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오래도록 지켜줄게

원래는 보지 않으려고 했다. 가슴이 아플 것 같았다. 결국 영상을 봤다. 분노를 가라앉히기 쉽지 않았다. TV에서는 하루 종일 보육교사가 네 살짜리 아이를 때리는 영상을 내보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건만. 아내는 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만 보고 싶은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둘째 처조카 예린이도 네 살이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조그맣고 예민한 아이다. 또래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조카와 같은 나이의 아이가 폭력 앞에서 쓰러졌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없으니, 아이가 말을 들으니, 보육교사는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영혼은 큰 상처를 입었을 게다.

멀지 않은 미래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을 하는 우리 부부는 한숨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는 봄이 되면 산후 조리를 끝내고 일거리를 구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도우미를 부르자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우리 부모님은 새벽 내 노래방을 운영하시기에 아이를 돌보기 힘들다. 결국 우리 부부는 아이를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계시는 포항으로 보낼지 고민하고 있다. 아이를 떠나보내는 게 가슴이 아프지만,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다른 방법이 없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쉽게 결정을 못 내리겠다.

부모와 떨어질 아이한테도 미안하지만, 장인어른과 장모님께도 참 죄송한 일이다. 장모님은 지금 서울에 올라와 아내와 함께 아이를 돌보고 계신다. 출근하는 내게는 푹 자라고 하시고, 밤새 칭얼대는 아이를 돌보신다. 장모님의 입술이 터진 지 오래다. 며칠 전 연고와 피로회복제를 사다드렸을 뿐, “저희 부부가 돌볼 테니 쉬세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염치없게도 아이를 포항에 보낼까 생각하니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주변의 많은 사람은 엄마가 몇 년간 아이를 돌봐야, 아이 정서에 좋다고 했다. 알고는 있지만, 고개를 쉬 끄덕이기 어렵다. ‘여유가 있다면’, ‘맞벌이를 안 해도 된다면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지만, 역시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쯤엔 서울로 데려올 생각이다. 장모님께 오래 신세지기는 어려우니 아마 돌 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것 같다. 의사 표현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하루 종일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게 여간 불안한 일이 아니다. 가격이 싸고 그나마 믿을만한 국공립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싶지만, 대기자가 수백여 명이다.

우리 집 바로 앞에는 가정형 어린이집이 있다. 오다가다 이곳을 지날 때, 어린이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게 된다. 보육교사가 짜증을 내며 아이들을 다그칠 때가 있다. 보육교사도 힘들어서 그런 거겠지만, 아이들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을까. 아이를 웬만한 어린이집에는 보내지 못하겠다.

우리 아이를 위해 무엇이 최선일까.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선택이 될 것 같다.

2015. 1. 16 새벽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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