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형네에서 햇볕 받는 아이.

몸무게 4.8kg, 60cm.

태어난 지 한 달,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우리 집을 방문한 간호사가 깜짝 놀랄 정도다. 누굴 닮았는지 허리와 다리가 길어 보인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 "성공했네"라는 말을 듣는다. 눈이 작긴 하지만 가끔 못생겨 보일 때도 있지만, 아이가 아내를 닮는다면 조금씩 잘 생겨질 터다.

아이의 몸무게도 많이 늘었다. 태어날 땐 3.18kg이었다. 아이는 참 많이 먹는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이맘때의 아이들은 2~3시간마다 80가량의 모유나 분유를 먹는단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120도 꿀꺽꿀꺽 잘 삼킨다. 사레들릴까 걱정이다. 우렁찬 트림과 방귀 소리에 우리 부부는 깜짝 놀란다. 어찌나 잘 싸는지 하루에 스무 번 넘게 아이의 기저귀를 간다.

요즘 내 머리 속을 채우고 있는 건 '좋은 아빠 되기'. 우선 책과 방송으로 공부했다. 아내와 아이가 조리원에 있을 때, 굳이 도서관에 가서 육아서를 빌려 읽었고, 아빠의 육아를 다룬 EBS <다큐프라임> '파더 쇼크' 편도 봤다. 일할 때 가끔 아빠들의 육아일기를 검색해 읽어보곤 한다.

당장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방법은 아이와 신체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일 터다. 아직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집에 있을 때면 아이를 내 품에 두려고 하고, 아이가 배고파하면 내가 먼저 젖병을 꺼내든다. 아마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힘들어질 것 같다. 육아 선배들이 한목소리로 "주말에 집에 있는 것보다 회사 나오는 게 더 편하다"라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가끔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영화를 보고 싶고, 자전거를 타고 싶고, 책도 읽고 싶다. 얼마 전 아이를 아내에게 맡겨두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마신 소맥~”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직 아내에게 얘긴 안했지만, 돌아오는 주말 오래된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기로 약속했다.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을 알겠는데, 마음먹는 건 쉽지 않다.

지난 주말 처형네에 갔다. 아내와 이이는 집이 넓고 따뜻한 처형네에서 일주일을 보내기로 했다. 이곳에는 내가 사랑하는 처조카 둘이 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첫째 유라는 나와 노는 걸을 참 좋아한다. 지난 3년간의 프로젝트로 얻은 결실이다. 3년 전, 나와 아내가 처음 손을 맞잡았을 때 아내는 처형네에 얹혀살고 있었다. 아내는 첫 조카 유라를, 유라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모인 아내를 사랑했다.

아내와 처가 식구들의 점수를 따기 위해, 난 유라와 친해지려 부단히 노력했다. 피곤해도 열심히 놀았다. 시나브로 처조카와 이모부의 사이는 가까워졌다. 우리와 처형네는 자주 본다. 유라가 빌라 5층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올라와 우리 집 문을 열고 이모와 반갑게 인사한 뒤, 하는 말은 어김없다.

"삼촌, 아니 이모부! 같이 병원 놀이 하자."

주말 처형네 현관문을 열자 유라는 내 옷을 끌어당기며 "놀자"고 했다. 전날 꼬박 밤을 새운 탓에 피곤했다. 선뜻 "그래 놀자"고 못했다. "조그만 쉬었다 놀자", "우리 밥 먹고 놀자“...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밤이 돼서야 같이 놀았다. 얼마 못 놀고 유라는 침실로 향했다.

늦은 밤 처형으로부터 유라의 기다림을 들었다. 우리 가족이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유라는 나를 기다린다면서 현관문 앞에서 계속 서성였단다. 나와 조금이라도 더 놀기 위해 하기 싫은 숙제도 후딱 해치웠단다. "나는 이모무랑 노는 게 정말 좋다"고 했단다. 가슴이 먹먹했다. 미안했다. 피곤하더라도 더 많이 놀아줄 걸 그랬다.

좋은 이모부가 돼야겠다. 피곤하더라도 조카의 마음을 헤아려야겠다. 그렇게 좋은 이모부가 된다면 어느새 좋은 아빠가 되는 길도 쉬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 2015. 1. 12. 저녁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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