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너와 많은 추억을 쌓고 싶구나. (c) 정기훈

아이와 함께하는 첫 번째 여름을 보내고 있다. 지난 겨울 아이가 태어난 뒤, 여름을 기다렸다.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을 테니. 이미 몇 번의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을 조심스럽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생고생’ 언젠가 나 또는 아내는 공항에서 이런 말을 남기고 어딘가로 떠날지도 모른다. 

이제 내가 나에게 안식년을 줍니다 
여보, 일 년만 나를 찾지 말아주세요

- 문정희 시인의 시 '공항에서 쓸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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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의 일이다. 더위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아이 있는 집은 다 그렇듯, 에어컨은 쉴 틈이 없다. 특히, 아이가 잠든 뒤 더위에 깰까봐 밤새 에어컨을 틀어야 했다.

예정된 여름휴가는 8월 중순. 그때까지 아이와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그때 휴가를 잘 다녀오기 위해서라도, 7월에 미리 예행연습을 해야 했다. 지난 5월 황금연휴 때 아이와 함께 가평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지옥 같은 편도 6시간의 꽉 막힌 도로에서 우리는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래도 그때는 아주 덥지 않았다. 여름 여행은 큰 각오가 필요하다는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다행히 예행연습 기회가 찾아왔다. 7월 중순 친하게 지내는 선배들과 캠핑을 가기로 했다. 우리들은 처녀, 총각이었던 몇 년 전 강원도 망상 해변의 1박 2일 캠핑을 종종 얘기하곤 한다. 이제 다들 결혼했고,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서로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탓에, 일요일 오후 반나절 캠핑을 즐기기로 했다. 장소는 서울 상암동 노을공원.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그것도 잔디밭이 펼쳐지고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캠핑장이다. 캠핑 마니아인 한 선배가 어렵사리 예약을 했다.

캠핑 전날, 설렜다. ‘재밌게 놀다 오자!’ 하지만 당일 오전부터 정신이 없었다. 아이 짐을 싸느라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아이 짐만 한 보따리다. 9kg가 넘는 아이를 하루 종일 안고 있을 수 없으니, 유모차를 가져가야 한다.

아이가 먹을 분유와 이유식도 챙기고, 기저귀와 물티슈를 빠뜨릴 수 없다. 여벌의 옷과 장난감도 가방에 털어 넣었다. 지인들과 함께 먹을 간식거리까지 챙기니, 가방이 빵빵하다. 여기에 캠핑용 릴렉스 체어까지. 집 밖을 나서자 벌써 땀이 흐른다. 짐 때문에 택시 타기도 어려운 상황. 다행히 한 선배의 도움으로 무사히 노을공원에 닿을 수 있었다.

노을공원에 내리자, 푸른 잔디밭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즐거움은 오래 가지 못했다. 타프(그늘막)도 텐트도 더위를 완벽히 물리치지는 못했다. 결국 아이는 보채기 시작했다. 아이를 안고 있는데, 아이도 나도 땀범벅이다. 아이 몸에는 열꽃이 퍼졌다. 부모 마음은 어지럽다. ‘이 더위에 캠핑하는 게 잘하는 짓인지...’ 그래도 여기서 돌아갈 수 없다.

아이는 혼자 앉을 수 있다. 나도 맥주 마시고, 대화에 낄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아이는 바닥에 꽝 헤딩했다. 캠핑장이 떠나가라 운다. 결국 아이에게 온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캠핑인지 육아의 연장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늦은 밤 땀에 전 몸으로 잠든 아이를 안고 공원을 내려오면서 여름 여행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생고생이다.’

하지만 이튿날 아이를 보니, ‘여행 많이 다니자’고 다짐하게 된다. 그 후 8월 중순 우리 부부는 장모님을 모시고 경북 영덕으로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아이는 차 안에서 계속 칭얼거렸다. 아이에게 차 여행은 무리인가 보다. 생각보다 일찍 집으로 향했다. 아마 다음 여행 때는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엄마아빠 여행 다녀올 테니, 할머니 말 잘 들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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