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까지는 정말 좋았는데...

오늘은 바람이 좀 불었지만, 햇볕이 따사로웠다. 미세먼지가 심각한 날인 줄도 모르고, 아내에게 불광천을 걷자고 졸랐다. 마음은 이미 태어난 지 100일 된 아이를 자전거 뒤 유아용 트레일러에 태우고 한강으로 향한 지 오래다.

그제 회사 선배에게 받은 유모차를 닦고 시트를 빨았다. 그날 아이를 데리고 불광천에 다녀왔다. 아빠와 아들의 첫 데이트는 순조로웠다. 그때의 자신감 때문인지 나들이에 조심스러운 아내에겐 걱정 말라고 다독였다. 아이 엄마가 가방에 기저귀, 젖병, 분유, 따뜻한 물을 넣는 동안, 철없는 아빠인 난 사진기를 챙겼다. 집 밖으로 나와 물티슈를 챙기지 않았음을 깨달았지만, 무슨 대수랴.

불광천으로 향하는 길, 바람이 생각보다 거셌다. 아내의 걱정은 컸지만, 난 유모차를 거침없이 앞으로 밀었다.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조용히 세상 구경을 했다. 우리 부부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30분가량 걷다보니 배가 고파왔고, ‘피자가게가 보였다. ‘기저귀를 갈아야할 때는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있었지만, 구석이나 화장실에서 갈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가족은 가게의 구석진 곳에 앉았다. 유모차를 테이블 옆에 두고 아이를 살폈다. 좀 칭얼대자 기저귀를 봤더니 젖어있었다.

아내는 다른 사람이 보지 않도록 아이의 기저귀를 빠른 속도로 갈았다. 아이는 싱글벙글 웃었다. 난 아내에게 아이를 가리키며 효자가 났어요. 외식하러 나왔는데 엄마 아빠 밥 잘 먹으라고 조용히 앉아 있네요라고 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면, 우리 부부가 고상하게 피자를 먹을 시간이 확보될 것 같았다. 아내가 분유를 먹이는 사이, 피자가 도착했다. 피자를 잘라 아내에게 먹였다. 참 행복한 모습이 아닌가. 아이의 트림을 위해 내가 아이를 안았다. 옆 테이블 사람들의 시선은 아이에게 향했다. “아이고 귀여워, 안고 싶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아이를 더 높이 치켜들었다.

그 순간, 냄새가 났다. ‘, 아니야, 잘못 맡은 거겠지. 피자나 먹자.’ 아이를 다시 유모차에 내려놓았다. 아이에게 웃음을 보여주고는 포크로 피자를 찍어 입에 넣었다. 그 순간, 아내의 외마디 비명. “, 쌌네!” 하얀 바지 엉덩이 쪽에 황금빛, 아니 누런 얼룩이 졌다. 우리 부부는 멘붕에 빠졌다. 먼저 각자의 접시에 담긴 피자 한 조각을 한 입에 먹어치웠다.

아내에게 집에 얼른 들어가서 해결하자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의 엉덩이가 짓무른다며 이곳에서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한테 물티슈가 없었다. 점원에게 손 닦는 데 쓰는 물티슈 여러 장을 부탁해 받았다. 아내는 화장실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화장실에서는 다행히 기저귀 교환대가 있었다.

아내는 아이를 눕히고 바지를 내렸다. 아내는 경악했다. 뒤에 그 상황을 대참사로 표현했다. 기저귀가 감당 못할 정도였으니, 바지까지 흘러내린 것이다. 작은 물티슈 몇 장으로 아이 엉덩이를 닦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화장실 휴지로는 어림없었다. 그렇다고 세면대에서 아이의 엉덩이를 닦을 순 없었다. 결국 아내는 결단을 내렸다. 손에 물을 묻힌 뒤, 아이의 엉덩이를 닦은 것이다.

그 순간, 화장실에 사람들이 들어왔다. 당황한 아내는 아이의 기저귀를 채우고 똥 묻은 손을 급하게 물티슈로 닦고 물로 씻었다. 야속하게도 사람들은 아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몇 개월이나 됐어요?”, “애기야, 엄마 손 씻으니 조금만 기다려아내는 아이가 다리를 들어 누런 얼룩의 바지가 보일까봐 전전긍긍했다. 아내는 건성으로 답하며, 천기저귀로 아이를 감싼 후 화장실 밖으로 튀어나왔다.

우리 부부는 도망치듯 가게를 나왔다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 같아 미안했다. 서둘러 집으로 왔다. 그제야 숨을 돌렸다. 아내가 욕실에 따뜻한 물을 받는 사이, 난 아이의 바지를 벗겼다. 그 순간 아이는 오줌을 발사했다. 아내는 손에 똥을 묻혔고, 나는 오줌을 맞았다. 잊지 못할 우리 가족의 첫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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