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이 걸렸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땀이 흘러 내렸다. 흘러내린 머리는 땀에 떡졌고, 얼굴은 홍당무가 됐다. 1시간 동안 양쪽 가슴을 번갈아 쥐어짜느라 손은 얼얼했다. 혹사당한 가슴은 불덩이가 됐다. 그렇게 1시간 사투 끝에 얻은 건 겨우 20cc의 초유.

오늘 목표는 20cc였다. 간밤엔 마사지해 주는 남편 덕에 30~40분 만에 20cc를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나 홀로는 쉽지 않은 목표치였다.

"딱 10번만 더 짜자", "딱 5번만 더 짜자", "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만 더 짜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1시간만에 겨우 20cc를 채웠다. 정확히 말하면 19cc는 될까. 마나 쥐어짰는지 가슴은 불덩이가 됐고, 더 이상 내 손으로 내 몸을 혹사시킬 수 없었다. 왜냐, 3시간 뒤면 또 유축을 해야하니깐. 그리고 곧 또 '수유콜'이 올테니깐.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나름 의기양양하게 젖병을 들고 수유실로 갔다. 나도 이제는 유축 젖병에 봄이의 이름을 적고 신생아실에 내놓을 수 있게 됐다. 이제 우리 봄이도 엄마 초유를 먹을 수 있다.

사실 조리원에 온 이후 나오지 않는 젖을 빨며 울음을 터트리는 봄이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엔 '모유가 안 나오면 분유를 먹이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의 모유를 쪽쪽~ 빨아먹는 다른 아이들을 보니, 봄이가 불쌍해졌다.

나오지 않는 젖을 한 번이라도 더 빨겠다며 안간힘을 쓰는 봄이와 달리, 나는 너무 쉽게 포기하는 건 아닌지 싶었다. 결심끝에 '통곡의 마사지'라 불리는 가슴 마사지를 받았다. 그것도 연달아 두번이나.

어제는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젖몸살에 마사지몸살까지... 오한이 들고 온몸이 아팠다. 그래도 빈젖을 빠는 봄이를 생각하면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1시간 만에 20cc의 초유를 얻었다.

하지만 의기양양했던 나의 모습은 '급' 작아졌다. 수유실로 들어서는 엄마들은 40cc, 60cc 채운 유축 젖병을 들고 왔고, 어떤 엄마는 젖병 한 통을 가득채워 의기양양하게 들어왔다. 앗!!!!

'그래도 뭐~ 처음인데'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제 갓 태어난 봄이에게 20cc도 결코 적은 양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봄이에게 영광의 결과물을 물렸다.

'엄마가 1시간 동안 고통을 참아가며 쥐어 짠 초유야. 한 방울도 흘리지말고 꿀떡꿀떡 다 먹어~'

인자한 엄마의 눈빛을 채 쏘기도 전에, 이 자식이 내 피같은 20cc를 다 먹어 치워버렸다. 내가 내가... 1시간 동안 피땀흘려 짜낸 초유를... 이 자식이 채 1분도 안돼 다 먹어치워버린 것이다. 젠장할. 썩을 놈!

가슴은 무너져내렸고 배신감에 사지가 떨렸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새어나왔다. 말이라도 통하면 이유라도 묻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노고를 그리 한 순간에 해치울 수 있냐'고, '그게 사람이냐'고, '사람은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향을 음미하고 맛을 느끼며 한 모금 한 모금 예의를 다해 넘겨야 하는 거라'고 말이다.

봄이는 부족한 양을 분유로 채우고 다시 잠이 들었다. 세상 편하게 잠을 잔다. 엄마의 불덩이 같은 가슴 따윈 안중에도 없다.

나.. 또 유축하러 간다.

- 2014. 12. 16 낮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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