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넓은 집에서 '개구리 점퍼루'를 타렴.

지난 주말 집을 구했다. 집주인과 마주 앉아 전세계약서를 쓰기 직전까지 조마조마 마음을 졸일 만큼, 끝까지 다사다난했다. 가까스로 전세 계약을 했다. 이 과정을 두 편으로 나눠 쓴다. 시간이 지나면 웃으면서 오늘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니다. 아마 그땐 다시 전셋집을 구하느라 정신없겠지.

달력을 넘기다 손이 찢어졌어요

어머니가 웃으시며 붕대로 감싸주셨어요

얘야 시간은 날카롭단다

- 조인선 시인의 시 '인터넷 정육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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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퇴근 시간이 가까웠을 때 한 공인중개사가 연락을 해왔다. 오랜만에 괜찮은 전셋집이 나왔다고 했다. 다소 오래된 빌라지만, 3개의 넓은 집이란다. 전셋값도 방 2개짜리 작은 신축 빌라보다 쌌다. 공인중개사는 전세물건이 뜨자마자 내게 연락했다면서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칼퇴가 가능했다. 아내에게 연락해 내 퇴근 시간에 맞춰 집을 보러가기로 했다. 공인중개사와 함께 그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이곳에 사는 세입자가 귀찮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두 팀이 집을 보고 갔고, 우리 다음에 또 한 팀이 온다고 했다. 2년 전 신혼집을 구할 때 괜찮은 전셋집을 간발의 차이로 놓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집을 둘러봤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좁았던 탓일까. 집이 꽤 넓어보였다. 부엌과 화장실이 좁았지만, 거실이 잘 빠졌다. 거실 창문을 열자 바로 옆 빌라가 맞닿아있었다. 일조량과 조망권은 포기해야 했다. 예전 같았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또 언제 이만한 전셋집이 나오랴.

난 우리 부부가 마련할 수 있는 돈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완벽한 빌라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아내와 함께 부엌 쪽 베란다를 살펴보다가, 아내에게 나직이 일렀다. “집 괜찮은 것 같아요. 계약 합시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부부의 결정 장애가 결정적인 순간에 사라졌다.

세입자에게 습기가 차는지, 누수가 있는지, 집주인은 어떤지 등을 꼼꼼하게 캐물었다. 큰 문제는 없었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저희는 9월 중순에 이사해야 하는데, 괜찮으신가요?” 그가 답했다.

안돼요. 9월 초순에 이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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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천이 좋아 북가좌동에 신혼집을 차렸지만, 불광천에 가까운 집은 너무 비싸다.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았다. 집에서 나온 후 공인중개사에게 계약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당장 가계약금을 걸 수 없었다. 먼저 9월 초순에 이 세입자에게 줄 전세금을 마련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전세자금대출을 최대한도로 빌린다 해도, 나머지 수천만 원은 어디서 빌릴 수 있을까. 쉬 답이 나오지 않았다.

현재 살고 있는 집 주인에게 연락해 전세금을 9월 초순에 미리 빼달라는 부탁을 해보려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조급해졌다. 30분만 지체해도 누군가가 이 집을 계약할 것 같았다.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 아내가 공인중개사무소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왔다. 아내가 말했다.

아빠가 해주시겠대요.”

안도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공인중개사무소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장인어른,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세입자 쪽에 연락해 계약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가계약금 100만 원을 넣었다. 9월 초순 전세자금대출과 장인어른께 빌릴 돈으로 전세금을 내고, 9월 중순 현재 살고 있는 집 주인으로부터 돌려받을 전세금으로 장인어른께 돈을 갚기로 했다.

뒷날 들은 얘기지만, 우리가 그때 가계약금을 넣지 않았다면 계약할 수 없었다. 이미 우리 앞에 이 집을 본 한 사람이 맘에 들어 했고, 남편의 늦은 퇴근시간에 맞춰 함께 다시 집을 보기로 했단다. 그나마 칼퇴를 할 수 있었던 우리 부부가 먼저 전셋집을 찜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그분들은 우리 때문에 계약을 놓친 셈이다.

참 안타까웠다. 우리나 그분들이나. 그리고 전세난민 모두.

이튿날 오전 은행에서 전세자금대출 상담을 받은 뒤, 그날 저녁 전세계약을 하기로 했다. 그땐 몰랐다. 전세 계약 직전, 집주인이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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