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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옥상에서 찍은 빌라들. 우린 어떤 집을 구하게 될까?

미친 척 하고 대출 많이 당겨서, 집 사요.” 아내가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부동산 담당 기자였던 몇 년 전,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을 펴는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전셋집을 구하면서 빚내서 집사는 건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지금 살고 있는 빌라 5층의 작은 신혼집 역시 최대한 빚을 내지 않기 위해 골랐다. 아내도 나도, 착실히 돈 모아서 나중에 번듯한 집으로 이사 가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제는 빚내서 집사자는 생각도 마다 않기로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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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살고 있는 집의 전세 계약 만료는 8월 초다. 집주인이 비싸게 전세를 내놓은 탓에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올 기미가 없었다. 최근 집주인은 집을 팔겠다고 했다. 전세 계약이 끝난 뒤에도 두 달 안에 집을 꼭 팔겠다고 했다. 해석을 하자면, 당장 전세금을 못 준다는 뜻이다. 법은 멀리 있다. 집주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가을이면 전세 매물이 많을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상황은 변했다. 일주일 전 한 남자가 우리 집을 보러 왔다. 맘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8월 중순에 이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는 흘러 넘겼다. 설마 이 집이 나갈까 싶었다. 집 주인은 시세보다 비싸게 내놓았다. 혹시 몰라 부동산 중개업소에 연락을 했다. 집을 보러왔던 사람이 대출 관계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계약이 이뤄진다면, 불과 한 달 보름 안에 이사를 해야 한다.

우리 부부는 부랴부랴 전셋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 북가좌동에는 전셋집 씨가 말랐다. 인근 성산동 쪽의 전셋집을 알아봤지만, 북가좌동보다 비싼 터라 맘에 들지 않았다.

토요일, 아내와 나는 각각 북가좌동과 우이동에서 집중적으로 전셋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우이동은 처형이 사는 곳으로, 아내에겐 2의 친정이다. 아내가 먼저 움직였다. 곧 아내로부터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아내는 신축 빌라 내부를 꼼꼼하게 보여줬다. 후에 아내에게 물었다. “왜 전셋집이 아니라, 신축빌라를 봤어요?” 아내의 대답은 간단했다. “전셋집이 없었으니까요.”

북가좌동에도 우리가 원하는 전셋집이 없었다.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았다. 눈높이를 많이 낮추거나 아니면 많이 높이거나. 반전세나 월세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가 아니라면, 적잖은 부담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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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어딨니?

일요일 아이를 안고 집밖으로 나섰다. 부동산 중개업소가 문을 닫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집에 앉아서 걱정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를 걷다보니, ‘분양사무소라는 펼침막이 눈에 보였다. 신축 빌라였다. 예전 같았으면 지나쳤겠지만, 몇 분을 그 앞에서 서성였다. 결국 펼침막에 나온 번호로 전화를 했고, 곧 신축 빌라 1층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나왔다.

‘OO주택 이사라고 적힌 명함을 건네받았다. 북가좌동에 빌라 여러 곳을 분양한다고 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의 차에 탔다. 한 신축 빌라에 내렸다. 알고 보니,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걸어서 3분 거리였다. 이곳 4층 현관문을 열었을 때, 감탄사를 내지를 뻔했다. 말 그대로 새 집이었다. 남향이었고, 전망도 괜찮았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오라고 했다. 함께 둘러본 아내도 나쁘지 않은 눈치다. 헌데, 아저씨는 알고 보니 집이 나갔다고 했다. 작전인지,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아저씨는 신축 빌라 몇 군데를 더 보여줬다. 어떤 곳은 빛이 잘 안 들어왔고, 어떤 곳은 비쌌지만, 하나 같이 살고 싶을 만큼 깨끗한 새 집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 부부는 오래 살 거라면, 집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전셋집은 없고, 대출 이자는 싸다. 집값도 전셋값과 큰 차이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2년 마다 이 난리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

물론, 우리 부부도 어지간하면 빌라를 사지 말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집값은 떨어지고, 팔려고 할 때 제때 팔리지 않는다는 말. 또한 빚은 싫다. 작은 집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돈을 모아 좋은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우리 부부에게 그걸 허락하지 않으려 한다.

내 손에 우산이 없는 걸 보고 비는 더욱 세차게 퍼부었다. ​ ​​​​

- 김기택 시인의 시 '우산을 잃어버리다' 중에서

이제 장마다. 집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여자 친구의 글입니다. 

집을 구했다. 어른들 말씀에 집구하다 지쳐 결정한다고 하더니 딱 그 짝이다. “도대체 결혼 준비는 하고 있냐?”, “뭐가 그리 천하태평이냐?”는 갖은 채찍질과 잔소리 속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각오로 임한 결과, 드디어 승전보를 울린 것이다.

지난 주말,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매물이 워낙 없어 일단 확인부터 하고 나설 참이었다. 헌데 부동산 5군데 중 우리와 맞는 조건의 매물이 있는 곳은 단 한 곳뿐.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부동산 중개인은 집 두 곳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집은 나름 거실과 베란다가 있어 마음에 들었다. 지난 두 달간 본 매물 중 최상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최신식으로, 그만큼 방은 작았고 수납공간조차 놓을 수 없었다.

오늘은 기필코 계약을 하고 만다는 각오로 임했던 터라 나는 첫 번째 집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남자친구만 괜찮다면 그 집으로 당장 계약을 할 참이었다. 여름의 더위가 더해질수록 매물 역시 가물어갔고, 저 정도 집 역시 다시 만나기 어려울 터였다.

우리는 증산역 근처 카페에 앉았다. 뭔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 남자친구의 갈등과 고민에 휩싸인 분위기가 감지됐다. 일단 시간이 좀 필요할 거 같았다.

여친의 비법 공개 … “어르고 달래고 협박해”

어떤 거 같아요?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요?”
두 번째 집은 거실이랑 베란다도 없고. 그나마 첫 번째 집이 괜찮은데.”

남자친구는 섣불리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안다. 거실이 작아도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벽면 4곳 중 2곳이 베란다와 주방으로 뚫려 있고, 한쪽 벽엔 화장실과 다용도실 문이 달려 있어 거실로 꾸미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아니~ 거실이 너무 작아요. 문 때문에 공간 활용도 못하잖아요.”
그렇긴 한데, 이 가격에 저 정도 크기, 저 위치면 최상이에요. 그나마 저기가 5층격이라 우리 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 같은데.”
그건 아는데. 그래도 거실이 너무 작아서 결정을 못하겠어요.”

안다. 무슨 말인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 공간이기에 거실에 집착하는 거. 하지만 전세 9천 빌라에 거실다운 거실을 얻기란 쉽지가 않다. 경기도로 나가든, 마을버스를 타고 구석으로 들어가든 해야 한다.

그 집에 짐이 많아 더 작아 보이는 거예요. 깨끗하게 꾸미면 잘 활용할 수 있어요.”
그래도 거기 문 때문에.”

사실 내가 강력하게 밀어붙였다면 우리는 이미 두 달 전에 집을 구할 수 있었을 거다. 헌데 남자친구의 의견을 존중해 미뤄왔다. 하지만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다. 지금은 어르고 달래기 신공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종이와 볼펜을 꺼내 그림까지 그리며 설득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나 너무 고민돼요. 결정을 못하겠어요.”
다용도실 문 막아줄게요. 세탁기야 뭐, 안방 베란다로 빼던지 할게요.”
그래도.”
블라인드로 이렇게 막고, 여기에 텔레비전을 놓으면 거실처럼 꾸밀 수 있어요.”
. 모르겠어요. 오늘 결정하지 말고 다다음주에 다시 나와 보자고 하면 화낼 거예요?”

. 나는 속으로 당연한 소리!!!’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러다 결혼식 올리고 각자 집으로 가게 생겼어요. 아직까지 이러면 어떡해요. 더군다나 지금까지 봐 온 집 중에선 최상인데. 포기할 건 포기해야죠.”
그건 아는데포기가 안 돼요. 거실이.”

이 양반이 장난하나.

매물이 없잖아요. 그나마 있던 것도 다 나가고. 자기가 무슨 말하는지 알겠는데. 그래요. 오늘 결정 안 해도 돼요. 존중해요. 헌데 2주 뒤에 나왔는데 매물이 없거나 또 결정 못하면, 내 손에 죽는 수가 있어!!!”
!!!!!!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부동산 딱 한 곳만 더 보고 결정하면 안돼요?”
…… 그렇게 해요.”

우리는 결국 또 다른 부동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몇 걸음 뗐을 때 그는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비장하게 말했다. “부동산에 전화할게요. 계약하겠다고.” 그리곤 전화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아 달란다. 이 처절한 고뇌와 결단의 순간을 기록하겠단다. 참 별걸 다 한다 싶었지만 나는 길 한복판에서 핸드폰을 들었다.

우리는 결국 아담한 빌라 5(실제는 4층이라고 꼭 말하고 싶다. 너무 겁먹지 말고 놀러들 오시라.^^) 투룸을 계약했다. 신혼집 구하기 프로젝트 3개월만의 쾌거였다. 남자친구가 큰 결단을 내려줘 이쯤에서 집을 얻을 수 있었음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시원한 생맥주 한잔으로 조촐한 축하파티를 하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큰 숙제를 해결한 듯한 상쾌함에 두 다리 쭉~ 펴고 침대에 누웠다. 그때 띵똥카톡이 왔다.

OO은 큰 거실을 보장하라! OO은 작은 방에 침대를 구겨 넣고, 안방을 거실로 만들어 달라!”

! 일단 여기서 수습해야 단 몇 분이라도 빨리 잠을 청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해 침대를 작은방에 넣어보겠음.”
구겨 넣어라! 구겨 넣어라!”

결국 작은방을 침실로, 안방을 거실 겸 서재로 만들어 줄 것을 약조하고 나서야 나는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허나, 슬프게도 우리 작은방은 싱글 침대 하나 들어가기 버거운 크기다. 이 남자가 그걸 아는지 모르겠다.

블로그 연재에 많은 분들이 응원을 보내주셨다. 한 선배는 전화로 조언을 해주셨고, 집 보러 다니는 후배는 괜찮은 집을 봤다며 중개업소 연락처를 건네줬다. 너무 고맙다. 며칠 전에는 싱가포르에서 연락이 왔다. 그곳에서 태권도 사범을 하고 있는 친구가 카톡을 남긴 것이다.

"한국은 집구하기가 정말 어려운가보네. 싱가포르에서는 집값의 20%만 있으면 집 살 수 있거든. 이마저도 당장 내야하는 돈은 전체 집값의 2% 정도야."

내 눈을 의심했다. 1억 원짜리 집을 구한다고 하면, 200만 원만 있으면 되는 거네. 당장 스마트폰에서 친구의 전화번호를 불러냈다. 통화버튼을 누르기 직전, , 싱가포르의 집부터 살펴보자. 갑작스럽게 기자 정신이 발동됐다.

싱가포르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전 국민의 내 집 마련'에 다가간 나라다. 국민의 92.3%가 내 집에서 산다. 다른 나라들도 똑같은 목표를 내걸지만, 결국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 꼴로 끝난다. 우리나라 국민 중 내 집에 사는 사람은 53.8%. 이마저도 매년 낮아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집값 폭등기에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은 지금 '하우스 푸어'가 됐다. 그리고 가계부채 1000조 원 시대가 열렸다.

미국은 어떤가.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집권 2기가 시작된 2005, 내 집 마련을 강조하는 '소유주 사회(Ownership society)'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 결과는? 서브프라임모지기 사태에 이은 글로벌 금융위기다. 어려운 얘기는 여기서 그만. 후배 홍모씨는 이쯤에서 스크롤을 주~욱 내릴지도 모른다.

이제 통화버튼을 누를 차례다. 재작년 싱가포르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친구는 아파트의 룸 하나를 빌려 살았다. 남자 3명이 눕기엔 다소 갑갑할 정도였다. 싱가포르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최근 연락을 못했던 친구였다. 곧 목소리가 들렸다. 안부부터 물었다. "잘 지내고 있지? 너 아직도 거기 살고 있는 거야?" 친구는 콘도로 이사 갔다고 했다.

- 콘도로 이사 갔다니, 무슨 말이야?

". 한국으로 치면 고급아파트라고 보면 돼. 아파트에 수영장이랑 헬스장 같은 게 있거든. 주로 서양 사람들이 살아. 월 임대료가 200만 원이야. 나 여자 친구랑 같이 산다. 곧 결혼해야지. 나랑 여자 친구랑 합쳐서 한 달에 700만 원 벌거든. 마음먹고 여기로 이사 왔어."

- 너도 곧 결혼하는구나. 근데 넌 여유로워 보이는데, 난 왜 이러냐. (웃음) 그나저나 집값의 20%, 아니 2%만 있으면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다니, 무슨 말이야?

"상가포르 국민 대부분이 HDB(주택개발청) 아파트에 살거든. 너 놀러왔을 때 살았던 데가 거기야. 결혼을 했거나 35살 넘으면, 주택 청약 할 수 있어. 집 살 돈의 20%만 있으면 돼. 1억 원짜리 아파트면 납입금으로 2000만 원만 있으면 된다는 소리지."

재작년 싱가포르 여행갔을 때 찍은 HDB 아파트.

HDB 아파트는 우리나라로 치면 주공아파트(LH아파트). 싱가포르 인구(380만 명)83%320만 명이 HDB 아파트에 산다. 우리나라도 민간아파트보다 싼 주공아파트가 많아 쉽게 들어갈 수 있다면, 집값 부담은 많이 떨어질 게다. 다시 친구의 목소리가 귓속에 들어왔다. "20%도 당장 필요한 돈이 아니야. 대부분 CPF로 낼 수 있어."

CPF는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비슷하다. 매달 월급의 20%를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 여기에 고용주가 월급의 16%를 적립한다. 결국 내 월급의 36%에 해당하는 금액이 매월 적립된다. 이 돈으로 납입금(전체 집값의 20%)18%까지 낼 수 있다. 결국 집값의 2%에 해당하는 현금만 있으면 집을 구할 수 있는 셈이다.

- 당장 2%만 낸다고 해도, 80%가 빚인 거잖아.

"그렇긴 하지. 그런데, 엄청 싸.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연 이자가 1.3%." 

- 이자가 싸도, 집값이 비쌀 텐데 그 돈 언제 다 갚아?

"HDB 아파트는 서울과 비슷하거나 조금 싼 것 같아. 3(전용면적 65, 24)짜리 HDB아파트 싼 데는 1~2억 원 하는 것 같아. 물론, 비싼 데는 비싸지. 싱가포르도 최근 집값이 많이 올랐거든. 중산층이 사는 지역에 있는 룸 5(전용면적 110, 42)짜리는 5~6억 원은 하더라."

2012년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은 5만 달러로, 우리나라(24000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친구는 싱가포르에서 한국에서 받는 돈의 2배를 벌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여유 있게 살고 있는 친구는 서울에 있었다면 고단하게 살았을 터다. 왜 이렇게 서울 살이는 고달플까. 신혼집을 구하면서 마음도 많이 다쳤다. 그렇다고 싱가포르에 갈 수 없는 노릇. 언젠가 여자 친구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났다.

"서울에서 아등바등 살지 말고 지방으로 가는 거 어때요? 지방 신문사도 있잖아요. 포항도 좋고."


금요일 오전 여자 친구가 내게 사진을 보냈다.

"연신내에 괜찮은 집이 올라왔어요. 1, 거실 1개예요. 전세 7000만 원에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아요."

"깔끔한 집이네요. 근데 전철역에서 꽤 멀어요."

"그래도 우리 한번 가 봐요."

"바로 연락해볼게요."

전화를 하니 젊은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오늘 저녁엔 술 약속이 있었다. 그래서 "내일 집을 보러갈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밤늦게 와달란다. 어색한 대화를 끊으려고 하자, 질문이 날아들었다. "신혼부부세요?" ", . 8월에 결혼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신혼부부가 살기 좋은 집이예요." 기분이 좋아졌다. 주말 아침 햇볕을 받으며 아내와 한 침대에서 일어나는 상상을 했다.

토요일 저녁 여자 친구의 손을 잡고 연신내역에 내렸다. 이곳이 인생 2막을 펼칠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곧 진정하고, 주변을 살폈다. 생각보다 큰 번화가였다. 변두리라는 선입견이 깨졌다. 여자 친구에게 말했다. "주말에 슬리퍼 신고 여기로 와서, 영화 보고 맥주도 한 잔하면 좋겠네요." 우리 둘 모두 조금 앞서간 상상에 얼굴에서 흐뭇함을 지울 수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부산에서 서울로 온 후, 쭉 한 지역에서만 살았다. 이제 내가 살 곳을 정할 때가 다가왔다.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사회의 높은 벽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좋아해 한강과 가까운 곳에 살고 싶었다. 주말에 아내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각형이라는 '스트라이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꿈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은평구에서 한강은 멀다. 지금 살고 있는 안양 석수동처럼 40여 분 안양천을 따라 달리면 한강에 닿아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한강에서 연신내 쪽으로 향하는 불광천은 응암역 부근에서 도로 밑으로 숨는다(물론 물길은 반대로 흐른다). 언젠가 여자 친구가 "전철타고 한강 가서 자전거 타면 되잖아요?"라고 물었다. 난 "스트라이다에 먼지가 쌓일 확률이 100%예요"라고 답했다.

이날 보러 갈 집은 연신내역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 다시 골목길을 10분 더 걸어야했다. 골목길로 들어선 순간, 낡은 슈퍼마켓과 오르막길이 우릴 맞이했다. . "괜찮아요"라는 여자 친구의 손을 꼭 잡고 터벅터벅 걸었다. 낡은 주택가의 밤은 어두웠다. 밤길을 무서워하는 여자 친구가 매일 이 길로 퇴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미안함이 밀려왔다.

텔레비전과 세탁기

곧 목표지점에 닿았다. 비교적 깨끗한 빌라였다. 빌라 주변에는 가게 몇 개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 나와 여자 친구는 작전을 짰다. 집이 맘에 들면 텔레비전을, 맘에 안 들면 세탁기를 언급하기로. 곧 남자가 문을 열어줬다.

벽지를 새로 발라 깔끔한 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여자 친구는 깨끗한 싱크대에 맘을 빼앗긴 듯 싱크대를 칭찬했다. 그런데, 집이 좁아보였다. 실평수는 33(10) 남짓인 것 같았다. 장을 들이기 어려울 정도였다. 옷을 베란다에 놓는다고 했다. "세탁기는 어디에 두세요?"고 물었다. 하지만 여자 친구는 "텔레비전이 크네요"라고 얘기했다. 아뿔싸!

여자 친구는 집을 구석구석을 살폈다. 남자가 말했다. "합정동 쪽으로 이사 가려고 집을 내놓았어요. 여기서 돈을 모았거든요." 내 머릿속에는 2년 뒤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집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쉽게 집을 구하게 될 줄이야!

20분 동안 집을 둘러본 후 나서려는 채비를 하던 찰라, 그 남자가 말했다. "사실 가계약중이예요. 한 분이 어제 오셔서 집을 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계약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바로 집주인한테 30만 원을 입금한 모양이에요." . 눈앞이 캄캄했다. 어제 한참 술을 마시고 있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터벅터벅 골목길을 내려오면서 '가계약이 불발되면 꼭 연락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넣었다.

하지만 끝내 답은 오지 않았다.

[신혼집 구하기 프로젝트]4~5일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입니다.


언젠가 여자 친구가 말했다.

"곧 결혼하는 내 친구 민영이가 혼인신고를 포기할까 고민 중이래요. 사정이 어려워서, 국민임대아파트에 기대를 걸고 있나 봐요. 그나마 신혼부부 우선공급이 있으니까, 나중에 혹시라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더라고요. 그런데 신혼부부 우선공급 1순위가 혼인기간이 3년 이내잖아요. 그래서 1순위를 유지하려면 당장 혼인신고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여자 친구는 울컥했다. 집을 구하기 위해 혼인신고도 늦춰야 한다니, 말문이 막히는 게 당연한 일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1순위를 유지한다고 해도, 임대아파트에 들어가는 것은 '헛된 희망'에 가깝다는 것이다. 임대아파트를 놓고 1순위끼리 경쟁할 경우, 해당지역 거주자이거나 자녀수가 많은 쪽이 당첨된다. 한 아이만 낳을 계획에 그나마도 당장 낳지 않을 거라면, 일찌감치 당첨을 포기하는 게 낫다.

신혼부부 우선공급에서 탈락하면 일반공급에서 기회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일반적인 신혼부부가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확률은 '0'이다. 일반공급은 20세 미만의 자녀가 3명 있어야 우선공급 대상이 된다. 그래도 남은 주택이 있다면, '세대주 나이 50세 이상'이나 '65세 이상 직계존속 1년 이상 부양' 등으로 높은 가점을 얻은 사람에게 배정된다. 30대 초반의 신혼부부에게는 20년가량 뒤의 일이다.

최근 민영씨는 임대아파트에 대한 꿈을 포기했다. 혼인신고를 한 후 4000만 원의 신혼부부 전세자금대출을 받았다.

젊은 신혼부부에게 임대아파트 입주는 '헛된 희망'이다. 하지만 높은 전세 값과 그에 따르는 빚을 생각하면 임대아파트를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임대아파트에 희망고문을 당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전체 1700만 가구 중 임대주택은 건설 중인 것까지 모두 포함해도 100만 가구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원망스럽다.

정부는 서민 주거를 안정시킬 의무가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위해 직접 예산을 마련하다보다, 청약저축을 유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돈을 모은다. 바로 국민주택기금이다. 올해 운용규모만 42조 원가량(실제 사업비는 약 175000억 원)이다. 하지만 이중 정작 임대주택 사업비는 53000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나와 여자 친구는 일찌감치 임대아파트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가끔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SH공사 홈페이지를 찾았지만, 실망만 커졌다. '정부는 신혼집을 구하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는 걸까'라는 생각에 침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 친구의 아버지께서 연락을 하셨다.

"박근혜 대통령이 '행복주택'을 만든다 카던데, 너희는 대상이 안 되니?"

행복주택 송파지구 조감도 (출처 : 국토교통부)

국토교통부는 최근 서울시와 경기도 7곳에 임대주택 1만 가구를 짓는 행복주택 계획을 발표했다. 턱 없이 적은 물량이다. 철도부지 등 국공유지에 짓기 때문에 임대료가 싸고, 신혼부부나 대학생 등에게 전체 가구의 60%를 배정한다니 그나마 반가운 소리다. 하지만 입주 시기는 3년 뒤인 2016. 기다리면 내게도 기회가 올까? 처음엔 거창했지만 초라하게 끝난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앞서 정부는 지난달 서민주거안정대책을 내놓았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어마어마한 혜택을 준단다. 우리에겐 해당사항이 없지만. 아참, 해당되는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신혼부부 전세자금대출 금리 인하(3.7%3.5%). 1000만 원을 빌리면, 2만 원의 이자를 덜 낸다. 안타깝게도 우린 폭탄()을 많이 떠안을 능력이 안 된다.

수백만 원이 들어있는 청약통장을 만지작거린 것도 그 때문이다. 청약통장을 깰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아파트 분양은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언젠가 내게도 임대아파트 입주 기회가 있을지 모르니... 하지만 신혼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한 푼이라도 아쉬운 상황에서, 청약통장에 들어있는 돈은 참 아쉽다. 여자 친구의 의견을 물었더니 고개를 절레 흔든다. 그러면서 내게 말했다. 

"우리도 혼인신고 늦출까요?"

참고) 한국토지주택공사 국민임대주택 소개

법제처 '찾기쉬운 생활법령 정보 : 국민임대주택' 

[신혼집 구하기 프로젝트]4~5일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입니다.



1억이 '하찮은' 돈인지 몰랐다. 4월 신혼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절실히 느꼈다. 선유도역에서 카운터펀치를 맞은 후 신혼집 예정지를 마포구로 바꿨다. 나와 여자 친구의 직장 중간에 위치한 곳이다. 마포구 집값이 비싸다는 것, 잘 안다. 마포구에서 그나마 집값이 싸다는 연남동을 찾았다. 물론, 홍대입구 전철역에서도 아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집 구하기를 시작했다 

중개업소에서 큰 맘 먹고 1억을 불렀다. 돌아온 것은 '반지하'였다. 여자 친구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었다 

"11000만 원도 괜찮으니까, 좋은 집이 나오면 알려 주세요."
"그 정도 가지고는."

혀 차는 소리를 뒤로하고 중개업소를 빠져나왔다. 여자 친구가 저 멀리 연희동 야트막한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저 산 밑으로 가요." 

산 밑 동네는 집값이 더 쌀 것이라는 생각에 나온 말이다. 하지만 연희동에서 중개업소를 하는 지인의 아버지는 말했다. "연희동은 비싸다."

연남동에서도 더 외진 곳으로 갔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 이곳 중개업소에서도 1억은 신혼집을 얻기엔 '하찮은' 돈이었다. 그러던 찰라 중개업소 사장님이 말했다. "지금 매물이 없으니, 5월에 다시 오는 게 좋을 겁니다." 구원의 목소리였다. '매물이 없을 때 와서 집을 못 구한 거였구나.'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그때부터 집 구하는 것을 포기가 아니라 미뤘다. 그 뒤 맞이한 5. 바뀐 건 없었다. 1억은 여전히 하찮은 돈이었다. 어느 날 여자 친구가 말했다. 

"신혼집 예산을 7000만~8000만 원으로 낮춰요."
"우리 포기하지 말아요. 마포구에서 1억짜리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을 거예요."
"생각해보니까, 남들처럼 사정이 좋은 게 아닌데, 빚내서 좋을 건 없잖아요."
"그렇지만."
"마포구는 포기해요. 우리 신혼집 원룸으로 하려했던 것 기억해요?"

불편한 진실을 여자 친구가 꺼내들었다. 몇 달 전 처음 결혼 얘기를 나눴을 때, 원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자고 했었다. 경제적인 여건을 감안한 거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수천만 원의 대출을 기정사실화했다. 신혼부부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3.5%. 1000만 원을 빌리면 이자는 연 35만 원이다. 3만 원의 이자는 큰 돈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수천만 원을 빌리면, 신혼집은 더 이상 전세가 아니다. 이자를 감당한다 해도, 원금은?

우리는 지하철 노선도를 펼쳤다. 합정역에 검지를 내려놓았다. 손가락을 6호선을 따라 외곽 방향으로 옮겼다. 망원, 마포구청, 월드컵경기장, 디지털미디어시티, 증산, 새절. 손가락은 쉬 멈추지 않았다. 결국 6호선 끝 연신내, 독바위, 불광에 닿았다. 직장인 여의도까지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안양에서 출근하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여자 친구의 직장이 있는 도심도 3호선을 타면 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은평구 쪽에 살자"고 결단을 내렸다.

시세를 조사하니, 1억 이하 전셋집이 적지 않았다. 물론 맘에 드는 7000만~8000만 원짜리 전셋집은 눈에 띄지 않았다. 5월에 결혼한 친구가 은평구에서 8000만 원짜리 신혼집을 구했다. 몇 달에 걸쳐 괜찮은 집을 찾다가, 결혼하기 2주 전에 겨우 신혼집을 얻었다고 했다.

그 친구 역시 장벽과도 같은 집값 앞에 수십 번 좌절을 맛봤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자취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릴까'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건 '집'이 아닌 '방'이었다. 결국 그 친구는 3000만 원을 빌렸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3000만 원 대출이면 한 달에 이자 10만 원 정도면 돼. 너도 너무 가격을 낮추기보다는 대출을 좀 받아. 그렇게 하면 선택의 폭이 넓어질 거야. 다들 그렇게 시작해."

고민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대출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몇번의 카운터펀치 이후로 대출을 늘리는 것보다는 눈을 낮추는 것으로 암묵적 합의를 했다. 여자 친구는 대출금 이자를 갚기 위해 팍팍해지는 것보다는 단돈 5만원이라도 모아지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고 한다. 우리도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을까? 여자 친구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이쯤에서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겠다. 지난해 3월 정치부로 옮겨오기 전까지, 몇 년 간 부동산 전담 기자를 했다. 취재한 중개업소만 100군데를 훌쩍 넘겼다. 타워팰리스부터 쪽방까지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그런데, 내 신혼집을 구하는 데는 이렇게 우왕좌왕 할 줄이야.

[신혼집 구하기 프로젝트]4~5일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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