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차 아이는 이제 손을 양쪽으로 쭉 펼칠 수 있다.

얼마 전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다녀왔다. 카셰어링을 통해 차를 빌렸다. 돈은 좀 들었지만, 편하게 다녀왔다. 문제는 차를 집 앞에 세운 뒤였다. 아내는 아이를 안았고, 나는 젖병, 보온병, 기저귀, 물티슈, 도시락통 등이 든 가방을 한 손에 들었다. 나머지 한 손에는 유모차와 카메라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5층을 걸어 올라갔다. 헉헉 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2년 전 우리 부부는 서울 북가좌동 5층 빌라 꼭대기 층에 신혼집을 차렸다. 빚을 최소화해 작은 집을 얻고, 나중에 돈을 모아 넓은 집으로 가자고 약속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건, 젊은 신혼부부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서울에 1억 원이 안 되는 전셋값으로 깨끗한 보금자리를 얻었다는 생각에 다리 아픈 줄 몰랐다. 운동도 된다고 생각하니,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집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참 죄송한 일이다. 보통 5층을 걸어 오르내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을 오르시던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무거운 택배를 5층까지 배달해주는 택배기사님도 안쓰럽다. 아내가 냉장고에 택배기사님들을 위한 음료수를 준비해놓았다.

아이가 태어난 뒤, 우리 부부에게도 5층을 오르내리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갓 5개월에 접어든 아이와 외출할 때면 짐은 한 보따리였다. 계단을 내려갈 땐 그나마 낫다. 8kg가 넘는 아이를 안은 아내는 5층을 오르며 적어도 두 번은 멈춰 서 숨을 돌려야 했다.

아이가 클수록 아내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나 역시 짐을 여러 차례 오르내려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우리 부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유모차를 1층에 놔뒀다. ‘누가 가져가진 않겠지...’

다리 힘은 어찌나 세졌는지. 발차기 맞으면 아프다^^

결국 우리 부부는 이사 가자고 외쳤다. 는 8월 전세계약을 끝으로 신혼집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되도록 엘리베이터가 있고, 지금보다는 조금 더 넓은 집으로 가려 한다. 빚은 꽤 내야할 것 같다. 선택지는 작은 아파트나 최신 빌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식구는 어디로 가야할까. 난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좋다. 동네에 정이 들었다. 불광천이 멀지 않아, 언젠가 아이를 트레일러에 태우고 한강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또 회사에서 가깝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육아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아내도 가을엔 학교로 돌아갈 예정이다. 간혹 우리 부부가 어려울 때 아이를 돌봐줄 곳이 필요하다. 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니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 본가는 안양이지만 부모님이 밤늦은 시간까지 노래방을 운영하시기 때문에 아이를 돌봐줄 수 없다. 처가는 포항이다. 아이를 포항에 내려 보낼까 고민도 하지만, 이 역시 쉬운 결정이 아니다.

아내에게는 서울 우이동에 제2의 처가가 있다. 바로 처형네다. 직장맘인 처형은 8살과 4살 딸들을 시댁의 도움을 받아 키우고 있다. 이곳에 가면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거기다 아이들끼리 자주 어울릴 수 있으니.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우리가 원하는 작은 아파트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빌라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우이동으로 가면 아내와 내가 길바닥에서 버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내가 사랑하는 한강에서도 멀어진다. 고민이 깊어진다.

결정의 시간이 멀지 않았다. 우리 세 식구의 집은 어디가 될까. 정들고 한강이 가까운 북가좌동일지, 처형이 있는 우이동일지, 아니면 우리 예산에 맞춘 제3의 곳일지. 우주는 아이를 중심으로 돈다. 아이를 중심에 두고 결정하게 될 것이다.

여자 친구의 글입니다. 

집을 구했다. 어른들 말씀에 집구하다 지쳐 결정한다고 하더니 딱 그 짝이다. “도대체 결혼 준비는 하고 있냐?”, “뭐가 그리 천하태평이냐?”는 갖은 채찍질과 잔소리 속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각오로 임한 결과, 드디어 승전보를 울린 것이다.

지난 주말,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매물이 워낙 없어 일단 확인부터 하고 나설 참이었다. 헌데 부동산 5군데 중 우리와 맞는 조건의 매물이 있는 곳은 단 한 곳뿐.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부동산 중개인은 집 두 곳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집은 나름 거실과 베란다가 있어 마음에 들었다. 지난 두 달간 본 매물 중 최상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최신식으로, 그만큼 방은 작았고 수납공간조차 놓을 수 없었다.

오늘은 기필코 계약을 하고 만다는 각오로 임했던 터라 나는 첫 번째 집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남자친구만 괜찮다면 그 집으로 당장 계약을 할 참이었다. 여름의 더위가 더해질수록 매물 역시 가물어갔고, 저 정도 집 역시 다시 만나기 어려울 터였다.

우리는 증산역 근처 카페에 앉았다. 뭔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 남자친구의 갈등과 고민에 휩싸인 분위기가 감지됐다. 일단 시간이 좀 필요할 거 같았다.

여친의 비법 공개 … “어르고 달래고 협박해”

어떤 거 같아요?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요?”
두 번째 집은 거실이랑 베란다도 없고. 그나마 첫 번째 집이 괜찮은데.”

남자친구는 섣불리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안다. 거실이 작아도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벽면 4곳 중 2곳이 베란다와 주방으로 뚫려 있고, 한쪽 벽엔 화장실과 다용도실 문이 달려 있어 거실로 꾸미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아니~ 거실이 너무 작아요. 문 때문에 공간 활용도 못하잖아요.”
그렇긴 한데, 이 가격에 저 정도 크기, 저 위치면 최상이에요. 그나마 저기가 5층격이라 우리 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 같은데.”
그건 아는데. 그래도 거실이 너무 작아서 결정을 못하겠어요.”

안다. 무슨 말인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 공간이기에 거실에 집착하는 거. 하지만 전세 9천 빌라에 거실다운 거실을 얻기란 쉽지가 않다. 경기도로 나가든, 마을버스를 타고 구석으로 들어가든 해야 한다.

그 집에 짐이 많아 더 작아 보이는 거예요. 깨끗하게 꾸미면 잘 활용할 수 있어요.”
그래도 거기 문 때문에.”

사실 내가 강력하게 밀어붙였다면 우리는 이미 두 달 전에 집을 구할 수 있었을 거다. 헌데 남자친구의 의견을 존중해 미뤄왔다. 하지만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다. 지금은 어르고 달래기 신공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종이와 볼펜을 꺼내 그림까지 그리며 설득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나 너무 고민돼요. 결정을 못하겠어요.”
다용도실 문 막아줄게요. 세탁기야 뭐, 안방 베란다로 빼던지 할게요.”
그래도.”
블라인드로 이렇게 막고, 여기에 텔레비전을 놓으면 거실처럼 꾸밀 수 있어요.”
. 모르겠어요. 오늘 결정하지 말고 다다음주에 다시 나와 보자고 하면 화낼 거예요?”

. 나는 속으로 당연한 소리!!!’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러다 결혼식 올리고 각자 집으로 가게 생겼어요. 아직까지 이러면 어떡해요. 더군다나 지금까지 봐 온 집 중에선 최상인데. 포기할 건 포기해야죠.”
그건 아는데포기가 안 돼요. 거실이.”

이 양반이 장난하나.

매물이 없잖아요. 그나마 있던 것도 다 나가고. 자기가 무슨 말하는지 알겠는데. 그래요. 오늘 결정 안 해도 돼요. 존중해요. 헌데 2주 뒤에 나왔는데 매물이 없거나 또 결정 못하면, 내 손에 죽는 수가 있어!!!”
!!!!!!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부동산 딱 한 곳만 더 보고 결정하면 안돼요?”
…… 그렇게 해요.”

우리는 결국 또 다른 부동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몇 걸음 뗐을 때 그는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비장하게 말했다. “부동산에 전화할게요. 계약하겠다고.” 그리곤 전화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아 달란다. 이 처절한 고뇌와 결단의 순간을 기록하겠단다. 참 별걸 다 한다 싶었지만 나는 길 한복판에서 핸드폰을 들었다.

우리는 결국 아담한 빌라 5(실제는 4층이라고 꼭 말하고 싶다. 너무 겁먹지 말고 놀러들 오시라.^^) 투룸을 계약했다. 신혼집 구하기 프로젝트 3개월만의 쾌거였다. 남자친구가 큰 결단을 내려줘 이쯤에서 집을 얻을 수 있었음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시원한 생맥주 한잔으로 조촐한 축하파티를 하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큰 숙제를 해결한 듯한 상쾌함에 두 다리 쭉~ 펴고 침대에 누웠다. 그때 띵똥카톡이 왔다.

OO은 큰 거실을 보장하라! OO은 작은 방에 침대를 구겨 넣고, 안방을 거실로 만들어 달라!”

! 일단 여기서 수습해야 단 몇 분이라도 빨리 잠을 청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해 침대를 작은방에 넣어보겠음.”
구겨 넣어라! 구겨 넣어라!”

결국 작은방을 침실로, 안방을 거실 겸 서재로 만들어 줄 것을 약조하고 나서야 나는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허나, 슬프게도 우리 작은방은 싱글 침대 하나 들어가기 버거운 크기다. 이 남자가 그걸 아는지 모르겠다.

블로그 연재에 많은 분들이 응원을 보내주셨다. 한 선배는 전화로 조언을 해주셨고, 집 보러 다니는 후배는 괜찮은 집을 봤다며 중개업소 연락처를 건네줬다. 너무 고맙다. 며칠 전에는 싱가포르에서 연락이 왔다. 그곳에서 태권도 사범을 하고 있는 친구가 카톡을 남긴 것이다.

"한국은 집구하기가 정말 어려운가보네. 싱가포르에서는 집값의 20%만 있으면 집 살 수 있거든. 이마저도 당장 내야하는 돈은 전체 집값의 2% 정도야."

내 눈을 의심했다. 1억 원짜리 집을 구한다고 하면, 200만 원만 있으면 되는 거네. 당장 스마트폰에서 친구의 전화번호를 불러냈다. 통화버튼을 누르기 직전, , 싱가포르의 집부터 살펴보자. 갑작스럽게 기자 정신이 발동됐다.

싱가포르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전 국민의 내 집 마련'에 다가간 나라다. 국민의 92.3%가 내 집에서 산다. 다른 나라들도 똑같은 목표를 내걸지만, 결국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 꼴로 끝난다. 우리나라 국민 중 내 집에 사는 사람은 53.8%. 이마저도 매년 낮아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집값 폭등기에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은 지금 '하우스 푸어'가 됐다. 그리고 가계부채 1000조 원 시대가 열렸다.

미국은 어떤가.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집권 2기가 시작된 2005, 내 집 마련을 강조하는 '소유주 사회(Ownership society)'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 결과는? 서브프라임모지기 사태에 이은 글로벌 금융위기다. 어려운 얘기는 여기서 그만. 후배 홍모씨는 이쯤에서 스크롤을 주~욱 내릴지도 모른다.

이제 통화버튼을 누를 차례다. 재작년 싱가포르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친구는 아파트의 룸 하나를 빌려 살았다. 남자 3명이 눕기엔 다소 갑갑할 정도였다. 싱가포르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최근 연락을 못했던 친구였다. 곧 목소리가 들렸다. 안부부터 물었다. "잘 지내고 있지? 너 아직도 거기 살고 있는 거야?" 친구는 콘도로 이사 갔다고 했다.

- 콘도로 이사 갔다니, 무슨 말이야?

". 한국으로 치면 고급아파트라고 보면 돼. 아파트에 수영장이랑 헬스장 같은 게 있거든. 주로 서양 사람들이 살아. 월 임대료가 200만 원이야. 나 여자 친구랑 같이 산다. 곧 결혼해야지. 나랑 여자 친구랑 합쳐서 한 달에 700만 원 벌거든. 마음먹고 여기로 이사 왔어."

- 너도 곧 결혼하는구나. 근데 넌 여유로워 보이는데, 난 왜 이러냐. (웃음) 그나저나 집값의 20%, 아니 2%만 있으면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다니, 무슨 말이야?

"상가포르 국민 대부분이 HDB(주택개발청) 아파트에 살거든. 너 놀러왔을 때 살았던 데가 거기야. 결혼을 했거나 35살 넘으면, 주택 청약 할 수 있어. 집 살 돈의 20%만 있으면 돼. 1억 원짜리 아파트면 납입금으로 2000만 원만 있으면 된다는 소리지."

재작년 싱가포르 여행갔을 때 찍은 HDB 아파트.

HDB 아파트는 우리나라로 치면 주공아파트(LH아파트). 싱가포르 인구(380만 명)83%320만 명이 HDB 아파트에 산다. 우리나라도 민간아파트보다 싼 주공아파트가 많아 쉽게 들어갈 수 있다면, 집값 부담은 많이 떨어질 게다. 다시 친구의 목소리가 귓속에 들어왔다. "20%도 당장 필요한 돈이 아니야. 대부분 CPF로 낼 수 있어."

CPF는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비슷하다. 매달 월급의 20%를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 여기에 고용주가 월급의 16%를 적립한다. 결국 내 월급의 36%에 해당하는 금액이 매월 적립된다. 이 돈으로 납입금(전체 집값의 20%)18%까지 낼 수 있다. 결국 집값의 2%에 해당하는 현금만 있으면 집을 구할 수 있는 셈이다.

- 당장 2%만 낸다고 해도, 80%가 빚인 거잖아.

"그렇긴 하지. 그런데, 엄청 싸.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연 이자가 1.3%." 

- 이자가 싸도, 집값이 비쌀 텐데 그 돈 언제 다 갚아?

"HDB 아파트는 서울과 비슷하거나 조금 싼 것 같아. 3(전용면적 65, 24)짜리 HDB아파트 싼 데는 1~2억 원 하는 것 같아. 물론, 비싼 데는 비싸지. 싱가포르도 최근 집값이 많이 올랐거든. 중산층이 사는 지역에 있는 룸 5(전용면적 110, 42)짜리는 5~6억 원은 하더라."

2012년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은 5만 달러로, 우리나라(24000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친구는 싱가포르에서 한국에서 받는 돈의 2배를 벌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여유 있게 살고 있는 친구는 서울에 있었다면 고단하게 살았을 터다. 왜 이렇게 서울 살이는 고달플까. 신혼집을 구하면서 마음도 많이 다쳤다. 그렇다고 싱가포르에 갈 수 없는 노릇. 언젠가 여자 친구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났다.

"서울에서 아등바등 살지 말고 지방으로 가는 거 어때요? 지방 신문사도 있잖아요. 포항도 좋고."


금요일 오전 여자 친구가 내게 사진을 보냈다.

"연신내에 괜찮은 집이 올라왔어요. 1, 거실 1개예요. 전세 7000만 원에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아요."

"깔끔한 집이네요. 근데 전철역에서 꽤 멀어요."

"그래도 우리 한번 가 봐요."

"바로 연락해볼게요."

전화를 하니 젊은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오늘 저녁엔 술 약속이 있었다. 그래서 "내일 집을 보러갈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밤늦게 와달란다. 어색한 대화를 끊으려고 하자, 질문이 날아들었다. "신혼부부세요?" ", . 8월에 결혼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신혼부부가 살기 좋은 집이예요." 기분이 좋아졌다. 주말 아침 햇볕을 받으며 아내와 한 침대에서 일어나는 상상을 했다.

토요일 저녁 여자 친구의 손을 잡고 연신내역에 내렸다. 이곳이 인생 2막을 펼칠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곧 진정하고, 주변을 살폈다. 생각보다 큰 번화가였다. 변두리라는 선입견이 깨졌다. 여자 친구에게 말했다. "주말에 슬리퍼 신고 여기로 와서, 영화 보고 맥주도 한 잔하면 좋겠네요." 우리 둘 모두 조금 앞서간 상상에 얼굴에서 흐뭇함을 지울 수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부산에서 서울로 온 후, 쭉 한 지역에서만 살았다. 이제 내가 살 곳을 정할 때가 다가왔다.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사회의 높은 벽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좋아해 한강과 가까운 곳에 살고 싶었다. 주말에 아내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각형이라는 '스트라이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꿈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은평구에서 한강은 멀다. 지금 살고 있는 안양 석수동처럼 40여 분 안양천을 따라 달리면 한강에 닿아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한강에서 연신내 쪽으로 향하는 불광천은 응암역 부근에서 도로 밑으로 숨는다(물론 물길은 반대로 흐른다). 언젠가 여자 친구가 "전철타고 한강 가서 자전거 타면 되잖아요?"라고 물었다. 난 "스트라이다에 먼지가 쌓일 확률이 100%예요"라고 답했다.

이날 보러 갈 집은 연신내역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 다시 골목길을 10분 더 걸어야했다. 골목길로 들어선 순간, 낡은 슈퍼마켓과 오르막길이 우릴 맞이했다. . "괜찮아요"라는 여자 친구의 손을 꼭 잡고 터벅터벅 걸었다. 낡은 주택가의 밤은 어두웠다. 밤길을 무서워하는 여자 친구가 매일 이 길로 퇴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미안함이 밀려왔다.

텔레비전과 세탁기

곧 목표지점에 닿았다. 비교적 깨끗한 빌라였다. 빌라 주변에는 가게 몇 개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 나와 여자 친구는 작전을 짰다. 집이 맘에 들면 텔레비전을, 맘에 안 들면 세탁기를 언급하기로. 곧 남자가 문을 열어줬다.

벽지를 새로 발라 깔끔한 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여자 친구는 깨끗한 싱크대에 맘을 빼앗긴 듯 싱크대를 칭찬했다. 그런데, 집이 좁아보였다. 실평수는 33(10) 남짓인 것 같았다. 장을 들이기 어려울 정도였다. 옷을 베란다에 놓는다고 했다. "세탁기는 어디에 두세요?"고 물었다. 하지만 여자 친구는 "텔레비전이 크네요"라고 얘기했다. 아뿔싸!

여자 친구는 집을 구석구석을 살폈다. 남자가 말했다. "합정동 쪽으로 이사 가려고 집을 내놓았어요. 여기서 돈을 모았거든요." 내 머릿속에는 2년 뒤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집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쉽게 집을 구하게 될 줄이야!

20분 동안 집을 둘러본 후 나서려는 채비를 하던 찰라, 그 남자가 말했다. "사실 가계약중이예요. 한 분이 어제 오셔서 집을 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계약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바로 집주인한테 30만 원을 입금한 모양이에요." . 눈앞이 캄캄했다. 어제 한참 술을 마시고 있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터벅터벅 골목길을 내려오면서 '가계약이 불발되면 꼭 연락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넣었다.

하지만 끝내 답은 오지 않았다.

[신혼집 구하기 프로젝트]4~5일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입니다.


언젠가 여자 친구가 말했다.

"곧 결혼하는 내 친구 민영이가 혼인신고를 포기할까 고민 중이래요. 사정이 어려워서, 국민임대아파트에 기대를 걸고 있나 봐요. 그나마 신혼부부 우선공급이 있으니까, 나중에 혹시라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더라고요. 그런데 신혼부부 우선공급 1순위가 혼인기간이 3년 이내잖아요. 그래서 1순위를 유지하려면 당장 혼인신고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여자 친구는 울컥했다. 집을 구하기 위해 혼인신고도 늦춰야 한다니, 말문이 막히는 게 당연한 일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1순위를 유지한다고 해도, 임대아파트에 들어가는 것은 '헛된 희망'에 가깝다는 것이다. 임대아파트를 놓고 1순위끼리 경쟁할 경우, 해당지역 거주자이거나 자녀수가 많은 쪽이 당첨된다. 한 아이만 낳을 계획에 그나마도 당장 낳지 않을 거라면, 일찌감치 당첨을 포기하는 게 낫다.

신혼부부 우선공급에서 탈락하면 일반공급에서 기회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일반적인 신혼부부가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확률은 '0'이다. 일반공급은 20세 미만의 자녀가 3명 있어야 우선공급 대상이 된다. 그래도 남은 주택이 있다면, '세대주 나이 50세 이상'이나 '65세 이상 직계존속 1년 이상 부양' 등으로 높은 가점을 얻은 사람에게 배정된다. 30대 초반의 신혼부부에게는 20년가량 뒤의 일이다.

최근 민영씨는 임대아파트에 대한 꿈을 포기했다. 혼인신고를 한 후 4000만 원의 신혼부부 전세자금대출을 받았다.

젊은 신혼부부에게 임대아파트 입주는 '헛된 희망'이다. 하지만 높은 전세 값과 그에 따르는 빚을 생각하면 임대아파트를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임대아파트에 희망고문을 당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전체 1700만 가구 중 임대주택은 건설 중인 것까지 모두 포함해도 100만 가구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원망스럽다.

정부는 서민 주거를 안정시킬 의무가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위해 직접 예산을 마련하다보다, 청약저축을 유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돈을 모은다. 바로 국민주택기금이다. 올해 운용규모만 42조 원가량(실제 사업비는 약 175000억 원)이다. 하지만 이중 정작 임대주택 사업비는 53000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나와 여자 친구는 일찌감치 임대아파트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가끔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SH공사 홈페이지를 찾았지만, 실망만 커졌다. '정부는 신혼집을 구하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는 걸까'라는 생각에 침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 친구의 아버지께서 연락을 하셨다.

"박근혜 대통령이 '행복주택'을 만든다 카던데, 너희는 대상이 안 되니?"

행복주택 송파지구 조감도 (출처 : 국토교통부)

국토교통부는 최근 서울시와 경기도 7곳에 임대주택 1만 가구를 짓는 행복주택 계획을 발표했다. 턱 없이 적은 물량이다. 철도부지 등 국공유지에 짓기 때문에 임대료가 싸고, 신혼부부나 대학생 등에게 전체 가구의 60%를 배정한다니 그나마 반가운 소리다. 하지만 입주 시기는 3년 뒤인 2016. 기다리면 내게도 기회가 올까? 처음엔 거창했지만 초라하게 끝난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앞서 정부는 지난달 서민주거안정대책을 내놓았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어마어마한 혜택을 준단다. 우리에겐 해당사항이 없지만. 아참, 해당되는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신혼부부 전세자금대출 금리 인하(3.7%3.5%). 1000만 원을 빌리면, 2만 원의 이자를 덜 낸다. 안타깝게도 우린 폭탄()을 많이 떠안을 능력이 안 된다.

수백만 원이 들어있는 청약통장을 만지작거린 것도 그 때문이다. 청약통장을 깰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아파트 분양은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언젠가 내게도 임대아파트 입주 기회가 있을지 모르니... 하지만 신혼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한 푼이라도 아쉬운 상황에서, 청약통장에 들어있는 돈은 참 아쉽다. 여자 친구의 의견을 물었더니 고개를 절레 흔든다. 그러면서 내게 말했다. 

"우리도 혼인신고 늦출까요?"

참고) 한국토지주택공사 국민임대주택 소개

법제처 '찾기쉬운 생활법령 정보 : 국민임대주택' 

[신혼집 구하기 프로젝트]4~5일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입니다.



1억이 '하찮은' 돈인지 몰랐다. 4월 신혼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절실히 느꼈다. 선유도역에서 카운터펀치를 맞은 후 신혼집 예정지를 마포구로 바꿨다. 나와 여자 친구의 직장 중간에 위치한 곳이다. 마포구 집값이 비싸다는 것, 잘 안다. 마포구에서 그나마 집값이 싸다는 연남동을 찾았다. 물론, 홍대입구 전철역에서도 아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집 구하기를 시작했다 

중개업소에서 큰 맘 먹고 1억을 불렀다. 돌아온 것은 '반지하'였다. 여자 친구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었다 

"11000만 원도 괜찮으니까, 좋은 집이 나오면 알려 주세요."
"그 정도 가지고는."

혀 차는 소리를 뒤로하고 중개업소를 빠져나왔다. 여자 친구가 저 멀리 연희동 야트막한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저 산 밑으로 가요." 

산 밑 동네는 집값이 더 쌀 것이라는 생각에 나온 말이다. 하지만 연희동에서 중개업소를 하는 지인의 아버지는 말했다. "연희동은 비싸다."

연남동에서도 더 외진 곳으로 갔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 이곳 중개업소에서도 1억은 신혼집을 얻기엔 '하찮은' 돈이었다. 그러던 찰라 중개업소 사장님이 말했다. "지금 매물이 없으니, 5월에 다시 오는 게 좋을 겁니다." 구원의 목소리였다. '매물이 없을 때 와서 집을 못 구한 거였구나.'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그때부터 집 구하는 것을 포기가 아니라 미뤘다. 그 뒤 맞이한 5. 바뀐 건 없었다. 1억은 여전히 하찮은 돈이었다. 어느 날 여자 친구가 말했다. 

"신혼집 예산을 7000만~8000만 원으로 낮춰요."
"우리 포기하지 말아요. 마포구에서 1억짜리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을 거예요."
"생각해보니까, 남들처럼 사정이 좋은 게 아닌데, 빚내서 좋을 건 없잖아요."
"그렇지만."
"마포구는 포기해요. 우리 신혼집 원룸으로 하려했던 것 기억해요?"

불편한 진실을 여자 친구가 꺼내들었다. 몇 달 전 처음 결혼 얘기를 나눴을 때, 원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자고 했었다. 경제적인 여건을 감안한 거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수천만 원의 대출을 기정사실화했다. 신혼부부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3.5%. 1000만 원을 빌리면 이자는 연 35만 원이다. 3만 원의 이자는 큰 돈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수천만 원을 빌리면, 신혼집은 더 이상 전세가 아니다. 이자를 감당한다 해도, 원금은?

우리는 지하철 노선도를 펼쳤다. 합정역에 검지를 내려놓았다. 손가락을 6호선을 따라 외곽 방향으로 옮겼다. 망원, 마포구청, 월드컵경기장, 디지털미디어시티, 증산, 새절. 손가락은 쉬 멈추지 않았다. 결국 6호선 끝 연신내, 독바위, 불광에 닿았다. 직장인 여의도까지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안양에서 출근하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여자 친구의 직장이 있는 도심도 3호선을 타면 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은평구 쪽에 살자"고 결단을 내렸다.

시세를 조사하니, 1억 이하 전셋집이 적지 않았다. 물론 맘에 드는 7000만~8000만 원짜리 전셋집은 눈에 띄지 않았다. 5월에 결혼한 친구가 은평구에서 8000만 원짜리 신혼집을 구했다. 몇 달에 걸쳐 괜찮은 집을 찾다가, 결혼하기 2주 전에 겨우 신혼집을 얻었다고 했다.

그 친구 역시 장벽과도 같은 집값 앞에 수십 번 좌절을 맛봤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자취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릴까'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건 '집'이 아닌 '방'이었다. 결국 그 친구는 3000만 원을 빌렸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3000만 원 대출이면 한 달에 이자 10만 원 정도면 돼. 너도 너무 가격을 낮추기보다는 대출을 좀 받아. 그렇게 하면 선택의 폭이 넓어질 거야. 다들 그렇게 시작해."

고민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대출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몇번의 카운터펀치 이후로 대출을 늘리는 것보다는 눈을 낮추는 것으로 암묵적 합의를 했다. 여자 친구는 대출금 이자를 갚기 위해 팍팍해지는 것보다는 단돈 5만원이라도 모아지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고 한다. 우리도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을까? 여자 친구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이쯤에서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겠다. 지난해 3월 정치부로 옮겨오기 전까지, 몇 년 간 부동산 전담 기자를 했다. 취재한 중개업소만 100군데를 훌쩍 넘겼다. 타워팰리스부터 쪽방까지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그런데, 내 신혼집을 구하는 데는 이렇게 우왕좌왕 할 줄이야.

[신혼집 구하기 프로젝트]4~5일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입니다.    

 

"……." "……."

나와 여자 친구는 말을 잃었다. 당산역 앞 커피숍에서 1시간 동안 앉았지만 오고간 대화는 몇 마디 되지 않았다. 하염없이 창밖 거리풍경만 바라봤다. 나는 애써 "저 아파트는…"이라고 말을 꺼내놓고도, 이내 "아니다"라며 말을 삼켰다. 여자 친구는 내게 "우울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토닥거렸다. 울컥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시간 전, 우리는 멋진 신혼집을 상상하며 행복해했다. 거창한 것을 꿈꾼 건 아니었다. 상상 속 신혼집은 소박했다. 처음부터 강남에 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또 굳이 아파트에 들어갈 생각도 없었다. 작더라도 깔끔한 집. , 한강이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봄날 아내와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고 싶은 작은 꿈 때문이다. 그래서 고른 곳이 선유도역 인근이다. 직장이 가깝다는 것도 고려됐다.

신혼집 예산은 1억 원으로 잡았다. 대학 졸업 후 7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술 좀 사 달라'는 후배들의 핀잔을 외면하며 모은 돈에다 수천만 원의 대출을 얹을 예정이다. 선유도역 앞 허름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에 섰을 때, 기대감에 부풀었다. 문을 빠끔히 열었더니 앉아있는 사장님이 보였다. 태어나서 32년 만에 처음으로 내 집을 구하기 위해 중개업소에 들어갔다. 심장이 쿵쾅쿵쾅 소리를 냈다. 입을 뗐다.

"신혼부부가 살만한 1억 원짜리 전세 있을까요?"

원래 가격을 더 낮춰 부르려했다. 주위에서 전세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얘기를 듣고 1억을 부른 참이었다. 사장님은 "1억이라고요?"이라고 되물었다. 황당하다는 투였다. 순간 겁을 먹었다. '뭐가 잘못된 거지?' 사장님이 말했다. "무슨 1억으로, 1억2000만 원은 줘야 괜찮은 빌라를 구하지."

순간 거대한 벽과 마주선 것 같았다. 사장님은 1억이면 동네 구석에 있는 낡은 다세대 주택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부른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낡은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고 싶지 않다. 유년시절 반지하의 퀴퀴함과 낡은 다세대 주택의 끔찍한 겨울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한 선배는 10년 전 반지하에서 신혼을 시작했다고 했지만, 나로서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힘없이 중개업소를 빠져나왔다. 집을 알아보기 위해 처음 찾은 중개업소에서 느낀 절망은 거대했다. 좌절감이 나를 덮쳤다. 저 허름한 아파트도 우리가 넘볼 곳이 아니구나 싶었다. 저기 보이는 빌라도 우리를 외면하는 것 같았다. 내 우울한 표정에 여자친구가 "오늘은 집 보러 다니지 말자"고 했다. 터벅터벅 걸었다. 우린 어느새 당산역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허브차를 시켰지만, 향을 느낄 수 없었다. 4월의 어느 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세상으로부터 카운터펀치.. 그래도 다시 몸을 일으킨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난 대학 졸업 후 남들만큼 치열하게 살았다. 그렇다고 사치를 부리지도 않았다. 차 대신 자전거를, 택시 대신 버스를 탔다. 술 먹은 뒤 어떻게든 지하철 막차를 잡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20대를 흘려보냈다. 1억은 내 20대와 맞바꾼 돈에, 또 그만큼 대출을 받은 것이다. 이 돈으로 서울에 신혼집 구할 수 없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이 잘못된 게 아닐까? 30대 신혼부부가 안락한 보금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사회는, 분명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내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세대 중 많은 이가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 낳기를 포기하고 있다. 집을 투기의 수단으로 삼았던, 집값 폭등의 시대가 남긴 상흔일터다. 기성세대가 바랐던 집값 상승은 결국 그들의 자녀인 우리 세대에게 큰 고통이 됐다.

앞으로를 생각하면 한숨은 더 깊어진다. 우리사회가 내놓은 해결책은 내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집값 하락? 요원하다. 정부도, 건설사도, 집 가진 사람들도 원하지 않는다. 이런 때에 박근혜 정부가 말한다. "빚내서 집사라!" 속을 수 없다. 여기에 혹하면, 빚의 구렁텅이에 빠질 게 분명하다.

신혼집 구하기 첫날, 세상으로부터 카운터펀치를 맞았다. 세상은 '1억으로 신혼집을 구한다고? 미쳤어요?'라고 하는 것 같다. 어지럽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거야.' 쓰러진 몸을 다시 일으킨다.

[1억 신혼집 구하기 프로젝트]는 4~5일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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