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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옥상에서 찍은 빌라들. 우린 어떤 집을 구하게 될까?

미친 척 하고 대출 많이 당겨서, 집 사요.” 아내가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부동산 담당 기자였던 몇 년 전,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을 펴는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전셋집을 구하면서 빚내서 집사는 건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지금 살고 있는 빌라 5층의 작은 신혼집 역시 최대한 빚을 내지 않기 위해 골랐다. 아내도 나도, 착실히 돈 모아서 나중에 번듯한 집으로 이사 가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제는 빚내서 집사자는 생각도 마다 않기로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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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살고 있는 집의 전세 계약 만료는 8월 초다. 집주인이 비싸게 전세를 내놓은 탓에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올 기미가 없었다. 최근 집주인은 집을 팔겠다고 했다. 전세 계약이 끝난 뒤에도 두 달 안에 집을 꼭 팔겠다고 했다. 해석을 하자면, 당장 전세금을 못 준다는 뜻이다. 법은 멀리 있다. 집주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가을이면 전세 매물이 많을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상황은 변했다. 일주일 전 한 남자가 우리 집을 보러 왔다. 맘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8월 중순에 이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는 흘러 넘겼다. 설마 이 집이 나갈까 싶었다. 집 주인은 시세보다 비싸게 내놓았다. 혹시 몰라 부동산 중개업소에 연락을 했다. 집을 보러왔던 사람이 대출 관계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계약이 이뤄진다면, 불과 한 달 보름 안에 이사를 해야 한다.

우리 부부는 부랴부랴 전셋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 북가좌동에는 전셋집 씨가 말랐다. 인근 성산동 쪽의 전셋집을 알아봤지만, 북가좌동보다 비싼 터라 맘에 들지 않았다.

토요일, 아내와 나는 각각 북가좌동과 우이동에서 집중적으로 전셋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우이동은 처형이 사는 곳으로, 아내에겐 2의 친정이다. 아내가 먼저 움직였다. 곧 아내로부터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아내는 신축 빌라 내부를 꼼꼼하게 보여줬다. 후에 아내에게 물었다. “왜 전셋집이 아니라, 신축빌라를 봤어요?” 아내의 대답은 간단했다. “전셋집이 없었으니까요.”

북가좌동에도 우리가 원하는 전셋집이 없었다.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았다. 눈높이를 많이 낮추거나 아니면 많이 높이거나. 반전세나 월세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가 아니라면, 적잖은 부담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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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어딨니?

일요일 아이를 안고 집밖으로 나섰다. 부동산 중개업소가 문을 닫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집에 앉아서 걱정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를 걷다보니, ‘분양사무소라는 펼침막이 눈에 보였다. 신축 빌라였다. 예전 같았으면 지나쳤겠지만, 몇 분을 그 앞에서 서성였다. 결국 펼침막에 나온 번호로 전화를 했고, 곧 신축 빌라 1층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나왔다.

‘OO주택 이사라고 적힌 명함을 건네받았다. 북가좌동에 빌라 여러 곳을 분양한다고 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의 차에 탔다. 한 신축 빌라에 내렸다. 알고 보니,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걸어서 3분 거리였다. 이곳 4층 현관문을 열었을 때, 감탄사를 내지를 뻔했다. 말 그대로 새 집이었다. 남향이었고, 전망도 괜찮았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오라고 했다. 함께 둘러본 아내도 나쁘지 않은 눈치다. 헌데, 아저씨는 알고 보니 집이 나갔다고 했다. 작전인지,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아저씨는 신축 빌라 몇 군데를 더 보여줬다. 어떤 곳은 빛이 잘 안 들어왔고, 어떤 곳은 비쌌지만, 하나 같이 살고 싶을 만큼 깨끗한 새 집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 부부는 오래 살 거라면, 집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전셋집은 없고, 대출 이자는 싸다. 집값도 전셋값과 큰 차이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2년 마다 이 난리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

물론, 우리 부부도 어지간하면 빌라를 사지 말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집값은 떨어지고, 팔려고 할 때 제때 팔리지 않는다는 말. 또한 빚은 싫다. 작은 집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돈을 모아 좋은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우리 부부에게 그걸 허락하지 않으려 한다.

내 손에 우산이 없는 걸 보고 비는 더욱 세차게 퍼부었다. ​ ​​​​

- 김기택 시인의 시 '우산을 잃어버리다' 중에서

이제 장마다. 집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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