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를 위한 젖꼭지.


아들 바보. 선율이 바라기인 내 모습에 장모님이 지어준 별명이다. 아이를 품에 안으면, 절로 흐뭇해진다. 그런데 이제는 아들 바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미안한 감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자정을 훌쩍 넘긴 지금, 젖을 짜내고 있는 아내를 보면 말이다.

아이만 계속 보고 있네요. 그렇게 좋아요?” 아내로부터 몇 번이나 들은 말이다. “, 너무 귀여워요.” 오늘 아내의 질문은 조금 달랐다. “힘든 건 난데, 왜 아이만 안고 있어요?” 난 쉽게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 당신이 덜 힘들 테니까요.” 겨우 찾은 대답은 궁색했다.

조리원에서 나온 뒤, 아내가 섭섭했다. 아내는 아이와 관련된 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엄마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못마땅하다. 조심조심 아이의 기저귀를 갈 때, 아내는 왜 빨리 갈지 않아요.”, “애 다리를 너무 팍 치켜드는 것 아니에요?”라고 다그친다.

아이의 속싸개를 살 때, 아내는 애 추운데 빨리 싸줘요라며 날카로움이 가득 담긴 말을 내놓는다. ‘나도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내의 말에 소심한 나는 상처를 받는다. 그럴 땐 언짢은 기분을 숨길 수 없나 보다. 쌀쌀해진 내 태도에 아내는 왜 나한테 냉랭해요?”라고 묻고, 난 "아니에요"하며 자리를 피한다.

아내는 오늘 출산을 한 뒤, 내 멘탈이 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출산의 고통은, 임신의 끝이기도 하지만, 육아의 시작이기도 하다. 겨우 며칠 아내의 육아를 도운 남편 입장에서 육아는 참 힘든 일이다. 아내의 육아는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이기도 하다. 지금껏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오늘 아내의 말에 내 마음도 이를 깨달았다.

아내는 분유를 최대한 적게 먹이고 최대한 모유 수유를 하기로 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다. 많이 힘들기 때문이다. 아이는 생존을 위해 있는 힘껏 젖을 빤다. 그만큼 아내의 젖꼭지는 상처를 입는다. 살갗이 벗겨질 정도다. 아이는 2~3시간 마다 젖을 빤다. 상처는 계속 덧난다. 너무 아파서 수유나 유축을 하지 못하고, 가슴을 옷 밖으로 내놓고 있다. “분유를 더 많이 먹이자는 나의 제안에도 아내는 모유 수유를 고집한다.

모성애는 세다. 아이는 배고프면 울고, 기저귀가 젖으면 운다. 새벽에도 2~3시간 마다 아이는 힘껏 운다. 난 쉽게 깨어나지 못한다. 아내는 일어난다. 나도 새벽에 일어난 적이 있다. 2시간 동안 달랬지만 아이는 계속 칭얼댔다. 난 어느 순간 난 잠들어버렸다. 아내는 끝까지 아이를 책임졌다. 새벽 어스름 아이는 또 울었고 아내가 깨어났다.

아이를 낳은 뒤, 아내의 삶은 사라졌다. 아내는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다. 아내의 날카로움과 예민함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일은 아내가 겪고 있는 일들에 비하면 참 쉬운 일이다. 아내의 짜증을 언짢게 여겼던 내가 부끄럽다. 아들 바보가 아닌, 아내 바보가 돼야겠다. 아이가 언젠가는 아내의 고된 날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 2014. 12. 31 새벽 아빠가

+ Recent posts