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결혼을 하며 서로의 생리현상을 최대한 숨겼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새어나온 무취 무향의 방귀는 숱하게 많았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암묵적 합의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긴장감은 사그라들었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뿡", "뿡" 새어나왔다.  나는 '생전 방귀 한 번 뀐 적 없는 듯' 남편을 놀려댔고, 그럴때마다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기 바빴다.

하지만 내게도 시련은 닥쳐오고 있었다. 임신 이후 막달에 가까워질수록 괄약근 조절이 안 되는 게 아닌가. 봄이를 낳기 직전엔 아주 대놓고 '뿡, '뿡' 거리며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처음이 어렵지 두번, 세번은 쉬운 법이다. 처음 방귀가 새어나온 날은 새색시의 연지곤지처럼 얼굴이 달아올라 여기저기로 도망다니기 바빴지만, 봄이가 나올 날이 다가올 수록 '뭐가 나왔나?', '나 임산부야'라며 아주 당당히 껴대기 시작했다.

헌데 문제는 출산과 함께 돌아올 거라 생각했던 이 방귀조절기능에 있었다. 회음부 절개로 소대변에만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 괄약근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거라...

그나마 병원에서는 나은 편이었다. 이제 막 회복에 들어가니 방귀에도 힘이 없었다. '피식~' 새어나오는 정도에 향도 그닥 없어 눈치껏 내보내면 괜찮았다. 그리고 곧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조리원에서는 2시간마다 한 번씩 수유을 해야 한다. 이른 아침이면 비몽사몽으로 '수유콜'에 이끌려 수유실로 끌려간다. 입실 초기엔 물 한잔 마실 여유도, 화장실 한 번 들릴 여유도 없이 수유실로 달려가게 된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니 마음이 급해지기 때문이다.

헌데 이게 문제였다. 하루는 수유실 일자 의자에 엄마들 5~6명이 앉아 수유를 하고 있었다. 나 역시 한쪽 귀퉁이에 앉아 봄이에게 수유를 하고 있었다. 헌데 사건은 그때 발생했다.

수유실로 갈때까지만 해도 평온했던 배에 신호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덧 '그분'은 입구까지 마중을 나오셨고 나는 의자에 앉아 최대한 버텼다.

방까지, 아니 복도까지, 아니 수유실 밖까지만이라도 버텨주길 바라며 입구에 최대한 힘을 모아 '그분'을 밀어넣고 또 밀어넣었다. 평소에는 잘도 참고 잘도 뱃속으로 역류하던 '그분'이 출산 이후 입구에서 쉬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분'과 나는 그렇게 대치하며 10여 분을 보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있다가는 큰 사단이 나고야 말 것 같았다. 지금 수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이제 조리원에 입실한 지 이제 막 만 하루가 되는 신입이었다.

사람은 자고로 첫인상이 중요하다. 엄마들 다 모인 수유실에서, 그것도 우리 아기님들 식사하시는 자리에서 실례를 범할 순 없었다.

난 다급하게 "선생님"을 불렀다. 힘겹게 일어섰지만 이미 내 몸은 베베 꼬이고 있었다. 손으로 입구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나름 어렵게 쌓아온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이렇게 쉽게 놓을 수는 없었다.

나는 신생아실 선생님께 봄이를 거의 던지다시피하며 몸을 재빨리 돌려 수유실 문쪽으로 향했다. 헌데 '이제 살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을까. 문고리를 채 잡기도 전에... 아주 시원하게 "붕~~" 소리가 어디선가 흘러나왔다.

'아냐아냐, 이건 아냐. 이건 현실이 아냐. 내가 아니라구' 하지만 모두의 시선은 내게로 향했다. 낯선 눈빛 10개가 나에게 향하고 있었다. '아.. 망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 거야', '

궁지에 몰릴 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나는 회피보다는 정면대결을 선택했다.

"죄송합니다."

얼굴엔 살짝 미소도 곁들였다. 내 얼굴엔 민망함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임신으로 60kg가 넘은 이 몸을 어떻게든 쥐구멍에 구겨넣고 싶었다. 하지만 이 몸을 구겨넣을 쥐구멍은 그곳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 세상은 살만했다. 아이를 출산하면 마음이 유해지고 성격이 둥글둥글해진다고 했던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 몰라도 나는 그 말을 직접 경험했다.

엄마들은 '괜찮다'며 '그 마음 우리가 다 안다'는 듯 내게 미소를 보냈다. 긴장됐던 나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고 나의 속은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조리원 입실 1주일째, 나는 이제 문제없이 괄약근 조절이 가능하다! ㅋ

- 2014. 12. 19 밤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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