육아 선배들은 웬만한 고열로는 병원에 가지 말라고 했다. 집에서 해열제로 열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도, 해열제 처방을 받는다고 했다. 오히려 피를 뽑다가 아이가 더 힘들어한다고도 했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아이가 아파도 침착하게 집에서 해결하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고열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그날 밤 아이는 그날 먹은 것을 모두 게워냈다. 그 조그마한 입에서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토사물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아이도 놀랐는지 울고 또 울었다. 토사물이 묻은 이불과 아이의 옷을 치웠다. 아이는 새벽에만 몇 번을 더 토했다. 아이의 이마에 쿨시트를 붙이고 억지로 해열제를 먹였다.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당장 택시를 타고 병원 응급실에 갈 생각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다행히 아이의 열은 조금 떨어졌다. 대신 콧물이 아이의 코를 가득 메웠다. 숨쉬기 어려워서인지, 새벽 내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끙끙댔다. 우리 부부 역시 잠을 설쳤다. 조그마한 소리에도 우리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나마 열이 조금 내린 것에 안도했다.

방심은 금물이다. 해열제 덕에 떨어지던 열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보채는 아이를 안으니 온몸이 다시 불덩이가 됐다. 아이는 다시 토하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히고 이불을 갈았다. 새 이불에다 아이는 또 토했다.

새벽 어스름, 우리 부부는 선택해야 했다. 응급실에 갈지 아니면 좀 더 지켜볼지. 나는 응급실에 가자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해열제를 다시 먹이고 아이를 안았다. 징징거리는 아이를 안고 집 구석구석으로 발길을 옮겼다.

곧 아침이 밝았다. 아이는 새벽보다는 나아 보였다. 퉁퉁 부은 붉은 얼굴로 웃기도 했다. ‘이 순둥아, 이 와중에 웃음이 나오니?’ 우리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소아청소년과 병원이 집 근처에 있었다. 회사에는 "아이가 아파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의 열은 더 오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아이의 증상이 수족구와 장염 초기 증상일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는 감기 증상만 보였다. 약을 먹였더니 열은 많이 떨어졌다. 미열이 있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콧물이었다. 코를 막은 콧물에 아이는 분유도 먹지 못했다. 이른바 뻥코로 코를 뚫어줘도 그 순간뿐이었다. 아이와 우리 부부 모두 뜬눈으로 밤을 보낸 것 같았다. 아이는 아픈 지 열흘 정도 됐을 때야 비로소 제법 괜찮아졌다.

누군가는 그랬다.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몇 번 가봐야 아이를 키우는 거"라고. 최근에 만난 한 육아 선배는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내면, 아이는 몇 달 동안 계속 아프다"고 했다. 또 다른 육아 선배는 아이가 수족구와 같은 전염병에 여러 차례 걸려 꽤나 고생했다고 털어놓았다.

지금까지 아이는 잘 자라줬다. 이번에 아픈 거 말고는 지금까지 크게 아픈 적이 없었다. 그렇게 건강했던 아이가 아프니, 안타까웠고 어떨 때는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더 많이 더 자주 아플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아이를 등에 업고 응급실에 뛰어갈 날도 꽤 많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어느새 훌쩍 커 있을 것이다. 장석주 시인의 저 유명한 시 <대추 한 알>처럼 아이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아이가 돼 있을 것이다.


대추 한 알 -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 장석주 시인의 시집 <붉디 붉은 호랑이>(애지, 200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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