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아이를 돌봐준 덕분에, 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고마워"


지난주 월요일 오후 6. 아내가 아이를 안고 내가 다니는 회사 건물 앞으로 왔다. 우리 회사는 거대한 업무용 빌딩에 세 들어 있다. 아내는 힙시트에 앉아 있던 아이를 내게 넘겼다. 그러곤 말을 못 알아듣는 아이에게 "아빠 말 잘 들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업무용 빌딩 입구에서는 칼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대거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앞을 서성이며 퇴근행렬을 지켜봤다. 이곳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내 모습은 업무용 빌딩과는 썩 어울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퇴근하는 사람들이 내게 눈길을 한 번씩 건네는 것만 같았다. 괜히 민망했다.

우리 회사 사람들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차마 인사를 할 수 없었다. 얼마 전 회사 후배 결혼식에 갔을 때, 아이와 잘 놀아줬던 후배 모습이 보였다. 후배를 불러,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후배는 나와 아이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나마 아이는 괜찮게 나왔지만, 나는 오징어처럼 나왔다.

근데 나는 왜 퇴근하지 않고 회사 앞에서 아이를 안고 서성이고 있었을까. 바로 부서 회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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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에겐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일을 하신다. 처가는 포항이다. 아내는 아이가 태어난 후 지금까지 9개월 넘게 집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내가 육아에 전념한 것은 내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사회적 꿈을 미루고 집안에 틀어박혀야 했다.

9월부터 아내는 다시 세상으로 한 발 내디뎠다. 평일 저녁 두 번과 주말, 아내는 학교에 간다. 아내는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전공 분야 박사과정을 포기하고,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다. 좀 더 빠르고 안정된 직장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아내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언젠가 내가 물었다.

공부 계속 하고 싶었잖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마흔 전에 다시 (전공 분야 박사과정을 공부할) 학교로 돌아가는 게 목표에요. 가능하지 않겠어요?”

아내는 남편을 안심시키려 애써 웃었다.

아내의 수업은 오후 7시다. 오후 6시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늦어도 그때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아내가 학교에 가는 날이면 장모님이 서울로 올라오셔서 아이를 봐주셨다. 하지만 며칠 전 월요일엔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일이 있어 포항에 내려간 장모님은 안타까워했다. 그런 사정 때문에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회사까지 찾아왔다.

부서 회의가 있었다. 미리 양해를 구하고 회의 중간에 빠져나왔다. 그렇다고 바로 집으로 갈 수 없었다. 한 선배가 좋은 일로 밥을 산다고 해서, 남았다. 아이 때문에 선후배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내는 연신 문자를 보냈다.

민폐죠? 어떡해요. 나중에 부서 사람들 집에 한 번 초대해서 과메기라도 먹어요. 미안해요.”

다행히 선후배들은 아이가 귀엽다며 다들 한마디씩 했다. 아이를 두 번째 보는 한 후배는 아이 옆에서 까꿍” “까꿍하며 아이를 돌봐줬다. 이런 배려 덕에 아이는 회식 분위기에 잘 적응했다. 아이는 다행히 낯을 가리지 않고 히죽히죽 잘 웃었다. 한 후배가 아이를 잠깐 안아준 덕분에 밥도 먹을 수 있었다.

아이의 첫 아빠 회식 참석은 성공적이었다.

앞으로가 문제다. 매주 장모님에게 포항에서 서울로 오시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기자 특정상, ‘칼퇴근이 보장되지 않고, 퇴근 장소도 제각각이다. 우리를 안타까워하는 장모님은 자주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하셨다. 우리 부부는 그러지 마시라고 했다. 우리끼리 되는 데까지 견뎌보기로 했다.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까지 누군가 육아를 전담하면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다시 희생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내는 지난 9개월 동안 충분히 엄마로서 제 역할을 했다. 황성희 시인의 시 <거울에게>를 읽으면서, 아내를 생각했다.

그동안 고생했어요. 조만간 육아휴직을 써보도록 할게요. 그전에는 칼퇴근해 아이를 돌볼게요.”


거울에게 / 황성희

 

그때 나는 빨래를 널고 있었다

제목도 없는 시간 속으로

태양은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지고

 

나는 마치 처음부터

빨래 건조대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마치 처음부터

엄마엄마 보행기로 거실을 누비는

저 아이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마치 처음부터

베란다 너머 저 허공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익숙해익숙해미치겠어

오늘 하루도 눈감아 주는데

 

거울아 거울아!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니?

 

하고 묻는 것이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마치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시간 속에서

이제껏 살고도 날 모른단 말이야?

비아냥댈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도대체 빨래나 널고 있지 않으면

저마다의 베란다에서 저렇게도 마음 편히 말라가는

아파트의 빨래들이나 멍하니 감상하지 않으면

 

거울아 거울아!

도대체 무엇을 하겠니?

 

나는 마치 처음부터 나로

수천 년 수만 년을 살아온 듯

너무도 익숙하게

내 팔 속으로 내 팔을 뻗고

내 다리 속으로 내 다리를 뻗고

내 얼굴 속으로 내 얼굴을 드밀며

 

안녕안녕선생님?

안녕안녕친구들?

 

오늘도 이렇게 인사하는데

 

- 황성희 시인의 시집 <엘리스네 집>(민음사, 2008)

아빠가 좋은 거니? 화장실이 좋은 거니?

아빠와 갓 돌이 지난 아이가 낯선 방에 들어가 함께 놀이를 한다. 곧 아빠가 나오고, 낯선 사람이 방에 들어간다. 이를 본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한다. 다시 아빠가 나타나면 어떨까. 어떤 아이는 아빠 품에 안긴 채 진정한다. 반면, 아빠가 와도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도 있다.

아빠와 자녀의 애착 실험이다. 지난 20136EBS <다큐프라임> ‘파더쇼크1부에서 방송됐다. 아이를 낳기 전, 아빠가 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중에 하나가 육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것이다. <파더쇼크>를 보면서, 아이와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자고 다짐했다.

지금의 난 어떨까.

다행히 아이와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맺은 것 같다. 토요일마다 아내는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나와 아이만 집에 남는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이는 엄마를 찾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아빠만 바라본다.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아이를 울면서 아빠를 찾으러 기기 시작한다.

아이 때문에 외출 준비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익숙해지니 괜찮다. 밥을 먹는 것도, 옷을 갈아입는 것도 아이 앞에서 하면 된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배 아플 때다. 화장실 문을 닫을 수 없다. 화장실 문을 닫는 순간, 아이는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운다. 어쩌랴. 문을 열고 아이가 보는 앞에서 변을 보는 수밖에.

보행기를 탄 아이는 화장실 문턱에서 10분 동안 아빠가 고뇌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뒤처리하는 모습까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싱글벙글 웃는다.

"네가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단다. 그런데 말이야. 다음부턴 화장실까지 따라오지는 말아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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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도 안 된다. 오후 6칼퇴근을 한다 해도 7시에나 집에 닿는다. 아이의 취침 시간 8. 1시간밖에 못 본다. 조금이라도 늦게 퇴근하는 날에는 아이 자는 모습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럼에도 안정적인 애착 관계가 형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아이를 목욕시키는 일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이가 자기 전에 내가 퇴근하면, 아이를 씻기는 일은 내 몫이다. 욕조에 물을 받고 장난감을 띄운다. 아이를 욕조에 앉힌다. 손으로, 가제손수건으로 아이 몸 구석구석을 씻긴다. 목욕시킬 때의 스킨십이 아빠와 아이의 살가운 관계의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주말에는 어떻게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하는 것도 안정적인 애착 관계에 도움이 된 것 같다. 아이를 낳은 뒤 주말에 개인적인 약속을 잡은 적은 거의 없다. 최근에는 주중에 아이를 돌보는 아내에게 휴식을 줄 겸 해서, 내가 아이를 안고 외출한다. 일요일에도 아이를 데리고 강남의 친구 결혼식에 다녀왔다. 다행히 아이는 보채지 않고 아빠 품에 잘 안겨있었다.

5년 뒤, 10년 뒤에도 부자 사이가 안정적인 애착 관계였으면 좋겠다. 자신 있다. 아이에게 줄 사랑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아빠 다리를 꼭 안은 아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


아직 / 유자효


너에게 내 사랑을 함빡 주지 못했으니

너는 아직 내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내 사랑을 너에게 함빡 주는 것이다

보라

새 한 마리, 꽃 한 송이도

그들의 사랑을 함빡 주고 가지 않느냐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그들의 사랑이 소진됐을 때

재처럼 사그라져 사라지는 것이다

아직은 아니다

너는 내 사랑을 함빡 받지 못했으니

 

- 유자효 시집 <아직>(시학, 2014)

그나마 대형마트에는 기저귀 교환대가 있는 수유실이 있다. 몇 번 큰 도움을 받았다.

요즘 아이를 데리고 바깥에 나갈 때 조심스럽다. 최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맘충이라는 말 때문이다. 이 단어는 여러모로 불편하다. 그렇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내 아이가 민폐를 끼쳐도 아이를 두둔하는 일부 부모에 대한 반감이 큰 것 같다.

나 역시 무개념 부모에 대해 비판적이다. 부모가 된 뒤 외출할 때면, 나와 우리 아이가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할 때가 많다. 아이는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언제든 비상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이가 걷고 뛰게 되면 어떻게 될까. 지금도 걱정이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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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외식하러 나갔다. 버스 안에서 아이는 기분이 좋은지 내 품에 안겨있으면서도 이리저리 뒤적였다. 손을 뻗고 소리를 질렀다. 가끔 큰 소리를 내지르기도 했다. 다른 승객들의 눈치가 보였다. 아이한테 조용히 좀 해라고 나직이 말했다. 말을 못 알아듣는 아이한테 한 말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음식점에서 아이를 아기의자에 앉혔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아이에게 좁은 의자는 무척 답답할 것이다. 아이는 가만히 있지 않고 칭얼거린다. 그나마 장난감을 쥐여주면, 10~20초가량 평화가 찾아온다. 하지만 곧 아이는 장난감을 던진다. 아이는 다시 칭얼거리고, 바닥에 떨어진 장난감을 주어 다시 쥐여준다. 밥을 먹는 내내 반복되는 일이다.

아이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진땀이 나기 시작한다. 아이에게 옹알이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는 다른 이에겐 소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그럴 때면 말을 못 알아듣는 아이에게 조용히 좀 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밥을 다 먹고 나오면서 내가 앉은 자리를 봤더니 꽤 지저분했다. 아이가 흘린 것들이다. 종업원 입장에서 아이가 있는 손님은 진상 손님일 것이다. 미안한 마음을 안고 나왔다.

아이와 외출했을 때 가장 난감한 상황은 아이 기저귀를 갈 때다. 수유실이나 기저귀 교환대가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종종 여자 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가 딸려 있는 곳이 있지만, 기저귀 교환대가 있는 남자 화장실은 보지 못한 것 같다.

며칠 전 한 성당에서 회사 후배의 결혼식이 있었다. 아내 없이 아이를 데리고 갔다. 예식을 지켜본 뒤 피로연장에 내려왔다. 아이 기저귀를 확인했다. 기저귀가 얼마나 많은 오줌을 흡수했는지 많이 부풀어 올랐다. 어서 기저귀를 갈아야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장실로 향했지만, 기저귀 교환대는 없었다.

여자 화장실에도 없는 것 같았다. 발을 동동 구르자, 지인의 아내가 대신 기저귀를 갈아주겠단다. 참 고맙고 미안했다. 마음만 받았다. 성당 곳곳을 살펴봤지만, 사람이 많아 기저귀를 갈 곳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조용한 장소를 발견했다. 입구에서 멈칫했지만 빠르게 아이 기저귀를 갈고 나왔다. 그곳은 미사를 드리는 성전이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아이 기저귀를 갈 때 정부에 감사했으면 좋겠다.


KTX에도 기저귀 교환대가 있다. KTX를 자주 이용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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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아이와 자주 외출을 할 것이다.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고 음식점에서 밥도 먹을 것이다. 눈치가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힘이 날 때가 더 많다. 사람들이 아이를 귀여워해주고, 무엇보다 종종 배려를 받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결혼식에 가는 길, 마을버스에 올라타자 의자에 앉은 두 사람이 일어났다. 그 한 자리는 선배의 아이에게 다시 양보했고, 나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의자에 앉았다.

결혼식장에서 후배에게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지르면 민망하다고 얘기했더니, 그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신경쓰지 마세요. 아이가 우는 게 당연하잖아요.” 참 고마운 말이다. 말 한마디가 적잖은 힘이 됐다. 아직 우리 사회는 혐오보다는 배려를 가르치기 좋은 곳이라 믿는다.


똑같이 나누자면서 10에서 절반이라고 내 손에 쥐어준 것은 돌아서보니 6이었다

- 황혜경 시인의 시 돌보는 부류중에서

친구랑 잘 지내렴.

아이가 태어난 지 8개월. 아이가 자라는 게 하루하루 다르다. 언제까지나 갓난아이일 것만 같았는데, 이젠 제법 몸을 잘 움직인다. 장모님이 설친다고 표현할 정도로, 아이는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아이를 어딘가에 두면, 그 반경 50cm는 초토화된다. 바구니가 있으면, 다 뒤집어 놓고 물건들을 빤다.

앞으로 기어 다니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제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아이를 보면,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지난 일주일 동안 처가에 있으면서, 장모님이 주로 아이를 돌보셨다. 많이 고생하셨을 것이다. 그래도 장모님은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면 좋은 것 아니냐하며 웃으신다.

아이는 자기 의사를 표현할 줄 안다. 배고프면 울기만 하는 아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배부르면 먹지 않는다. 이유식이 담긴 숟가락이나 분유병 젖꼭지를 아이 입에 넣으려고 하면, 혀로 밀어낸다.

아이는 답답한 걸 싫어한다. 아이를 꼭 안고 있으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내 품 밖의 세상을 보려 한다. 더욱 꽉 안으면, 아이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드러눕는다. 싫다는 표현이다. 목욕시킬 때는 앉으려 하지 않고 일어서려 한다. 주저앉히려 하면, 다리에 힘을 줘서 제법 버틴다. 엄마아빠가 안 보이면 큰 소리로 울고, 안아주면 그렇게 싱글벙글 웃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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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요새 부쩍 옹알이가 늘었다. 그 모습을 보면 참 귀엽다. 아이가 최근에 이런 말들을 한다.

음마”, “옴마”, “엄머”...

아이가 엄마를 알아보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아이가 엄마를 보고 활짝 웃을 때는 확실히 엄마를 알아보는 것 같다. 최근 아이가 엄마와 비슷한 발음을 하는 걸 보니, 그런 생각이 더욱 확실해진다. 하루 종일 엄마와 같이 있으니까,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아이가 말을 뗀다면 참 좋은 일이다. 그런데 내겐 작은 근심거리가 생겼다. 아이는 왜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지 못할까. 주 양육자인 엄마를 먼저 말한 다음에, 아빠를 부르는 게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의 말에 근심거리가 생긴 것이다. 조리원 동기 엄마들을 만나고 돌아온 후, 내게 놀리듯 말했다.

누구는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말했고, 아빠를 더 자주 말한 대요. 발음이 더 쉬워서 그런 건가...”

웃으며 넘겼지만, 괜히 서운했다. 나름대로 아이와 잘 놀아주는 아빠라고 생각하고 있다. 야근하는 날이 아니면, 집에 가서 아이를 돌보고 씻기고 재웠다. 아이가 태어난 후, 저녁에 개인적인 약속을 잡은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주말에는 아내에게 자유 시간을 주기 위해 아이와 하루 종일 뒹굴기도 했다. 어제는 아내 없이 아이를 데리고 본가에 다녀오기도 했다.

아이는 내가 퇴근해서 문을 여는 모습을 보고, 밝게 웃는다. 내가 안을 것처럼 팔을 벌리면, 아이도 안아달라고 팔을 벌린다. 아내는 곧잘 아빠를 알아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근데 이 녀석은 왜 아빠를 아빠라고 못하는 걸까. 그 뒤, 최대한 빨리 아이에게 아빠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했다. 언젠가는 아이를 앉혀두고 아빠라는 말을 수십 번 하기도 했다. 물론 효과는 없었다.

엄마가 그렇게 좋니?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빠라는 말을 빨리 듣는 게 뭔 대수인가 싶다. “아빠라는 말을 늦게 들어도 내가 좋은 아빠가 된다면, 언젠가 아이는 애틋하게 아빠라고 말할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참 많으니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더욱이 좋은 아빠가 되면, 아이는 좋은 사람으로 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 전, 마종하 시인의 시를 읽다가 아이를 이렇게 키우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관찰을 잘 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딸을 위한 시 / 마종하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 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라고.'


- 마종하 시인의 시집 <활주로가 있는 밤>(문학동네, 1999)

그래도 너와 많은 추억을 쌓고 싶구나. (c) 정기훈

아이와 함께하는 첫 번째 여름을 보내고 있다. 지난 겨울 아이가 태어난 뒤, 여름을 기다렸다.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을 테니. 이미 몇 번의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을 조심스럽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생고생’ 언젠가 나 또는 아내는 공항에서 이런 말을 남기고 어딘가로 떠날지도 모른다. 

이제 내가 나에게 안식년을 줍니다 
여보, 일 년만 나를 찾지 말아주세요

- 문정희 시인의 시 '공항에서 쓸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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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의 일이다. 더위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아이 있는 집은 다 그렇듯, 에어컨은 쉴 틈이 없다. 특히, 아이가 잠든 뒤 더위에 깰까봐 밤새 에어컨을 틀어야 했다.

예정된 여름휴가는 8월 중순. 그때까지 아이와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그때 휴가를 잘 다녀오기 위해서라도, 7월에 미리 예행연습을 해야 했다. 지난 5월 황금연휴 때 아이와 함께 가평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지옥 같은 편도 6시간의 꽉 막힌 도로에서 우리는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래도 그때는 아주 덥지 않았다. 여름 여행은 큰 각오가 필요하다는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다행히 예행연습 기회가 찾아왔다. 7월 중순 친하게 지내는 선배들과 캠핑을 가기로 했다. 우리들은 처녀, 총각이었던 몇 년 전 강원도 망상 해변의 1박 2일 캠핑을 종종 얘기하곤 한다. 이제 다들 결혼했고,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서로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탓에, 일요일 오후 반나절 캠핑을 즐기기로 했다. 장소는 서울 상암동 노을공원.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그것도 잔디밭이 펼쳐지고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캠핑장이다. 캠핑 마니아인 한 선배가 어렵사리 예약을 했다.

캠핑 전날, 설렜다. ‘재밌게 놀다 오자!’ 하지만 당일 오전부터 정신이 없었다. 아이 짐을 싸느라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아이 짐만 한 보따리다. 9kg가 넘는 아이를 하루 종일 안고 있을 수 없으니, 유모차를 가져가야 한다.

아이가 먹을 분유와 이유식도 챙기고, 기저귀와 물티슈를 빠뜨릴 수 없다. 여벌의 옷과 장난감도 가방에 털어 넣었다. 지인들과 함께 먹을 간식거리까지 챙기니, 가방이 빵빵하다. 여기에 캠핑용 릴렉스 체어까지. 집 밖을 나서자 벌써 땀이 흐른다. 짐 때문에 택시 타기도 어려운 상황. 다행히 한 선배의 도움으로 무사히 노을공원에 닿을 수 있었다.

노을공원에 내리자, 푸른 잔디밭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즐거움은 오래 가지 못했다. 타프(그늘막)도 텐트도 더위를 완벽히 물리치지는 못했다. 결국 아이는 보채기 시작했다. 아이를 안고 있는데, 아이도 나도 땀범벅이다. 아이 몸에는 열꽃이 퍼졌다. 부모 마음은 어지럽다. ‘이 더위에 캠핑하는 게 잘하는 짓인지...’ 그래도 여기서 돌아갈 수 없다.

아이는 혼자 앉을 수 있다. 나도 맥주 마시고, 대화에 낄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아이는 바닥에 꽝 헤딩했다. 캠핑장이 떠나가라 운다. 결국 아이에게 온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캠핑인지 육아의 연장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늦은 밤 땀에 전 몸으로 잠든 아이를 안고 공원을 내려오면서 여름 여행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생고생이다.’

하지만 이튿날 아이를 보니, ‘여행 많이 다니자’고 다짐하게 된다. 그 후 8월 중순 우리 부부는 장모님을 모시고 경북 영덕으로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아이는 차 안에서 계속 칭얼거렸다. 아이에게 차 여행은 무리인가 보다. 생각보다 일찍 집으로 향했다. 아마 다음 여행 때는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엄마아빠 여행 다녀올 테니, 할머니 말 잘 들어야 돼.‘


아이야.

나는 오늘 나의 엄마에게 너를 맡기고 나와 일을 하고 있다.

네가 80일쯤 됐을 때,

'100일 만에 복직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도 할 수 있어'라는

호기로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한 뒤.

차오르는 답답함과 날로 커지는 피로감에

수도 없이 짜증을 내고, 몇 번을 울고, 몇 번을 포항으로 내달았지.

그럼에도 나는 또 이렇게 노트북을 켜고 앉아 있다.

 

엄마가 되어도 나는 아직 철딱서니 없는 딸인지라

여전히 "엄마, 나 힘들어! 엄마가 해줘"라며

이제는 육아전선에서 은퇴해도 마땅한 엄마를 다시 불러들였지.

 

아이야.

나는 몇 푼을 벌겠다고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할머니 등에 업혀서도 눈은 늘 나를 따르던 너를 두고.

엄마 껌 딱지인 손주라 더 힘에 부치는 나의 엄마를 두고.

 

10kg에 육박하는 널 업은 나의 엄마는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프다.

나의 엄마의 주름이 나로 인해 더 깊어지는 듯하여 마음이 아린다.

 

아이야.

너는 기억할 수 있겠니?

외할머니의 사랑을.

나는 네가 그 사랑을 잊으면 진심으로 섭섭하고 화가 날 것 같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가장 화가 날 것 같다.

환갑에 다다른 엄마를 다시 육아전선에 끌어오고,

엄마가 필요한 너를 할머니 등에 둔 나의 무능력함에.

 

아이야.

우리 기억하자. 외할머니의 사랑을.

어여 일 끝내고 너와 나의 엄마에게로 달려갈게.

조금만 배려했다면 상처는 깊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는 경력단절여성이다. 이른바 경단녀. 아내가 아이를 낳은 지 정확히 8개월이 지났다. 내달부터 대학원에 다니는 아내는 일도 병행하려 한다. 특수전문대학원이라 일주일에 세 번, 저녁에 수업을 듣는다. 낮에 시간이 남는다 해도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육아와 프리랜서 작가 일을 병행한 아내다. 옆에서 아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힘들지 않겠어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요즘 시대에 맞벌이 아니면 어떻게 살 수 있어요?”라는 아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흔들지도 못했다. 특수전문대학원도, 박사과정이라는 아내의 꿈을 접어두고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아내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까지, 장모님의 도움을 받자고 한 걸 보면.

아내는 곧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공공기관이라면 돈은 적어도 나이, 경력단절 탓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 거라 봤다. 공공기관 쪽 일자리를 알아보니, 임기제 공무원을 뽑는 공공기관이 몇 군데 있었다. 나도 공무원 남편이 되는 걸까. 한껏 기대를 키웠다.

사실 공공기관 임기제 공무원의 월급은 많지 않다. 월급에 월 노동시간을 나눠보면 최저임금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다. 최저임금에 더 관심을 가질 걸 그랬다. 내게 최저임금은 안타까운 청년들의 문제였다. 하지만 경단녀 역시 최저임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공공기관의 임기제 공무원 모집 공고가 떴다. 비슷한 업무를 맡기는 다른 공공기관과 비교하면, 비교적 월급이 많았다. 또한 오후 5시 퇴근이었다. 아내는 여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마침 프리랜서 원고 작업 막바지에 있는 아내의 육아를 덜어주기 위해 장모님이 잠시 올라오셨다. 아내는 그때를 이용해 자기소개서와 업무계획서를 최대한 정성껏 썼다.

며칠 뒤 아내는 직접 원서를 냈다. 다음날 서류전형 합격자를 발표한단다.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날 저녁, 아내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왔다.

서류전형 합격자가 게시되었습니다.'

어머아내는 깜짝 놀랐다. 아내에게 휴대전화를 건네 받았다. 면접전형 일시, 장소, 준비물을 안내하는 내용이었다. 아내를 얼싸안으면 말했다.

서류 전형 합격 축하해요.”

우리 부부는 홈페이지에 둘러봤다. 서류전형 합격자 공고 클릭! 스크롤을 내렸다. “?” 아내의 수험번호를 찾을 수 없었다. 아내는 꽤 실망한 눈치였다. 인사담당자가 모든 지원자에게 문자를 보낸 것 같다. 아내는 경력 인정이 애매한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 때문에 탈락한 것 같다며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아내와 나는 그날 맥주 한 잔 들이켰다.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이제 한 군데 서류 낸 것뿐이잖아요.” 아내는 다시 구직활동에 나섰다. 그녀의 구직 활동을 응원한다. 아이를 낳은 뒤 다시 세상으로 나오려는 모든 엄마들을 응원한다. “경단녀 파이팅!”

뒷날 이제 과거가 되어버린 그날 일을 생각하다가, 동질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내가 좋아하는 시 중에 하나다. 예전에 아내에게 들려줬더니, 아내가 참 좋아했다.


동질(同質) / 조은

 

이른 아침 문자메시지가 온다

- 나지금입사시험보러가잘보라고해줘너의그말이꼭필요해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순간

지하철 안에서 전화기를 생명처럼 잡고 있는

절박한 젊은이가 보인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신도 사람도 믿지 않아

잡을 검불조차 없었다

그 긴장을 못 이겨

아무 데서나 꾸벅꾸벅 졸았다

 

답장을 쓴다

- 시험꼭잘보세요행운을빕니다!

 

- 조은 시인의 시집 <생의 빛살>(문학과지성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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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해준 이유식, 맛있니?

아내가 고구마밥을 했다. 아내가 그릇에 고구마가 잔뜩 담긴 밥을 펐다. 쌀밥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황금빛 고구마 조각! 생각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그런데, 아내는 내 초롱초롱한 눈빛을 외면하고 고구마를 다시 밥솥에 던다. “왜 그래요?”, “아이 줄 거예요.”

그렇다. 이제 고구마도 아이 먼저다. 장인 어른이 며칠 전 사과 한 박스를 보내셨다. 아이가 제일 먼저 맛봤다. 그 전에 장모님께서 고기 좋아하는 사위를 위해 올려보낸 스테이크용 쇠고기 안심도 어느새 아이 이유식 거리가 됐다. 그나마 이유식을 하고 남은 사과와 쇠고기 정도를 맛볼 수 있었다.

그래, 여기까지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집에는 며칠에 한 번씩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아이 이유식을 만드는 소리다. 이제 먹을거리를 아이에게 양보하는 것을 넘어,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어 떠먹여줘야 한다. 끙! 상전이 따로 없다!

이유식을 만드는 것은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결혼하면서 난 요리하는 남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어느 순간 아내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출근하고, 아내가 싸준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퇴근 뒤 아내가 준비한 저녁을 먹는다. 염치없는 남편은 주말에 가끔 음식을 한다. 그것도 고작 파스타. 지난 주말엔 인터넷을 뒤져 굴 소스를 넣은 두부파프리카볶음을 했다.

그래서일까. 처음에 아내가 부엌에서 이유식을 만드느라 낑낑대고 있을 때난 피곤하다를 외치며 안방에 늘어져 있었다아내가 S.O.S를 칠 때야 부엌으로 갔다. 이유식을 만드는 데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 먹었다. '우리 아이 밥인데...'

얼마 전, 아내에게 속죄의 의미로 나 혼자 이유식을 만들겠다고 했다. 메뉴는 아내가 정했다. 달력에 적힌 이유식 식단표를 본 뒤, 브로콜리와 쇠고기를 내어왔다.

정성스럽게 쓱쓱. 손은 덜덜.

브로콜리를 씻고, 줄기를 뜯은 다음 잘게 다졌다. 솜씨가 매끄럽지 못하니 느리다. 고기도 잘게 자른다. 아이가 먹기 힘든 질긴 힘줄을 빼낸다. 허리를 굽힌 채 칼질한 지 20, 허리가 아파왔다. 쌀죽을 끓이고, 여기에 쇠고기를 분쇄기로 갈아 넣고, 마지막에 브로콜리를 넣었다. 뜨거운 불 앞에서 죽을 저었다. 이유식 세 끼 분량이 나왔다. 만드는 데 30. 허리가 쑤셨다. ‘이제 끝났구나.’ 안도의 한숨도 잠시, 아내는 내 앞으로 당근을 내놓았다. 내 입에서 "아이고"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유식을 모두 만든 후, 방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도 내가 만든 이유식을 아이가 먹는 상상을 하니, 싱글벙글 웃음이 나왔다. 이튿날 회사에 간 나를 대신에 아내는 내가 만든 이유식을 아이에게 먹였다. 한 그릇 잘 비웠단다. 뿌듯했다. 주말에는 꼭 내가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였다. 잘 먹는 아이가 대견했다.

아이 입 속으로 이유식을 밀어 넣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아이 스스로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겠지. 그땐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나와 아이는 언제까지 함께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밥을 먹을 수 있을까.'

난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부모님과 함께 밥상에 앉지 못했다. 맨날 늦잠 잔 탓에 아침을 먹지 못했다. 부모님은 항상 밤늦도록 일을 하셨고, 고등학생이 된 나도 늦은 밤에야 집에 들어왔다. 오늘 하루가 서로에게 어땠는지 알지 못한 채, 각자의 방에서 잠들었다.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고, 부모님이 새벽까지 호프집이나 노래방을 운영하면서, 우리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아쉽다. 그래서인지 난 오랜 시간 동안 아이와 밥상에 둘러앉아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하며 즐겁게 밥을 먹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허투루 하는 생각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언젠가 책을 읽다가 이 시가 눈에 띄었나 보다.


끼니 / 고운기

멀쩡한 제집 두고

때 되어도 밖에서 끼니를 때우는 일은

다반사(茶飯事)

도대체 집은 뭐하러 있는 거야?

아침은 얻어먹고 사냐는 질문도

굳이 마누라 타박할 문법(問法)은 아니지

차라리 못살았다는 옛날 생각이 나는 거야

새벽밥 해 먹고 들을 나가

날라 오는 새참이며 점심 바구니

끼니마다 집에서 만든 밥 먹던 생각

그것이 힘의 원천

저녁이면 큰 상 작은 상

각기 제 몫의 상에 앉아

제 밥그릇 찾아먹는 것이 좋았다는 생각

무슨 벼슬한다고

이 식당 저 식당 돌아다니며

제 그릇 하나 찾아먹지 못하고 사노

먹는 게 아니라 때우면서

만주벌판 독립운동이라도 하나

멀쩡한 제집 두고

밖으로만 나다니면서

 

-고운기 시집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창비, 2001)

아이의 성장과 맞바꾼 아내의 손목

아내는 오래 전부터 오른쪽 손목이 아프다고 했다. 하루 종일 아이를 업고 안으니 당연히 손목에 무리가 갔다. 특히, 아이가 또래 평균보다 잘 자란 덕에 아내의 손목은 다른 엄마들보다 더 나빠졌을 것이다.

최근에는 손목을 움직이기 힘들다고 했다. 여기에 "몸 성한 데가 없으니, 장모님께 반품 요청을 해야겠다"며 농담을 했다. 그만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우리 부부를 잘 아는 한 선배가 내게 자주 하는 말이 들리는 듯 하다. '이 한심한 놈아.'

상황 파악이 느린 남편은 아내에게 “내가 하루 휴가를 낼 테니병원에 가서 치료 받도록 해요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며칠 지나면 다시 좋아지겠지’란 생각이 컸다. 아내는 무심한 남편을 고른 탓에, 손목이 망가지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저께 아내는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내가 점심시간에 아이를 맡아주면 그 시간에 병원에 갈 계획을 내놓았다. 나더러 점심을 먹지 말고 회사 근처 병원 앞으로 나와 달라고 했다. 순간 망설였다. 이튿날 아침 눈치 빠른 아내는 “일하는데 민폐를 끼치는 거 같다”며 내 점심 도시락을 쌌다. 눈치 없는 남편은 그저 좋아라 했다.

내가 출근한 뒤, 아내는 끙끙 앓았던 모양이다. 아내는 내 퇴근길에 맞춰, 아이를 안고 회사 앞으로 왔다. 함께 병원으로 갔다. 엑스레이를 찍은 뒤 진료실에 들어간 아내는 5분 뒤 손목에 반깁스를 한 채 나왔다. 나는 깜짝 놀랐다. 오히려 아내는 발랄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깁스를 한 팔을 내보였다. 

인대가 늘어나고, 염증이 많이 생겼대요. 다른 사람들보다 상태가 심각해서, 주사를 세 번이나 맞았어요. 이제 아이 못 안으니, 당신이 안아요. 하하”

아내에게 휴가를 주기로 했다

울상이 아니라 마음이 놓였다. 아내는 곧 "배가 고프다"고 했다. 아내도 나만큼이나 허한 걸 싫어한다. 미안한 마음을 전할 새도 없이, 식당가로 갔다. 아내는 말했다.

"집밥 말고 아무거나 다 좋아요. 내가 만든 건 빼고 다 맛있어요."

피자를 먹으면서 우리는 앞으로를 고민했다. 깁스한 손으로 나이프를 들고 낑낑대며 피자를 자르고 있던 아내에게 "휴가를 쓸까?"라고 물었다. 오늘과 내일 내가 출근하면, 아내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아내는 선택을 내게 미뤘다. '전날 밤 갑자기 휴가 쓴다고 말하기가 좀 그런데...' 

1시간 뒤, 아내의 손목 깁스 사실을 안 장모님은 당장 포항에서 우리 집으로 올라오시겠다고 했다. 헉. 급하게 팀장에게 연락했고, 결국 오늘과 내일 휴가를 쓰기로 했다. 휴가 이틀과 석가탄신일 연휴 3일을 합쳐 5일 동안 내가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도맡아 하기로 했다. 

아내에게는 5일의 휴가를 주기로 했다. "육아를 내게 맡기고, 푹 쉬어요." 아내가 좋아하는 스타벅스 카페라떼를 사서 건넸다. 손목 깁스한 걸 빼면, 오랜만에 외식을 하고 스타벅스 카페라떼를 마신 아내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집에 와서 <무한도전> 재방송을 틀었다.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능프로그램이다. 육아 때문에 제대로 <무한도전>을 보지 못했던 아내는 시종일관 껄껄 웃었다. 연휴 전야, 아내는 웃으면서 잠들었다. 지인들에게는 "혼자 육아한듯 반깁스했다ㅋ 뭉쳐요 뭉쳐"라는 소식을 전했다. 

이렇게라도 아내에게 육아에서 벗어날 시간을 줄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어서 아내의 손목이 낫길 빈다. 내가 육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5개월 차 아이는 이제 손을 양쪽으로 쭉 펼칠 수 있다.

얼마 전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다녀왔다. 카셰어링을 통해 차를 빌렸다. 돈은 좀 들었지만, 편하게 다녀왔다. 문제는 차를 집 앞에 세운 뒤였다. 아내는 아이를 안았고, 나는 젖병, 보온병, 기저귀, 물티슈, 도시락통 등이 든 가방을 한 손에 들었다. 나머지 한 손에는 유모차와 카메라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5층을 걸어 올라갔다. 헉헉 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2년 전 우리 부부는 서울 북가좌동 5층 빌라 꼭대기 층에 신혼집을 차렸다. 빚을 최소화해 작은 집을 얻고, 나중에 돈을 모아 넓은 집으로 가자고 약속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건, 젊은 신혼부부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서울에 1억 원이 안 되는 전셋값으로 깨끗한 보금자리를 얻었다는 생각에 다리 아픈 줄 몰랐다. 운동도 된다고 생각하니,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집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참 죄송한 일이다. 보통 5층을 걸어 오르내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을 오르시던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무거운 택배를 5층까지 배달해주는 택배기사님도 안쓰럽다. 아내가 냉장고에 택배기사님들을 위한 음료수를 준비해놓았다.

아이가 태어난 뒤, 우리 부부에게도 5층을 오르내리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갓 5개월에 접어든 아이와 외출할 때면 짐은 한 보따리였다. 계단을 내려갈 땐 그나마 낫다. 8kg가 넘는 아이를 안은 아내는 5층을 오르며 적어도 두 번은 멈춰 서 숨을 돌려야 했다.

아이가 클수록 아내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나 역시 짐을 여러 차례 오르내려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우리 부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유모차를 1층에 놔뒀다. ‘누가 가져가진 않겠지...’

다리 힘은 어찌나 세졌는지. 발차기 맞으면 아프다^^

결국 우리 부부는 이사 가자고 외쳤다. 는 8월 전세계약을 끝으로 신혼집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되도록 엘리베이터가 있고, 지금보다는 조금 더 넓은 집으로 가려 한다. 빚은 꽤 내야할 것 같다. 선택지는 작은 아파트나 최신 빌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식구는 어디로 가야할까. 난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좋다. 동네에 정이 들었다. 불광천이 멀지 않아, 언젠가 아이를 트레일러에 태우고 한강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또 회사에서 가깝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육아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아내도 가을엔 학교로 돌아갈 예정이다. 간혹 우리 부부가 어려울 때 아이를 돌봐줄 곳이 필요하다. 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니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 본가는 안양이지만 부모님이 밤늦은 시간까지 노래방을 운영하시기 때문에 아이를 돌봐줄 수 없다. 처가는 포항이다. 아이를 포항에 내려 보낼까 고민도 하지만, 이 역시 쉬운 결정이 아니다.

아내에게는 서울 우이동에 제2의 처가가 있다. 바로 처형네다. 직장맘인 처형은 8살과 4살 딸들을 시댁의 도움을 받아 키우고 있다. 이곳에 가면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거기다 아이들끼리 자주 어울릴 수 있으니.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우리가 원하는 작은 아파트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빌라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우이동으로 가면 아내와 내가 길바닥에서 버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내가 사랑하는 한강에서도 멀어진다. 고민이 깊어진다.

결정의 시간이 멀지 않았다. 우리 세 식구의 집은 어디가 될까. 정들고 한강이 가까운 북가좌동일지, 처형이 있는 우이동일지, 아니면 우리 예산에 맞춘 제3의 곳일지. 우주는 아이를 중심으로 돈다. 아이를 중심에 두고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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